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새는 집을 고쳐서 판다.』금융감독위원회는 제일은행에 5조3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넣어 정상화하는 이유를 이렇게 비유했다. 제값을 받고 팔고 투입자금을 원활히 회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얘기다.제일은행은 지금 상태로는 은행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자를 3개월이상 연체한 고정여신 이하 부실여신이 4조원(대손충당금 제외시 2조원)에 이른다. 자기자본은 3월말 현재 마이너스 1조9천5백74억원, BIS(국제결제은행)비율은 마이너스 12%이다. 대출을 전혀 못해 「무늬만 은행」인 셈이다.제일은행 관계자는 『해외매각되면 튼튼해진다고 고객들을 만류했지만 이젠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은 하이에나처럼 제일은행의 여수신 고객을 빼내기에 혈안이다.한때 「제일 좋은 은행」이던 제일은행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호수밑에 잠겨 있던 쓰레기(부실)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른 탓이다. 올들어 자산건전성 분류가 강화돼 추가 부도없이도 부실여신이 2조원이나 늘었다. 97년 한보 기아사태로 시작된 한계기업의 부도사태는 아직 진행형이다. 부실채권을 정리할수록 자본잠식의 골은 깊어졌다.정부와 미국 뉴브리지캐피털과의 매각협상이 6개월이나 지연되면서 제일은행은 앉아서 고사(枯死)당할 처지다. 이대로 두면 문닫아야 한다. 부실여신, 자본잠식 등을 감안할 때 당장 청산해도 5조원이상 써야 한다는게 정부 계산이다. 지금 손쓰면 5조원이지만 여름이 지나면 6조원, 연말엔 7조원이 될 수도 있다.◆ 국민 설득이 정부 고민정부는 제일은행을 살리든 문닫든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의 불가피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국민들을 어떻게 납득시키는가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1개 은행에 혈세를 6조8천억원(작년초 1조5천억원 포함)이나 쏟아붓는데 대한 비난여론을 무마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 1인당 16만원꼴의 부담이다. 이만한 돈이면 대형은행을 세우고도 남는다. 금감위는 앞으로 뉴브리지와의 협상조건이나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강화로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면 하겠다고 밝혔다. 제일은행은 「돈먹는 하마」꼴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게다가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의 지분소각에 대해 소송까지 제기할 태세다. 정부지분은 주식병합으로 일부 남겨놓으면서 소액주주 지분만 소각하는 것은 주주평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정부는 원금을 건지지만 소액주주는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정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97년말 사태초기에 대응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엔 이렇게 될지 예상못했다』며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미흡했음을 시인했다.금융계 일각에선 『제일은행을 건전은행(클린뱅크)으로 만들면 안팔려도 그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금감위는 뉴브리지와 계속 협상하겠다고 못박았다. 국제사회의 약속이고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다. 뉴브리지와의 협상도 정부는 타결쪽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뉴브리지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고문으로 있는 칼라일사의 지분참여 제의를 거절할 만큼 의지가 있다는 귀띔이다.외신들 사이에선 『만약 안되면 긁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제일·서울은행 매각, 대한생명 입찰, 자동차 빅딜 등에다 SK텔레콤 증자 파문까지 한국을 보는 시각이 삐딱하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안으로 국민설득에, 밖으론 뭔가 보여주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