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를 더욱 짜증나게 했던 대우문제와 투자신탁(운용)문제가대단원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대우채권의 손실률, 증권사와 투자신탁운용의 손실분담률, 투신운용 대주주의 책임과 한국투신및 대한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 대우·투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거치지 않으면 안될 과제이면서도 사안이 너무 민감해 거론조차 터부시됐던 사안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시한도 정해져 있다.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오는 11월6일까지대우·투신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약속한 「대우채권의 80% 지급」이 시작되는 11월10일까지 모두가 수긍할만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금융대란」이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않고 있다. 정부가 정한 시한은 그야말로 「향후 한국호가 거센 풍랑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초하느냐, 아니면 역경을 딛고 순항하느냐」를 결정하는 절체절명의 시한이다. 임의로, 마음편한대로 정한 시간이 아니다.대우·투신문제가 해결되면, 그동안 짓눌려 있던 주가는 비상의 나래를 펴고 「주가 1천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다. 한때 10.98%까지치솟았던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도 8∼9%로 안정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국가신용도는 높아질 것이며 「제2의 IMF위기」라는우려는 기우로 끝날 것이다.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대우·투신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엔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설 것이다. 주가는 7백대로 밀릴 것을 배제할 수 없으며 금리는 두자릿수의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이다.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한국을 탈출함에 따라 원화가치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2의 IMF위기를 의미한다.◆ 얼굴없는 무책임한 정책은 실패지난 7월19일 대우문제가 불거져 나온 이후 정부는 다섯차례에 걸친대책을 내놓았다. 대우그룹에 대해 신규자금 4조원을 지원하고 기관투자가의 수익증권 환매를 제한한 「7·26대책」, 대우채권이 편입된 공사채형 수익증권에 대해 기간에 따라 대우채권의 50∼95%만을지급하게 함으로써 개인투자자를 고통속에 몰아넣었던 「8·12조치」,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을 결정한 「8·26대책」, 채권시장안정기금을 설립한 「9·18대책」, 채권시가평가제 유보를 주요내용으로한 「10·4조치」 등이 그것이다.그래프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이런 대책은 그다지 효과를 내지못했다. 오히려 대책이 나온 뒤 주가는 더욱 떨어졌다.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림으로써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크게했기 때문이었다.다섯차례에 걸친 대책은 또 「얼굴없는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책은 제시되는데, 그것을책임지고 시행하고 챙길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부실화된 대우그룹에 신규자금을 지원하고, 대우채권의 손실금에 대해 50∼95%를 보장한다는 대책은 「정부의 대책」이 아니라 「업계의 자율결의」를 통해 이뤄졌다. 채권안정기금설립이나 채권시가평가제도 유보 등을 결정할 때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등,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실력자들이 사진을 찍어가며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대책을 발표할 때는 그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부처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던 사실도 정부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정책효과를 떨어뜨렸다. IMF 연차총회에 참석했던 전철환 한은총재가긴축시사를 발언함으로써 주가폭락과 금리폭등을 가져왔다. 강봉균장관은 투신(운용) 구조조정에 대해 하룻만에 번복, 신뢰를 떨어뜨렸다. 부처간 혼선은 지난 8일 경제정책조정회의가 끝나고 극치에달했다. 이근경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대우채권 손실분담과 관련, 『투신운용사 자체자금→투신운용사 대주주→증권사 순으로 분담해야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손실분담은 업계자율로 결정하되 자율협의가 제대로 안될 경우 수수료 배분비율을 근거로 해서 결정한다」는 금감위의 기본방침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결국 재경부가 금감위의 결정에 맡긴다고 밝힘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으나 정부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다.◆ 필사즉생(必死卽生) 정신으로 해법석달동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정부는 「정면승부」라는 원칙을세웠다.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는 더욱 꼬이고 치러야 할 비용만 커진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기 때문이다. 금기시됐던 공적자금 투입을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있으며, 투신(운용)사 부실규모를 강 장관스스로 공개하고 있다. 이번주부터 대우그룹의 실사결과가 나오면서, 대우채권 손실에 대한 증권사와 투신운용사 사이의 손실분담 원칙도 서둘러 만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아직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우선 정책당국자들의 대책제시가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충분한 검토와 협의를 끝내지 않은 아이디어를 정책인양 제시하는 경우가 눈에띄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투신사 퇴출은 없다』(이기호 경제수석과 이용근 금감위 부위원장)는 고위당국자의 「약속」이다. 이런 약속은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당국자들의뜻은 「손실분담액이 자기자본보다 많을 경우 대주주에게 증자를 하도록 종용함으로써 퇴출을 막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증자가 어려울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결손이 난자회사에 출자를 확대하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주택은행처럼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넘는 곳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채권시장안정기금에 대해 출자할 때 일부 은행들의 외국인 주주들이이의를 제기, 특정금전신탁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식으로 「운용의묘」를 살렸던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처럼 대주주가 사실상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복안은 이들 회사에 대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키겠다는 것(물론 그때는 대규모의 감자(減資)와 경영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다)이지만,그것은 엄밀히 말해 퇴출이라고 할 수 있다.◆ 대우·투신문제 해결 → 주가상승·금리안정 → IMF 위기의 완전극복정부가 대우·투신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온 이후 주가는 상당한 안정을 보이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5일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8백선 마저 뚫고 7백91.55까지 떨어졌다. 그 뒤 외국인 매수등에 힘입어 10월14일에는 8백66.02까지 회복했다.대우·투신문제의 해결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금융·재벌개혁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동안은 IMF위기 이전에 누적됐던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했다. 앞으로는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하는데 힘을 쏟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IMF위기를 진정으로뛰어넘는 것이며, 한발 나아가 새로운 천년(new millenium)에 두번다시 신탁통치를 받지 않고 자생력있게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전제가된다. 대우·투신문제가 조속히,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필연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사명을 갖고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