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 방향이 최종적인 밑그림을 드러냈다.재벌해체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지난 8월25일정·재계 간담회에서 확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거의 「해체」에준하는 수준의 강도높은 개혁방안이 마련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재벌, 선단식경영 종식」이라는 제목으로 압축하기도 했다. 재계입장에는 사업영역 및 계열사 관리에 전방위로 규제를받게 됨에 따라 향후 그룹경영전략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안될 형편이다.◆ 재계, ‘자의반 타의반’ 수용이번에 정부와 재계가 합의한 「7대 실천사항」의 첫번째 포인트는 결합재무제표를 통한 간접 순환출자의 억제조치다. 정부는 내년부터 결합재무제표에 의해 산정된 부채비율을 건전성관리기준으로 활용, 순환출자를 규제키로 했다. 차입금 상환에사용하지 않은 계열사 출자분은 부채비율 산정시 자기자본에서제외토록 했다. 이어 2001년4월부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는데 원칙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세부적인 총액한도와 예외인정범위 등은 향후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확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재벌그룹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다.두번째 규제 포인트는 제2금융권에 대한 지배구조의 개선이다.이는 재벌그룹이 계열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한 사례가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은행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에대한 재벌기업의 금융지배력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정부는 제2금융권에도 은행처럼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내부규율장치를 강화키로 했다. 또 투신 보험사 등의 투융자한도를 줄이고 상호교차 우회투자행위를 금지하는 등 건전성 감독과 외부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와함께 투자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기업을 감시할 수 있도록 결합재무제표, 분기별사업보고서 등의 작성을 의무화했다.재벌그룹의 경영후계구도를 옥죄는 방안도 나왔다. 상속 및 증여세의 과세대상을 확대하고 세율을 상향조정한 것이 대표적.탈세 혐의가 있을 경우 나이나 금액에 상관없이 금융거래자료를 일괄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비상장주식을 증여할 경우상장 후 시가로 증여세를 부과하는 한편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보유비중을 총재산가액의 30% 이하로 제한했다.이같은 방안들에 대해 재계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수용하는분위기다. 시일이 지나치게 촉박하거나 무리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구조조정의 세계적인 흐름을 감안하면 정부가제시하는 개혁의 틀을 외면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다만 출자총액제한 문제의 경우 외국기업과의 역차별문제를 제기하며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적대적M&A까지 허용돼있는 외국인들과 형평이 맞지 않고 개별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손길승SK회장의 경우 직접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국기업이 출자총액을 제한받으면 국내외에서 신규투자에 어려움이 많다』는 요지로 보완책을 건의하기도 했다.지주회사제도 설립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무산된 것도 재계의아쉬움이다. 당초 재정경제부는 보다 원활한 기업구조조정의추진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를 건너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측은 『이 문제를 성급히 추진할 경우 재벌그룹이동일한 자본으로 계열사를 더욱 손쉽게 확장할 수 있는 빌미를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