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기초 수립 공헌, '사이비 경제학자' 매도되기도

◆ 1940년경 경영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경영(management)은 오늘날 이미 친숙한 단어로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구의 대상으로서 그리고직업의 대상으로서는 그 연구의 역사가 짧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사실 1943년 드러커가 당시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GM의경영정책과 조직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지금 우리가경영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런 것과 관련된 책이나 논문 또는 그외의것들이 아쉽게도 너무나 없었다』고 말했다. 겨우 공장의 운영방법이나 판매원관리 그리고 재무관리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뿐이었다.개념으로서 경영은 그때까지도 정의되어 있지도 않았다.『진정코 당시 거의 모든 경영자들은 자기 자신이 경영을 실천하고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체스터 버나드(Chester. I. Barnard, 1886∼1961)의 1938년 저서 <경영자의 기능 designtimesp=19145>과 같이 강연의 재록으로서 혹은 메리 파커 폴릿(Mary Parker Follett, 1868∼1933) 여사의 리더십과 갈등해결에 관한 선구적인 논문과 같이소수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뿐이었다.당시는 매니지먼트에 관한 저서의 독자층, 즉 매니저층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대부분의 매니저가 자기가 매니지먼트를실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대중도 부자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으나 「매니지먼트」 따위의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조직이나 구조, 경영자의 육성,직공의 우두머리나 중간관리직 역할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깊고 까다로운 테마로 책을 내어본들 읽힐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그때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경영에관한 서적들이 서점과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 경영대학과 MBA과정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최고경영자 교육은경영컨설팅과 마찬가지로 수지맞는 학교사업이 되고 있다.간단히 말해 경영은 지금 원칙이 잘 수립된 분야가 되었다. 그리고그 원칙을 수립하는데 기초를 놓은 책이 <기업의 개념 designtimesp=19152>이다. 이것은드러커가 GM 연구 결과를 출판한 것이다. 드러커 자신은 <기업의 개념 designtimesp=19153>이 출판된 시점을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우연히도 내가 그곳에 있게 된 최초의 사람이었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분야의 개척자들이 늘 그렇듯이 드러커가 최초로 그 자리에 있게 된데는 행운 이상의 것이 있었다.◆ 사이비 경제학자로 매도된 드러커<기업의 개념 designtimesp=19158>은 발간과 동시에 크게 히트해 몇번이나 판을 거듭해도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에 의해 읽혀지고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드러커의 여러 친구 학자들은 책을 내는 편이 좋겠다는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체로 『자네는 경제학자 내지는 정치학자로서 장래가 유망시되고 있네. 그런데 기업을 정치나 사회의 한 제도로서 다루는 책을 쓴다면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로서도 자네에게 플러스가 될건 없지 않은가』라고 드러커에게 충고했다.친구들이 예상했던대로 <기업의 개념 designtimesp=19161>에 대한 「아메리칸 이코노믹리뷰」의 서평은 『「미시 경제학」이 아닌 비즈니스 방면의 책에당혹할 뿐만 아니라 가격의 이론이나 희소자원의 배분문제에 대한통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아메리칸 폴리티컬 사이언스리뷰」의 매우 동정적인 서평마저 『이 유망한 젊은 학자는 그가 지닌 재능을 더욱 진지한 과제에 경주하길 바란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1950년경 드러커가 뉴욕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 이미 노경에 접어들어 이름을 떨치고 있던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1881∼1973)도 뉴욕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만나고있지는 않았지만 미제스는 드러커를 배교도, 즉 진짜 경제학에 등을돌린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드러커를 돌아보고 힐책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그러나 이 저작은 확실히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을 뿐 아니라가르쳐지지도 않았던 하나의 주제, 즉 「매니지먼트」라고 하는 학문분야의 확립에 기여했다. <기업의 개념 designtimesp=19166>은 좋든 나쁘든 간에 그후30년간의 「경영학 붐」에 점화하는 역할을 했다.◆ 찰스 윌슨과 알프레드 슬론과의 만남GM에서 일하는 동안에 드러커는 수십명의 중역들을 만났다. 그들 한사람 한 사람이 모두 별종의 인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인상에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똑같은 줄무늬 회색 양복을 입은 「조직인」(organization man)이라는 신화와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개성과 성격과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드러커가 만난 매우 특색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GM의 사장으로 최고업무 집행자(CEO)인 찰즈 E. 윌슨(Charles E. Wilson)이었다. 그는 드러커가 조사를 끝낸 후에도 접촉해 준 유일한 GM의 간부였다.윌슨은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의 뒤를 이어 GM의 최고경영 집행자가 되었다. 윌슨과의 접촉은 그가 아이젠하워 정권의 국방장관을 지낸 4년간에도 횟수는 줄었으나 여전히 계속되었다.「매니지먼트」와 「산업 질서의 가치」라는 두가지 과제에 대한 드러커의 연구 중에서 「자치적인 공장공동체」(autonomous factory community)와 「종업원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가장 중요하며 또한 독창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경영자측에서 보면 이런 생각은 「경영자의 대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져 배척받았다. 한편 노동조합 측에서도 그런 생각을 정면으로 반대했다.그 까닭은 노동자들에겐 적으로 싸울 상대로서 분명히 눈에 보이는「보스」 또는 경영주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윌슨은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노조의 지도부에 유능한 인물은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능한 인물은 모두 대학으로 가서공인회계사가 되든가 매니지먼트 분야로 나가고 신통치 않은 자만이노동조합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앞일을 걱정했는데 불행히도윌슨의 이 예언은 완전히 적중했다. 미국의 노조조직률은 2차 세계대전직후 35% 수준에서 지금은 15% 미만으로 떨어지고 있다. 드러커는 20세기에 들어와 가장 성공한 조직도 또한 가장 쇠퇴한 조직도노동조합과 은행이라고 지적했다.드러커는 어느 날 『이런 말단직 종업원 한명 선발에 자그마치 4시간이나 걸립니까』라고 슬론에게 말했다. 그러자 슬론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들이 인사 결정에 4시간 걸렸다면, 과오를 범한 뒤의처리에는 4백시간이 걸릴 것이요. 그런데 내겐 도저히 그럴 시간은없소』 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드러커는 그후의 여러 저서에서 특히 최근의 <21세기 지식경영>에서유능한 인재의 중요성, 특히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강조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보수 자원봉사자마저도 효율적이어야 하고 성과 중심으로 채용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그 당시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가 한다. 슬론은 옛날부터 지켜온 중요한 룰을 한가지 강조했다. 『「자기의 후계자」는 결코 자기가 선택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뒤를 잇게되고 결국 그런 후계자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