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2백%가 넘는 기업은 내년부터 시장에서 돈줄이 막힐 것이란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발언이 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과연연말까지 2백%를 못맞추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인지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문의가 빗발쳤다.이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조찬강연에서 부채비율이 2백% 이상이면은행의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에 의해 해당기업의 여신이 요주의나 고정으로 분류돼 높은 이자를 물리거나 대출취급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신용평가회사들도 신용등급을 낮춰 회사채나 CP(기업어음)발행도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차입금으로경영해온 기업이 돈줄이 막히면 자동적으로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의미다. 정부규제가 아닌 시장규율인 셈이다.재계에선 당장 아우성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의 돈줄이 막히면 직접금융시장이나 해외차입도 덩달아 어려워진다. 30대그룹 가운데 몇몇은 도저히 연말까지 계열사는 물론 그룹단위로도 부채비율 2백%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다.5대그룹중 대우 외엔 2백% 달성이 무난해 보이지만 6대 이하 그룹은 사정이 빡빡하다. 건설, 무역, 운송 등 부채비율이 높은 주력기업을 거느린 재벌들은 아예 두손들고 나가야 할 판이다. 특히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그룹외에 자력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현시점에서 더이상 팔 것도, 증권시장에서의 유상증자도, 외자유치도 쉽지 않다. H그룹 관계자는 『작년부터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뼈를깎는 구조조정을 해왔는데 일부 자산매각 차질로 연말 부채비율이 2백%를 넘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전경련 관계자는 부채비율은 은행이 여신건전성 분류시 여러 평가요소중 하나인데 이것만으로 부실징후 여부를 못박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업종에 획일적으로 적용하거나 이자를 꼬박꼬박 내는데도 단지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신규여신 중단(요주의), 기존여신 회수(고정)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주장했다.◆ ‘구조조정 독려용’ ‘엄포용’으로 해석금감원 실무자들은 이위원장의 의중과 기업들의 우려 사이에서 당혹해하는 표정들이다. 이위원장의 발언을 일단 「구조조정 독려용」또는 「엄포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부가 재무구조 개선 시한인연말이 다가오면서 막바지 고삐를 당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얘기를꺼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무선에서 검토된 사항이 아니다.금감원 관계자는 『대출기업의 미래상환능력은 경영위험, 재무위험,시장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용평가모형에 따라 분류된다』며 『부채비율이 중요한 잣대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평가하는 것은아니다』고 말했다. 부채비율 2백%를 넘으면 두부 자르듯이 요주의로 분류하라고 은행들에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반도체업종의 경우 산업환경이 쾌청한데 연말 부채비율이 2백%를 넘었다고여신중단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또 적용대상도 현실적으로 제조업체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같은 부채비율 3백%라도 무역 건설업종과 제조업이 같을 수 없다. 신설기업과 성숙된 기업이 다르고 경공업과 장치산업에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그럼에도 이 위원장의 발언을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어차피 은행들의 미래상환능력 평가가 주관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가 2년째 그토록 강조해온 재무구조(부채비율)을 무시하면서 은행들이 마음대로 여신건전성을 분류하기도 어렵다. 부채비율이 나쁘면 왠만해선 다른 부문의 평가등급이 좋을 수 없다. 부채비율 2백%가 기업생사를 결정하는 절대기준은 아니어도 중요한 잣대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