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말 때문에 올들어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르고있다. 지난 6월11일. 전총재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BIS(국제결제은행)연차총회에 다녀온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6백억달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은 최소한3개월분의 수입액을 쌓아야 하지만 외채가 많은 국가는 단기외채의2배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기준도 있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중앙은행 총재가 적정 외환보유액을 공개적으로언급하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돼 있다.이후 한은은 전총재의 발언을 주워담느라 해명하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뱉은 말을 완전히 쓸어담을 순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않은 6월14일. 전총재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무딩 오퍼레이션(외환시장 개입)이라 하더라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IMF와반드시 협의하도록 돼 있다』고 말해버렸다. 외환시장은 이를 시장개입의 한계를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원화가치가 급작스럽게상승흐름을 탔음은 물론이다. 원화가치 상승을 억제하는게 정부의당시 목표였던 것을 감안하면 전총재에 대한 주위의 원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전총재는 이번에도 「설화(舌禍)사건」에 휘말렸다. 워싱턴에서열리고 있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합동 연차총회에 참석중이던전총재는 지난 9월28일 한국기자단과 만나 통화긴축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국내 여건도 그렇지만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격 상승 등 해외여건으로 미루어서도 내년 물가가 불안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따라서 통화신용정책 방향을 재조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전총재는 국내적 물가불안 요인으로 높은 성장률과 공공요금 인상가능성 등을 꼽고 『국내외 여건을 정밀 분석해 10월의 통화운용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는 것.대우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을 덜기 위해 돈을 넉넉히 풀겠다고밝힌게 엊그제인데 돈을 흡수하겠다고 했으니 파장은 불을 보듯 뻔했다. 사실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세계증시 약세로힘을 못쓰던 국내 주가는 이내 고꾸라졌다. 한은은 『원론적인 내용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사태는 「엎질러진물」이 돼 있었다.그러나 이번의 설화를 대하는 반응은 앞의 두 경우와 다소 다른 측면도 있다. 「금융시장이 불안한데 왜 그같은 말을 해서 시장을 더망가뜨리느냐」는 항변이 주류를 이루지만 「할 말을 했는데 결과가좋지 않았다」고 동조론을 펴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은 ‘원론적 내용 얘기했을 뿐’ 해명동조론은 내년중 인플레가 현실화할 것이란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사실 물가는 당장 오르는 것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곳곳에 인상요인이 산적해 있다. 성장률은 3/4분기에 10%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국제유가는 연일 뜀박질하고 있다. 엔고도 국내 물가엔 부정적인 요인이다.인플레는 한 나라 경제가 안정성장하는데 「쥐약」이나 다름없다.고비용 저효율을 낳고 자원배분을 왜곡시킨다. 인플레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될 수도 있다. 정부가 중앙은행에 물가안정을 시키라는 설립목표를 부여한 것도 그래서다. 전총재도 이를 의식해 그같은 발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전총재는 상당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청와대까지 가세해 비난을퍼부어댔다는 후문이다.결국 한은이 「긴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가까스로 수습됐지만 금융시장 불안과 물가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