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즈니스 이끄는 첨병...예술 영화 전용관 설립이 '꿈'

한해에 보는 영화만도 수백 편에 이른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퇴근을 해도 비디오를 봐야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휴일이라도 영화관을 찾거나 VTR리모콘을 만지작거려야 한다. 한달에 한번 꼴로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좋은 영화를 「사냥」하기 위해서다. 비행기가 내리는 나라는 달라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의 주제가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없다. 얼마전 동경국제영화제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그래서 영화를 빼놓은 일상은 상상이 안된다. 질릴 법도 하지만 변함없이 「오직 영화뿐」이다.『1백편의 영화를 봐야 관객수준에 맞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영화 한편을 겨우 건질 수 있다』며 말문을 연 (주)영화사 백두대간의정태성(35)상무의 일상이다. 언뜻 보면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또는 영화평론가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무가 하는 일은제작과는 거리가 멀다. 일일이 외국영화를 직접 보고 관객이 몰릴거라고 판단되거나 한국에 알리고 싶은 수준높은 영화를 수입·배급·유통하는 일과 한국영화를 수출하는 일이 정상무의 주업무다. 영화라는 예술에서 제작관련이외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영화를 비즈니스하는 일이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영화딜러라고도 부르며 가장 유명한 영화딜러로 정상무를 서슴없이 꼽기도 한다. 특히 진지하게 몰입해야하는 예술영화의 경우 단연 독보적인 존재로 지목된다.정상무가 속한 영화사 백두대간은 각종 세계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지난 대종상영화제에서는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부문을 휩쓴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만든 이광모감독이 사장으로 있는 곳. 지난 94년 설립돼 이듬해 영화감상에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감독의 「희생」을 들여와 상영하면서예술영화붐을 일으킨 곳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선 익히 알려진 예술영화 전문수입·배급업체이자 영화제작업체다.『영화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는 생각도 안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수입·배급해 한국에 예술영화를 알리자는 이감독의말에 솔깃했습니다. 결국 가방 하나 덜렁 들고 귀국, 이감독과 함께영화사를 차리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죠.』◆ 한국영화 세계진출 앞장미국 UCLA와 중국 북경대학에서 공부(동아시아학)를 한 정상무가 영화판에 뛰어든 동기다. 미국 유학시 룸메이트였던 이감독의 권유에직장인 미국 연방재해대책위원회마저 그만뒀다. 여기에는 어릴 적에「연소자 관람불가」라는 붉은 글자를 무시하면서까지 세일·청계·미도극장 등을 오가며 영화에 빠졌을 만큼 영화를 좋아했던 기억,이감독의 단편영화제작시 프로듀서 역할을 한 경험, 예술영화 수입·배급이 아무도 하지 않는 틈새시장이라는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작용했다.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기대이하였다. 『특히 「희생」을 들여와 건다(극장에 상영한다)는 말에 「한국에서는 예술영화가 안 먹힌다」,「무조건 망한다」 등 영화인들의 만류가 보통이 아니었다』고. 그러나 「희생」은 개봉 첫날부터 매진을 거듭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국내에 처음으로 예술영화 전용관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영화사 설립후 5백일간 쉰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고생한 보람이있었다』고. 그후 정상무의 예술영화 릴레이는 계속됐다. 「천국보다 낯선」 「노스탤지아」 「거미의 계략」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화니와 알렉산더」 「영국식 정원살인사건」 「증오」 「뽀네뜨」 「올리브나무사이로」 「체리향기」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검은고양이 흰고양이」 「소무」 등 마니아들이 탐닉하는 30여편의 수작을 잇달아 선보였다. 대부분 정상무의 손이 닿은 것들이다. 예술영화를 알린다는 취지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수입한 작품도있지만 『다행히 회사에 큰 어려움을 끼친 영화는 없었다』고.이러한 정상무의 예술영화에 대한 고집으로 예술영화 마니아라는 고정적인 관객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상무는 이제까지의 결실에 만족해하고 머물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영화가 산업으로 거론되는 현실에서 프로모션이나 마케팅 등과 같은 영화비즈니스가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영화비즈니스지망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영화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영화비즈니스 지망생들에게 『영화와 비즈니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며 영화 한편에 자동차 몇 대 수출이라는 식의 사고보다는 영화를 먼저 「문화」로 파악하고 비즈니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게 정상무의 말이다.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해외판권수출만으로 3억원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것도 한국정서와 문화를 담은 수준높은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제대로 된 제작기획을 해보고 싶습니다. 여태까지는 연출 촬영 시나리오 콘티 등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에는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나름대로 크리에이티브한 면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영화 특히 드라마를 제작기획하고싶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긴다면 예술영화 전용관을 세우고 스크린속에 흠뻑 빠져들고 싶습니다. 그게 꿈입니다.』 다양한 영화적체험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는 「토토(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정상무」가 짜는 「천국」의 콘티다. 좋은 한국영화제작이 우선이며 이를 발판으로 아시아시장에 진출하고 다시 세계영화시장으로나가겠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작품성도 높아지고 해외시장에서의경쟁력도 향상되는 등 전망이 좋다는 자신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