무려 9년째 호황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 경제가 전통적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갖가지 현상들을 빚어내면서 경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지난 40여년 동안 경제학의 원론으로 받아 들여지던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이다.필립스곡선이란 임금(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역수(逆數)관계에 있다는 이론. 즉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은 올라가고, 반대로 실업률이 높아지면 임금상승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가지 정책목표는 동시에 달성될 수 없으며 어느 한쪽을 달성키 위해서는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최근의 미국 경제가 보여주고 있는 현상은 이같은 전통적인 경제이론을 혼란에 빠뜨렸다. 지난 8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4월중 실업률은 4.3%로 거의 완전고용 수준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2년째 4%대에서 하향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4월중 임금상승률도 0.2%에 머물러 3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기는 커녕 다같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이와함께 「비(非)이성적」이라할만큼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증시는 주가가 웬만큼 오르면 한동안 조정국면을 거치게 마련이라는 「주기순환론」을 무력화시킨 것도 경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사례중의 하나다.왜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경제학자들의 분석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대체로 세가지 정도로 요약되고 있다. 우선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노동을 포함한 생산요소의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다음은 인터넷 등 첨단정보화 기술의 출현에 따른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 규제의 전면적인 철폐로 민간의 창의를 한껏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됐다는 점이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MIT의 로버트 솔로 교수는 「영속경제(Perpetual Motion Economy)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리학에서 따온 이 개념은 일종의 경기 선(善)순환 이론이다. 투자 고용 소득 소비 주가 등 각종 경제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상향운동과 함께 균형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예컨대 주가상승은 투자자들의 가계소득을 향상시키고, 이는 소비지출로 이어져 기업들로 하여금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또 기업들은 높은 수익을 바탕으로 고용을 늘릴 것이고, 결국 주가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선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이같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 미국경제가 보여주고 있는 경제현상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거처럼 걸핏하면 「안정이냐, 성장이냐」를 따지는 일이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