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세계 최선진 주식시장이 상륙한다. 투자가가 미국 장외주식시장(나스닥)의 전종목을 일본에서 직접 사고 팔 수 있게 된다. 일본의 벤처기업이 주식을 상장시킨다. 일본 증권시장의 판도를 뿌리째 흔들어 놓을 폭풍의 핵이다. 미국증권업협회(NASD)와 한국계 손정의 사장의 소프트뱅크가 창설할 나스닥재팬이 바로 그것이다.도쿄 주오구의 도쿄증권거래소 상장부 간부들이 연일 밤늦게까지 회의를 열고 있다. 나스닥재팬 창설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텅빈 도쿄 증시에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도쿄증시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일본증권업협회. 장외시장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업무부의 고바야시부장은 최근 자리를 지키는 일이 거의 없다. 나스닥재팬 창설에 대비, 장외시장 개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개혁 부진한 일본 틈새시장 공략도쿄증시 증권업협회는 나스닥상륙에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나스닥은 직원을 연수 파견하는 등 협회와 우호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치열한 시장경쟁의 논리가 상황을 급반전시키고 말았다. NASD와 소프트뱅크가 시장개혁이 지지부진한 일본시장의 틈새를 노리고 나온 것이다.『시장도 이제는 경쟁의 논리에 따라 전쟁을 벌이는 시대. 서로 사이좋게 옹기종기 몰려 있는 곳은 망한다.』 지난 17일 NASD와 소프트뱅크가 관계자 5백여명을 초청, 시내 호텔에서 가진 설명회에서 손정의사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단체적 성격이 강해 개혁성향이 부족한 도쿄증시와 협회를 향해 도전장을 내던진 것이다.나스닥재팬의 공개 기준은 미국시장의 그것에 따른다. 일본에서는 회사설립에서부터 주식공개까지 20년 이상이 걸린다. 이에 비해 나스닥은 평균 4~5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오사키 자본시장 연구실장은 『벤처캐피털이 기업에 투자한 다음 자금을 회수하는데는 대부분 10년이 걸리지 않는다.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유망 신설기업들이 몰려들 수 있는 나스닥재팬이 큰 메리트를 가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일부기업들은 이미 나스닥재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치현의 광섬유통신용기기 개발 메이커인 선테크는 미국 나스닥등록에 앞서 나스닥재팬에 주식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에는 우리의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다. 따라서 회사내용을 투자가들에게 전달하기도 쉽다』는게 사다무라 사장의 설명이다.미국증권업협회와 소프트뱅크는 내년말 거래 개시를 목표로 나스닥창설 작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나스닥 설립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수두룩하다. 나스닥재팬의 경우 증권거래법에 의거, 일본증권업협회와 별도로 신설되는 협회가 규칙을 제정, 감시하게 된다. 그러나 자주규제 외부원등록 등 각종기능을 갖는 협회가 탄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5천개에 이르는 나스닥종목의 매매를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오사카 실장은 『협회운영 주체 또한 불투명하다』고 꼬집는다. 주체가 될 증권회사로 참가를 표명한 곳이 아직 한군데도 없다. 대형증권사 사장들은 프랭크 저브 NASD회장과 손사장의 참가 요청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이같은 상황에서 기존 업계가 개혁 작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도쿄증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요 해외거래소와의 제휴, 주식회사화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증권업협회 또한 가격결정제도와 등록기준의 개선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장은 개혁의 스피드를 요구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나스닥 상륙을 계기로 일본을 무대로한 주식시장간 경쟁이 뜨겁게 달아 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