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험·현장주의·신차개발 등 위력 발휘, 부채문제 남아 완전한 성공 불투명

『마침내 마쓰다 경영이 뿌리를 내렸다. 미국의 포드에 맡겨야 한다는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마쓰다의 주거래은행인 스미토모은행의 다쓰미 소토오 전회장은 최근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부장때부터 회장에 이르기까지 두 회사간의 제휴교섭에 관여해왔다. 마쓰다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그가 내린 평가는 이처럼 긍정적이다.마쓰다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99년3월기에 5백5억엔의 영업이익을 낼 전망이다. 피크를 이룬 지난 85년10월기이후 최고기록이다. 이로써 6기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마쓰다는 94년3월기에 4백41억엔의 영업적자를 내면서 경영위기에 빠졌다. 자력재건을 포기하고 96년5월 포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그로부터 3년. 다른 업체들처럼 불황을 타지 않고 있다. 포드의 산하에 들어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포드출신들은 경영권인수 이전부터 이미 개혁에 착수했다. 헨리 월레스 전사장과 게리 헥스터전무는 94년2월 고문으로 취임하자마자 재무개혁을 선언했다. 이들은 유이자부채 삭감에 나섰다. 이를 위해 설비투자를 대폭 감축했다. 피크였던 92년3월기에 1천4백88억엔에 이르렀던 설비투자는 96년3월기에 1백55억엔으로 줄어들었다. 이로인해 5년연속 적자였던 캐시플로(현금수지)가 흑자로 전환됐다.자산효율이 나쁜 사업도 정리했다. 95년에 마이크로버스사업에서 손을 뗐다. 히로시마교외의 영빈관도 매각했다. 97년에는 경자동차개발에서도 손을 뗐다. 대신 스즈키로 부터 OEM으로 조달했다.이러한 개혁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6천억엔에 이르렀던 유이자부채가 99년3월기에 3천억엔선으로 줄어들었다. 설비투자 감축에 따른 감가상각비 삭감으로 고정비 부담이 줄었다. 이로인해 손익분기점매출이 대폭 개선됐다.포드출신들은 재무주도의 경영개혁을 실현했다. 그러나 미국식의 자본효율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전자부품 등 일부 범용품을 해외에서 조달한 것을 제외하고는 부품메이커들과의 거래관계를 유지시켰다. 생산부문에서도 현체제를 유지하는데 주력했다. 과잉설비인 연간 16만대 생산능력의 호후(防府)제2공장을 처분하지 않았다.개혁에 부담이 되고 있는 부품메이커와 과잉설비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포드출신들의 국제경험에 따른 것이다. 밀러사장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포드자회사사장을 역임했다. 월레스전사장도 베네수엘라의 자회사 등을 경영했다. 이들은 국제경험을 통해 나라에 따라 문화와 일처리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체험했다.그러나 포드출신들이 일본적 관행을 무조건 수용한 것은 물론 아니다. 상대방의 설명에 납득을 할 경우 이를 즉각 받아들였다. 그러나 주장에 합리성이 없을 경우 개혁을 단행했다. 95년12월의 택시전용차량 생산중단 결정이 바로 그 사례다. 임원회의에서 일본인 임원들이 반발했다. 월레스부사장(당시)이 『당신들은 마쓰다가 망하더라도 마쓰다택시에 타고 싶은가』라며 반발을 물리쳤다.현장주의도 포드출신들의 장기의 하나로 꼽힌다. 『설비갱신을 요구하면 재무담당 헥스터전무가 현장에 찾아온다. 』는게 한 간부의 설명이다. 밀러사장도 현장사원들과 3차까지 함께 갈 정도로 현장을 중시한다.◆ 임원진 물갈이 … 포드류 개혁 가속화포드류는 신차개발기법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소형웨건 「데미오」는 포드류를 적용한 1호차다. 포드류의 개발수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경쟁차 등으로 부터 팔릴 수 있는 판매가격을 설정한다. 그 다음 예상 판매대수를 잡는다. 판매가격에서 수수료 고정비 등을 뺀 1대당 변동비를 산출한다. 이를 통해 부품별 단가를 결정한다. 설계자와 부품메이커가 이러한 조건에 따라 제품개발 생산계획을 짠다. 마쓰다는 이러한 방식으로 데미오의 저가화를 실현했다. 데미오는 당초 판매목표로 잡은 4천대를 훨씬 상회, 월1만대 가까이 팔리고 있다.포드류의 개혁이 가속화하고 있다. 임원진 물갈이를 우선 꼽을 수 있다. 6월 하순에는 사상 최연소인 38세의 전무가 탄생한다. 마케팅담당 마크 필스전무(현고문)가 그 주인공이다. 유럽자회사 사장인 얀 브렌테브라딘씨도 임원으로 취임한다. 전체 30명 가운데 포드출신이 9명에 이르게 된다. 96년5월 포드가 출자비율을 높이면서 사장을 파견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규모다.2000년3월기부터 실시되는 연결회계기준도입에 맞춰 그룹개혁도 본격화한다. 밀러사장은 4월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신입사원 입사식에서 『국내판매회사나 부품메이커의 경영 재무체질을 대폭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마쓰다의 연결대상은 99년3월기에 42개사. 그러나 2000년3월기에는 국내60개 판매회사 등을 포함, 1백46개사로 늘어나게 된다. 이로인해 연결베이스 부채는 99년3월기의 7천2백87억엔에서 2000년3월기에는 8천5백억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이같은 요인들로 인해 채산이 나쁜 판매회사의 정리가 불가피하다. 마쓰다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걸쳐 확대노선을 추구, 국내판매 5채널체제를 확립했다. 이때의 투자부담이 지금까지 짐으로 남아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98년4월 마쓰다계와 마쓰다안피니계 판매회사의 간접부문을 통합하는 등 합리화를 추진해 왔다.마쓰다는 개발 판매면에서 포드의 철저한 합리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플랫폼 엔진 등 파워트레인의 공통화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 주력 세던 「패밀리아」는 포드 「에스코트」차대에, 「카페라」는 「몬디오」의 차대에 통합될 전망이다. 6월 하순에 판매되는 미니밴 「MPV」는 포드제 6기통엔진을 장착한다. 차대 엔진을 공통화, 개발비를 대폭 줄여나간다는 것이다.마쓰다는 소형차 등 경쟁력있는 차종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포드 산하에 들어간 이후 2년반 동안 선보인 신형차는 고작 4종. 2~3개월에 한가지씩 신형차를 내놓는 다른 업체들과 대조적이다.포드식 경영의 성과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포드출신들은 대량생산방식인 「포디즘」을 마쓰다에 심으면서 개발의 주도권을 장악할 전망이다. 따라서 마쓰다의 기술진은 결국 도태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마쓰다는 「2000년도(2001년3월기)에 전판매회사를 흑자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판매부진 속에서 이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부채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마쓰다가 포드식 경영으로 완전히 정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