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등 기업 경영컨설팅 본격 활동 ... <경제인의 종말>서 조직사회 강조

◆ 기업을 사회적 제도로 인식드러커가 GM으로부터 GM 조직을 연구하기 위해 초빙된 것은 1943년이었다. 또 이해 드러커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가 진정한 의미의 경영학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그의 회고에따르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이었지만 그것은 나로서는 무척이나바라던 초청이었다.1942년 <산업인의 미래 designtimesp=19124>속에서, 나는 「기업」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제도」가 되었으며, 이 제도 안에서 통치자 즉 경영자는통치(즉 경영)의 원리를 확립하고 아울러 개개의 성원에게 신분과기능을 갖게 해야 된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 당연한 귀결로서 나는 대기업의 내부를 조사해야 할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나는 그때까지 대기업은 고사하고 어떤 대조직에서도 일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조사를 할 수 있는 대기업을 사방으로 알아봤으나 결국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었다.』드러커는 대기업에 관한 이런 부적절한 과제를 떠맡는 것이 그 당시고루한 학계의 눈밖에 날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드러커는 그 일을하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가히 열광적이었다. 그는 대기업이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 되었다는 것을 이미 결론내리고그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었던 터였다.GM 부회장인 도널드슨 브라운은 드러커를 만나자 『당신의 <산업인의 미래 designtimesp=19129>를 읽어보았습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에서도당신이 말한 문제를 다루어 왔습니다. 대조직의 관리와 구조, 사회에 있어서의 거대 기업의 지위, 산업질서의 원리와 같은 문제를 말입니다. 당신이 자동차 산업에 대해선 물론이고 기업경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책을읽고서 어쩌면 정치·사회학자의 눈으로 GM이라는 회사에 흥미를 갖고 있지 않으신지. 그리고 우리 회사의 구조와 경영방침, 회사 내외의 관계를 조사해 그 결과를 우리들 톱 매니지먼트, 특히 2, 3년 후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대로 우리 뒤를 이을 유능한 젊은이들에게 보고해 줄 수 없을까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GM의 실정을 모르는 드러커에게 이런 설명은 당연했지만 브라운의다음과 같은 조언은 드러커에게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은 중역들 가운데 하나인 브래들리는 대학출신이오. 그리고 미시건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소. 아니 그보다 더 그는 우리회사의 최초의 통계전문가로서 그는 대학에서 2, 3년 동안 학생들을가르쳤답니다. GM의 경영진에는 미국 산업계의 평균에 비해 대학출신이 많습니다. 최소한 중년층에는 말이오. 알프레드 슬론은 MIT 공학사이며, 나는 버지니아 폴리테크닉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사장인 윌슨은 카네기 출신입니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밑바닥에서부터올라와 훌륭하게 된 사람이 많은 것을 가장 큰 특색으로 내세우고있습니다. 우리들로서는 가능하면 그가 박사학위 소지자임을 비밀로해두고 싶은 것입니다.』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40년 전에는 기업체의 종업원또는 임원이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경력은 재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부채였던 것이다. 그때는 산업사회의 가장 중심 시대였기 때문에 지식사회의 문턱을 넘고 있는 지금과 그 당시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지금은 노동은 부채이고 지식이 자산이다.◆ 마셜 플랜 참가와 컨설팅 활동의 확대마셜 플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경제 부흥을 위한 미국의 원조계획으로서, 1947년6월 미국의 국무장관 조지 마셜(1880∼1959)에의해 입안돼 1948년부터 1952년까지 4년동안 지속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마셜 플랜을 추진하는 과정에 드러커는 마셜 장관의특별고문 역할을 했다. 드러커는 1947년 민간인 신분으로 마셜 플랜의 지도를 위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서독을 순방했다. 당시 마셜의 지도력에 대한 관찰을 근거로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리더십에 있어 「카리스마」의 허구를 지적하고 팀경영의 중요성에 대해신뢰를 하게 된다.『참다운 지도자는 「카리스마」로 지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것이 비록 선전하는 자가 날조한 것이 아니더라도 카리스마 따위는 매우 수상쩍은 것이다. 참으로 역량있는 지도자는 근면과 헌신으로 지도한다. 그는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고 팀을 만든다. 그는능숙한 책략으로 다스리지 않고 성실로 다스린다. 참다운 지도자는영리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성실하다.』1943년 드러커는 처음으로 GM에서 경영컨설팅 활동을 시작한 뒤 여러 회사에 대한 크고 작은 컨설팅을 했다. 1951년 GE에 대해서도 컨설팅을 했다. 그뒤 그는 영국 유럽 남미 그리고 아시아 특히 일본을상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컨설팅 대상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정부기관 그리고 비영리단체가 포함되었다. 비영리단체에 대한 컨설팅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에는 <비영리단체의 경영 designtimesp=19142>을 펴냈다.현재 드러커는 「드러커 비영리 재단」(Peter F. Drucker Foundation for Non Profit Management)의 명예 이사장이다.◆ 정치학자ㆍ경제인의 종말과 산업인의 미래베닝턴대학에서 드러커는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과목을 자유로이 선택해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강의과목으로는 정치이론 미국정치 미국사 경제사 철학 종교 등이었다. 미국정치학협회가 드러커의처녀작 <경제인의 종말 designtimesp=19147>(1939)의 가치를 인정해 얼마 후 드러커를그 협회의 정치이론 연구위원으로 선출해 주었다. 그런 탓으로 드러커의 학자로서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드러커는 최초의 본격적인 저서 <경제인의 종말 designtimesp=19148>에서 나치즘의 근원과 유럽의 리버럴리즘과 휴머니즘의 전통이 쇠퇴하는 근원, 이 양자의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이저작의 구상은 그보다도 몇년 전, 정확히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의정권을 장악한 직후였다. 그는 또 이 일이 있기 수년전부터 과거가아니라 미래에 대한 저서, 궁극적으로는 히틀러는 패배한다는 전제하에서 전후의 정치·사회적 통합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저작을 구상해 1940년에는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그 집필에 착수할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이 저서는 1942년 <산업인의 미래 designtimesp=19151>라는 표제로 출판되었다. 드러커는 그 책 속에서 사회가 바야흐로 조직사회(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designtimesp=19152>에서 「조직사회」를 「피고용자사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로 명명했다)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또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그러한 조직내부에 있어서 개인 신분과기능 그리고 시민권의 문제가 등장할 것이고, 그러한 조직의 통치문제가 중심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앞서 지적했다. <산업인의 미래 designtimesp=19155>는 오늘날 거의 상식화돼 있는 생각, 즉 기업조직은(기업조직뿐만아니라 어떠한 조직이든) 경제적 조직이자 사회적 조직이라는 것,즉 공동체이자 사회라는 생각을 주장한 최초의 저서였다. 이 저서는또 여러가지 조직체의 경영에 대해 드러커가 관심을 갖도록 한 밑바탕이 된 저작이며 경영연구에의 착수를 가능케 한 저작이기도 했다.뿐만 아니라 이 저작은 수년 뒤 GM 초청으로 그 톱 매니지먼트의 구조와 기업방침의 분석에 종사하는 계기도 됐다. 이 분석에서 경영에대한 드러커의 최초 저서 <기업의 개념 designtimesp=19158>이 탄생한 것이다. <기업의개념 designtimesp=19159>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집필해 1946년에(영국 표제는 「빅 비즈니스」) 발간됐다. 이후 드러커는 사회와 정치의 통합에 대한 저서와 경영에 대한 저서를 번갈아 출판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