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화ㆍ강력한 영업체계ㆍ노하우 현지화로 일본 최강 '논뱅크' 점령

빅뱅이 가속화하면서 외자가 일본을 석권하고 있다. 그러나 불꽃튀는 금융전쟁터에서 매수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기업이 외자뿐만은 아니다. 대형매수경쟁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본기업이 있다. 바로 오릭스다. 일본리스 일본장기신용은행의 매수와 관련해서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오릭스는 90년대 들어오면서 생명보험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했다. 야마이치증권의 파산이후 야마이치신탁은행을 인수했다. 올들어서는 거의 매달 기업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2월에 파칭코선불카드회사에 자본참여했다. 4월에는 NEC상품리스의 자산취득을 합의했다. 5월에는 소비자금융캐스코의 주식을 사들였다. 6월에는 일본리스의 아시아채권과 호주의 대형 트레일러리를 각각 매수했다. 7월에는 쇼와셸의 렌터카를 매수키로 했다. 한국시장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화와 손잡고 대한생명 인수경쟁에 뛰어들기도 했다.◆ 과감한 인재확보 정책도 한몫세계 최강의 논뱅크가 GE캐피털이라면 일본 최강의 논뱅크는 바로 오릭스다. 오릭스의 주가는 7월에 사상 최고치인 1만3천3백30엔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도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다. 외국인 주식이 전체의 34%선에 이른다. 일본 금융업체 가운데 최고치다. 해외로부터도 그만큼 신뢰를 받고있다는 증거다.지난해 9월 오릭스가 뉴욕증시에 상장됐을 때 외국인 기자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일본금융시장이 최악의 상황에서 굳이 상장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야우치 요시히코(宮內義彦)사장이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당사는 지금까지 관료가 만들어온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바깥에 있었습니다. (관계가 없습니다)』 오릭스는 일본의 형편없는 금융기관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야우치사장이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실적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99년3월기에 연결기준(미국회계)으로 4년 연속 이익증대를 실현했다. ROE는 약 8%.소비자금융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금융기관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오릭스만이 쾌조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릭스의 업종은 리스업이다. 연결영업이익의 4분의 3을 리스분야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미야우치사장은 5년 동안 리스협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미야우치사장은 『리스는 부가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리스업이면서도 리스사업에 대해 의외의 평가를 하고 있다.그렇다면 오릭스가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는 비법은 무엇인가. 그 첫째는 다각화다. 리스로부터 보험 산폐처리중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객의 니즈를 찾아 인접분야로 영역을 넓혀나간 결과다.오릭스는 설비리스에 의한 중소기업 사업지원에서 출발, 금융회사로 변신했다. 리스 제1호는 가네자와시의 슈퍼마켓의 캐시레지스터 4대였다. 지난 64년이었다. 오릭스는 제조기계 사무기기등 설비투자뿐 아니라 점포의 내장에 대한 파이낸스에 고객의 니즈가 있음을 알아냈다. 72년에 첫 자회사인 「오리엔트 리스인테리어」(현 오릭스알파)를 설립했다. 그후 인테리어회사를 매수, 건축면허도 땄다. 운전자금의 융자에 니즈가 생기자 대부업무에 뛰어들었다. 중소기업 오너로부터 자산운용상담을 받고는 운용업무도 개시했다. 리스기한이 끝난 설비의 폐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산폐처리 중개업에도 참여했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소기업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둘째는 강력한 영업체제다. 오릭스영업맨들은 그룹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팸플릿을 전부 갖고 다닌다. 산폐 온라인증권 다이렉트예금 오토리스…. 영업맨의 가방에 들어 있는 상품들이다. 영업맨은 바로 「움직이는 오릭스그룹」이다. 영업맨들에게는 토털 이익목표밖에 없다. 고객의 요망에 대해 결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셋째는 여성 유학생 퇴직자 채용 등 과감한 인재확보 정책이다. 설립 5년만인 69년에 여성종합직 채용에 나섰다. 현재 부장을 포함, 여성관리직이 30명에 이르고 있다. 현재 종합직의 거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성적인 차별만 없는 것이 아니다. 출신교에 따른 차별도 없다. 동료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모른다. 96년부터는 일본대학을 졸업한 유학생을 정식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들을 영업맨으로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57~58세의 숙련경력자의 재고용을 본격화하고 있다. 「영업추진역」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금융기관의 전지점장을 영입하고 있다. 차별없는 고용으로 실력주의를 뿌리내리고 있다.넷째는 노하우의 현지화 전략이다. 리스업이 미국에서 자리잡기가 무섭게 관련 노하우를 일본에 들여와 현지화했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풍으로 해석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현지수요에 맞게 개조했다.오릭스는 전투를 통해 일본 최강의 논뱅크라는 고지를 점령했다. 전신인 오리엔트 리스가 오사카에 설립된 64년에 일본은 IMF 8조국으로 이행, OECD에 가입했다. 해외여행이 마침내 자유화됐다. 이때 벌써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기준으로 결산을 했다. 창업과 동시에 미국식 회계기준을 도입 실시한 것이다.◆ 주식 공개 … 독립경영 기틀 마련70년4월 오사카증시 2부상장 때도 전쟁을 치렀다. 『이런 목적으로 회사를 만들지 않았다』는 대주주(산와은행과 니치멘)의 불만을 뿌리치고 주식을 공개했다. 독립경영의 기틀을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후에도 일본 기업 최초로 아시아달러채 발행(73년) 등 도전을 계속했다. 89년에는 업법(業法)에도 없는 상품펀드의 국내판매를 단행했다. 규정이 없으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나중에 관련법을 제정하도록 만들었다.오릭스는 철저한 경영으로 마련한 네트워크를 활용, 연관분야로 다각화를 해왔다. 미야우치사장은 『진지(陣地)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다각화는)복권(도박)이 된다』고 지적한다. 현장의 끊임없는 도전이 도박이 되지 않도록 체크하는 것이 월례전략회의. 그룹전체의 도전을 월별로 계수를 확인하면서 검증한다. 오릭스가 그동안 손을 뗀 사업은 두가지밖에 없다. 76년의 비행선 사업과 88년의 패밀리렌털사업이 그것이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 채산이 맞지 않는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얘기다.오릭스는 지난 88년 오리엔트 리스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리스」를 없애면서 프로야구구단을 매수했다. 종합리스회사로부터 탈피, 소매비즈니스회사로 변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매업에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영양가 높은 수익원은 역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비즈니스다. 승부가 걸린 소매시장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릭스의 과제는 분명하다. 「소매전선에서도 도전적인 전투집단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