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 작년 4월 금융감독위원회 출범 이후 추진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용된 원칙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과거처럼 금융기관이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일방적으로 협조 융자를 해주는 것은 금감위 출범과 함께 「신화시대에 있을 수 있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19일 유동성개선 계획과 함께 표면화한 「대우 케이스」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됐다. 필요한 자금은 지원해주되 대우는 사실상 채권단에 운명을 맡기고 감시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대우가 그동안 추진해온 구조조정이 백지화되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채권단의 복안은 무엇일까.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감위의 수장 이헌재위원장은 지난 7월27일 대우의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에 들러 몇가지 지침을 전달했다. 류시열 제일은행장, 이갑현 외환은행장, 이강륭 조흥은행 부행장, 이수길 한빛은행 부행장이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은행은 모두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사실상의 국유화 내지 반국유화은행이란 공통점을 안고 있다.회의 참석자들이 전한 지침 내용은 크게 세가지. 우선 전담팀을 만들어 대우그룹의 실태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또 외국채권단과의 협상을 추진하고, 합병 분사 계열분리 매각 등 계열사정리 계획을 수립하라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채권단이 중심이 돼 대우 실태를 파악한 뒤 계열사를 신속히 정리하는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고 이행하는 것은 물론 대우의 책임이다. 채권단은 감시와 측면 지원에 머물고 대우가 앞장서 계열사 매각 등 스스로 밝힌 구조조정을 실천하되 부진하면 담보처분권 행사 등으로 제재한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특히 계열분리와 출자전환 등 대우의 능력을 벗어난 사항에 대해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로 했다.◆ 감시·측면 지원에 머물러이같은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의 구호는 「짧고 강하게」다. 연말까지 대우의 모든 계열사를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계열사 정리는 무엇보다 채권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이뤄진다. 손실이 발생한만큼 국민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대우전담팀에는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을 중심으로 조흥 한빛 서울 외환 산업 6대 주요 채권은행단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외부자문그룹도 전담팀을 지원한다.계열사 정리에는 온갖 기업구조조정 기법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자산매각 주식매각 합병 분사 등이 추진된다. 물론 대우가 그동안 추진해온 구조조정의 밑그림에 덧칠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좋은 사업을 과감히 떼내 팔고 부실부문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채권단은 좋은 물건이 될 수 있도록 부채를 줄여주는 방안도 제시할 계획이다. 이 경우 개별기업 단위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게 대출금 출자전환과 부채탕감이다. 1천원어치를 팔면 10원이 남는데 2백원의 차입금 이자로 20원을 주고 나면 10원의 적자가 나는 A사의 예를 보자. A사의 빚 1백원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이 출자전환이다. A사는 남은 빚 1백원의 이자로 10원만 내므로 적자를 내지 않는다. A사는 장사가 잘 되면 이익을 내 건실한 기업으로 바뀌고 채권단도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출자전환분을 아예 탕감하거나 일부는 탕감하고 일부는 출자전환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채권단이 자산실사 결과에 따라 대우그룹 계열사의 구조조정방안을 결정하는 것은 주주권을 묵살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계열분리 매각 합병 등은 대부분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나서서 구조조정의 기본틀을 뜯어고치고 시시콜콜 경영에 간섭할 경우 대우의 협상력이 떨어져 매각 외자유치에 걸림돌이 될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