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을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삼성자동차 부채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처지에 빠졌다. 삼성생명에 대한 기업공개가 「불가」쪽으로 기운 탓이다. 삼성생명이 상장되지 못하면 삼성자동차에 대한 금융권 부채를 상환하는게 어려워진다. 삼성자동차 처리가 미궁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삼성그룹이 지난 6월30일 삼성자동차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삼성생명 주식상장은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다음날부터 공기가 심상치 않게 바뀌기 시작했다. 정부와 청와대에서 『생명보험사를 상장하겠다는 것은 아직 확정된게 아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에서도 『보험사는 계약자의 자산이기 때문에 상장이득을 주주만 챙겨서는 안된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금감위는 이같은 여론이 부담스러웠던지 『내년 3월까지 상장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이었을 뿐 상장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다음날부터 문제가 더 커졌다. 이건희 회장과 에버랜드(이회장 아들인 재용씨가 이 회사의 지분 31.4% 보유)가 지난해 삼성생명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삼성생명이 상장될 것이라는 내부정보를 이용, 주식을 매집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여기에다 「이건희 회장이 편법으로 아들에게 증여했다」 「삼성생명 공개로 삼성가는 10조원의 차익을 남기게 된다」는 등 비판적인 여론이 빗발쳤다. 여론에 떼밀려 결국 금감위는 삼성생명 상장유보 쪽으로 선회했다.삼성생명 상장문제는 삼성자동차 처리방안으로 제시되기 전에도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생보사 자산은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를 운용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을 주주들만의 소유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생명보험사가 이익을 냈을 때 주주에게 이익금의 15%를 주고 나머지 85%는 계약자에게 배당해 왔다. 상장으로 벌어들일 이득도 주주와 계약자가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삼성생명이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못할 경우 삼성자동차 해결방안을 찾기도 어렵다. 4조3천억원에 달하는 삼성자동차 부채를 처리할 묘수가 없다. 「삼성생명 주식 4백만주를 주당 70만원에 매각해 2조8천억원을 갚는다」는 시나리오는 성립할 수 없다.채권단들도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삼성생명 상장이 물건너갈 경우 삼성자동차에 빌려준 돈을 찾기가 어려워지는게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삼성생명 상장을 주장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당사자인 삼성생명은 자산재평가세 납부유예시한인 2001년3월까지 주식시장에 상장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상장 요건이 충족된다면 언제라도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삼성생명 상장과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방안은 이제 얽힌 실타래처럼 묶여버렸다. 난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당사자는 결국 삼성그룹뿐이다. 상장 이득을 계약자에게 얼마나 양보할 것인지는 주주인 삼성그룹과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이 결정해야 한다.계약자에게 이익을 많이 나눠줄수록 주식가치는 떨어지므로 삼성생명 4백만주로는 2조8천억원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자라는 금액만큼 삼성과 이건희 회장은 채워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건희 회장의 또다른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