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일본의 한 시사지에 기고한 칼럼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처음에 필자는 외국인의 말 한마디에 또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경제에 대한 그의 독설은 그저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오마에 칼럼의 내용은 시간이 갈수록 머리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다.오마에는 한국의 IMF 위기 극복과정에서 지금까지가 제 1막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럭저럭 꾸려올 수 있었지만 앞으로 닥쳐올 제2막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첫째, 미국의 금융제국주의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헐값으로 국내 기업을 팔아넘기고 있으며 둘째, 한국은 부품과 공작기계를 외국에서 수입하여 조립하는 이른바 「통과경제」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고유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없고 셋째, 김대중 정부는 이처럼 「사방이 꽉 막힌 상태」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커녕 단기적인 위기처방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들을 내세우고 있다.그의 칼럼은 한국경제에 대한 비판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지만 행간의 곳곳에는 미국에 대한 불신과 비방이 짙게 배어있다. 그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것은 IMF의 돈으로 한국에 빌려준 미국 은행들의 돈을 갚게하는, 자국 금융기관의 보호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IMF의 권고에 따라 추진중인 시장개방은 미국에 한국시장을 내놓으라는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한국에서 경제개혁은 「무분별한 미국화」를 초래할 따름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의 최대 실패는 미국이 얼마나 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국가인지 모르고 섣불리 대미 접근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돌이켜 생각컨대 필자가 오마에의 칼럼을 쉽게 무시해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은 표면에 드러나고 있는 한국경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때문이 아니라 그의 대미관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의 대미관은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전후 패전처리의 올가미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본내 민족주의적 움직임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것이 21세기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구도를 규정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 비로소 그의 칼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오마에의 칼럼을 읽다보면 그가 한국의 일방적 미국화를 경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 은근히 일본식 자본주의를 벤치마킹할 것을 권고하는 것 같은, 더 나아가서는 일본이 중심이 되는 동아시아 경제구의 형성에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동참을 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미국에 맞서기를 바라는 일본 경제계의 야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일어난다.생각이 여기에 미치다보면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복잡한 경제적 기류의 소용돌이 속으로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일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은 냉전의 종식과 동시에 정보지식사회의 돌입에 직면, 나름대로의 독자적 행보를 가시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의 반서방 경제정책 추진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 중국의 독특한 경제체제 실험과 그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에 대한 세계의 불안한 시선, 북한이 모험삼아 벌이고 있는 아슬아슬한 곡예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할 것인지 등 생각해야할 사안들이 너무도 많다.결국 세기말 동아시아는 전방위적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마에의 독설은 그의 말을 그대로 삼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뱉어내기도 어려운 한국의 복잡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