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관리능력에서 중앙 정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초국적 자본의 파상적인 공격에한국경제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며 국제사회에 구원요청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까지의 경과설명과 극복논리에 대해 논의가 현재 진행중이지만 전지구적 세계화에 대한 한국경제의 대응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점에는이론의 여지가 없다.스위스에서 다보스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슈밥(Klaus Schwab)교수가 말하고 있듯이 세계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어떤 현상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조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슈밥 교수는세계화라는 영어표현을 「globalization」으로 할 것이 아니라「globalty」로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전지구적 세계화의 특징중 하나는 민족국가의 국경을 뛰어넘는 경제적 활동의통합이다. 경제적 활동에 있어 이제 국경은 희미한 옛사랑의그림자처럼 추억속의 흔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최소한 자본의 이동에 관해서는 국경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본에 속수무책으로 몸을 내맡겨 버렸다.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세계화의 흐름에 대응해 「한국은 세계로, 세계는 한국으로」라는 슬로건이 유행했다. 「한국은 세계로」라고 하는 전략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원조격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러한 슬로건을 계기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많은한국 관광객들이 해외여행이라는 자유를 맛보았으며 기업도 이른바 해외경영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문제는 「세계는 한국으로」라는 측면의 무리한 세계화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통해 자유방임적인 개방화정책이급속하게 확대 추진되었는데, 이러한 무분별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은 개방화정책이 비극의 씨앗을 잉태했던 것이다.개방화 정책은 국경의 담장을 낮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필요한 장벽과 높은 철창으로 야기된 비효율성과 낭비적인 적대감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담장을 낮추는 것이 안방과곳간의 열쇠조차 풀어버리고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담장을 낮추면 낮출수록 안방과 곳간의 문단속은더욱 철저히 해야한다. 문자 그대로 허허실실 작전이 필요한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개방화정책은 안방의 단속은 제대로 기하지 못한채 담장만 낮추는 천진난만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담장의 관리가 국가의 책임이라면 안방의 문단속은 지방의 역할이다. 초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 경제운영의 국가역할은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IMF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중요한 교훈은 국가주도의 경제운용 대신 지방중심의 내향적 세계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국경이 허물어질수록 내실있는 단단한 지방경제의 구축이 요구되는 것이다.요즘 우리 경제는 개혁의 소용돌이속에 빠져있다. 그러나 개혁의 내용중에는 중앙정부 혹은 국가가 갖고 있는 경제권력의 분산문제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최근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는 있으나 그것은 중앙정부-시장의 이분론에 빠져 시장기능의 확대라는 대안과 관련해 논의되고 있을뿐이다. 또 국가의 대안으로 시장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것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결국 지금대로라면 국가가 주도를 하든 시장이 주도를 하든간에 서울공화국내의 일이라는 얘기다.세계화시대에 있어 서울이야말로 정녕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앙집권적 경제권력의 지방분산에 대한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요구되는 시점이다. 동시에 「서울 경제학」의 공과를 면밀히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