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두산 주류BG(Business Group)장인 김철중 대표이사전무(52)는 요즘 퇴근시간이 따로 없다. 오후 6시 업무가 끝나면 그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신촌역, 신림동 일대로 향한다. 진짜 일과는 이때부터 시작되는 셈이다.이들 지역은 주점들이 밀집돼 있어 술판매량이 어느 지역보다 많다. 주류회사들이 자사 제품을 팔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이런 노른자위 상권은 서울에서만 20여군데에 달한다. 물론 하루에 다 순례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군데를 찍어서 한다.그날 찍은 지역에 도착하면 주점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이 일대를 한바퀴 돌아본다. 홍보포스터는 제대로 붙어 있는지, 주점 냉장고에 진열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두산이 만들어 낸 소주를 몇 테이블에서나 먹고 있는지를 중점 체크한다.그런 뒤 마음에 드는 주점 하나를 골라 들어간다. 이때부터 그의 주점가 순례는 본색을 드러낸다. 동행한 직원들과 함께 술을 먹으면서 애주가들의 평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엿듣는다. 자사 술뿐만 아니라 경쟁사의 술 평가도 귀담아 듣는다.술이 몇순배 돌고 난 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신분을 밝히고 전 테이블에 「그린소주」나 「米소주」 한병씩을 돌린다. 손님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중하게 술맛 평가를 의뢰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넘기고 취기는 오를대로 올라 있다.◆ ‘그린’ 이은 홈런 자신그는 이런 강행군을 대표이사전무로 선임된 지난 2월 이후 계속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김전무의 주점가 순례는 하루 일과가 돼 있을 정도다. 회사가 저도수 소주시장을 겨냥해 시판에 들어간 「米소주」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다.그의 「米소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대표이사 전무로 선임된 뒤 처음으로 내놓은 신제품인데다 경쟁업체에 뒤져 있는 소주시장 점유율을 높일 회심의 역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하면서 판촉전에 나서고 있다.술 회사 경영인으로서 판촉을 위한 김전무의 주점가 순례는 어찌보면 당연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주점가 순례를 통해 영업파트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이 점에서 그의 주점가 순례는 당연한 것이 결코 아니다. 경영점수를 소주맛에 비유한다면 「그저 그런 맛」이 아닌 「바로 이맛이야」다.『순례를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회사 홍보포스터는 왜 경쟁사보다 적게 붙어 있고 업소 냉장고에 잘못 진열돼 있는지 단점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계속하다 보니 직원들이 경쟁사보다 한병이라도 더 팔기 위해 밤늦게까지 정말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사무실에 있었으면 아마 이런 생각은 갖지 못했을 겁니다.』이때가 지난 7월말. 김전무는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깜짝쇼」를 연출했다. 친필사인을 한 편지를 케이크, 장미꽃다발과 함께 영업파트 2백여 직원 부인들에게 보냈다.직원들 몰래 보내진 편지 내용은 대략 이렇다. 「신제품이 나와 직원들이 무척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로서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힘들더라도 참고 남편들을 격려해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며칠 지나자 회사 전화통이 불이 났다. 「매일 저녁 늦게 들어와 사실 불만이 없지 않았는데 이젠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게 됐다」 「바람을 피우지 않나 의심도 했는데 그런 오해를 한 내가 부끄럽다」는 둥 직원 부인들의 전화가 빗발쳤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직원들의 사기는 더욱 치솟았다.김전무는 직원들의 이런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최근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공격경영 목표는 소주시장이다. 경쟁업체인 진로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를 줄이기 위해 그는 당분간 수익성보다는 외형성장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수익성 위주라는 최근 경영흐름과 반한 전략을 택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두산주류BG 전체 매출에서 소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65%. 주력인 이 시장에서 두산은 경쟁업체에 뒤져 있다. 지난해 그린소주가 히트를 쳐 진로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다소 좁혀졌으나 아직 만족스런 상태는 아니다.『그린소주가 잘 팔리면서 소주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6%에서 현재 18%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연말까지 「米소주」에 대한 대대적인 판촉을 전개해 시장점유율을 23%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장기 목표는 소주시장에서 진로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1등업체로 도약하는 것으로 김전무는 이에 대해 자신이 있다. 지난해 그린소주를 내세워 소주시장에서 새로운 브랜드 개념을 제시, 좋은 평가를 받은데다 신제품으로 내놓은 「米소주」 또한 그린의 명성을 이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어서다.그의 말을 빌리면 「米소주」는 인공감미료가 아닌 천연감미료를 첨가한 저도수(23도) 소주. 천연감미료는 다름아닌 쌀원액이다. 2년간 숙성한 쌀 원액을 다시 한번 증류, 감미료로 써 소주맛을 냈다. 기존 소주가 인공감미료를 써 뒤끝이 개운치 못하나 「米소주」는 쌀원액을 감미료로 쓴 탓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사실 쌀원액을 증류해 감미료로 쓰는 공법은 경쟁사에서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공을 못했습니다. 애주가들이 한번 마셔 본다면 그 평가는 달라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김전무는 소주시장에서 1등을 하기 위한 노력못지 않게 내년에 닥칠 주류시장 대격동에 따른 대비책 마련에도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소주 35%, 양주 1백%로 돼 있는 우리나라 주세율이 WTO(세계무역기구)에서 불평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올해중 어떤 형태로든 개정이 불가피하다.주세율이 국회에서 어떻게 조정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소주주세율이 양주수준으로 맞춰질지, 양주주세율이 소주수준으로 낮춰질지, 아니면 그 중간에서 결정될지 예측불허 상태다. 주세율이 어떻게 결정되든 소주판매는 상당히 줄어들게 분명하다.그렇게 되면 주류업체간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류업체간 대대적인 인수합병이 이뤄질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최근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대지진에 따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유비무환경영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이런 그의 경영방침에 대한 오너의 믿음은 확고하다. 95년 그룹이 주력인 맥주가 휘청거리면서 경영위기를 맞았을 때 그는 그룹기획실 상무로서 구조조정작업을 빈틈없이 추진해서다. 상황이 닥쳤을 때 허둥대기 보다는 미리 앞을 보고 준비하고, 고객감동에서 더 나아가 직원감동을 통해 경영목표를 실현해나가는 김전무의 전략은 최근 경기호황으로 들떠있는 경영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