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상반기. 바닥을 확인하려는 듯 떨어지던 부동산가격을 잡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팔리지 않는 집,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보증금 등으로 전국이 아우성이었다. 거래는 뚝 끊겼다. 당연히 많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개점휴업상태로 고통스런 시기를 보내거나 문을 닫아야 했다.하지만 비온 뒤 굳어지는 땅처럼 이제 부동산 중개업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구태의연하고 소극적인 자세로는 승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중개업계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변신의 특징적인 흐름은 크게 네가지. △스스로 정보를 수집·분석, 공유하는 정보화 △특정 분야에 주력, 특화하는 전문화 △시너지효과를 겨냥하는 체인화 △부동산시장개방에 따른 국제화 등이다.물론 이러한 경향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복덕방 수준을 뛰어넘는 시도들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2년간의 IMF체제를 거치면서 존폐의 기로에 섰던 중개업소들의 경험이 이러한 변화를 더욱 자극한 것이다.이러한 자극요인으로는 몇가지가 있다.가장 먼저 똑똑해진 수요자와 부동산정보의 대중화를 들 수 있다. 최근 부동산정보는 각종 매스컴이 비중있게 다루는 「고정코너」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처럼 특정인 몇몇만이 소유했던 정보가 아니라 매일 새롭게 생산되고 일반인에게 회자되는 생활정보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게다가 전문가 뺨치는 부동산지식을 가진 일반 투자자들이 무섭게 늘고 있다. 그들이 감탄하지 않는 투자상담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한발 앞서 정보를 수집해야 고객에게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신문·잡지의 부동산면에 자신의 중개업소를 등장시키려는 노력이 치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대한 자신의 전문성을 알리고 고객에게 신뢰감를 심어 주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스스로 뉴스 아이템을 개발하는 중개사도 적지 않다.그만큼 부동산 투자자가 늘고 정보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이는 곧 단순히 중개업무만 대행하던 브로커에서 더 나아가 정보의 수집·생산·분석까지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요구한다. 구태를 벗지 못하는 중개사에겐 고객이 붙지 않는 상황도 일선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둘째로 꼽을 수 있는 요인은 부동산시장의 전면 개방이다. IMF이후에 정부는 넘쳐나는 기업매물을 외국자본이 소화해주고 더불어 국내 부동산경기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랐다.지난해 6월에 단행된 부동산시장의 전면 개방도 그런 취지로 이뤄졌으며, 오래지 않아 효력이 나타났다. 98년 10월 외국인 소유 토지가 여의도 면적의 1.5배로 늘어나더니 올 상반기에는 6배인 5백27만평 규모로 증가했다. 뿐만 아니다. 외국계 부동산회사들도 서둘러 국내로 진출했다. ERA, 센츄리21과 같은 미국계 중개체인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리맥스, 콜드웰뱅커 등 굵직한 외국계 중개체인의 국내 상륙설도 끊이지 않고 나왔다. 앞선 서비스와 전문성, 풍부한 자금력과 마케팅능력 등으로 무장한 외국계 업체들은 체인점 확대를 통한 「소매」(주택 상가 등의 거래)와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도매」(기업매물 등 덩치가 큰 부동산의 거래)를 병행하면서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잰 걸음을 보였다.이러한 외국계 부동산업체들의 움직임은 결국 국내 부동산업체들의 위기감을 자극했으며 변신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복덕방수준의 서비스로는 외면받을 게 뻔하다」는 우려가 중개업소의 변신을 이끈 것이다.셋째로 중개업계 내부의 경쟁이 어느때보다 치열하다는 사실이다. IMF가 낳은 최고 인기 자격증의 하나로 꼽힌 것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다. 올해 새로 탄생한 중개사 숫자만 1만4천7백81명에 이르며, 올해 개업한 중개업소는 2천7백45군데(9월말 현재)에 달한다. 살벌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새로운 공인중개사들의 배경도 고학력추세가 뚜렷하다. 올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 가운데 대졸이상 학력을 가진 합격자가 전체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85년 이전부터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복덕방 세대」(중개인)들은 갈수록 그 숫자가 줄고 있다. 개중에는 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중개인이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인」받지 못한 중개인이 시장에서 체험하는 소외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시험 시장 '특수 / 억대 학원 '수두룩' 주변 상권 '북적북적'지난 4월 25일 치러진 제10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는 총 13만1백16명이 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85년의 제1회 시험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였다. IMF이후 치솟은 실업률과 절대 평가로 바뀐 시험제도, 자격증 취득후 비교적 높은 활용도 등이 많은 이를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으로 향하게 했다. 대졸이상 고학력자도 「따놓으면 재산」이라는 생각에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덕분에 호황을 맞은 곳은 학원가다. 수험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학원의 하나로 거론되는 노량진 J고시학원. 지난 봄 시험때는 2천명 안팎의 수강생이 거쳐간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현재 6개 강좌에 8백명 정도가 수강 중이다. 하지만 내년 봄 시험을 겨냥한 수강생이 점차 늘고 있어 그에 따른 강좌를 계속 증설하고 있다. 수강생들의 구성도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 처녀부터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까지 하루 3시간 50분 수업에 열중한다. 방과 후에도 자습실의 빈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비단 J학원만이 아니다. 공인중개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1∼2년 사이에 전문학원이 크게 늘었다. 최근 서울·경기지역에 신설된 공인중개사 전문학원만 30군데를 헤아린다. 이처럼 학원들이 급증한 것은 중개사 시험시장의 매출이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매력이 크기 때문이다. 올 봄 중개사자격시험 원서를 제출한 인원이 2개월간 학원에 다니고(수강료 20만원) 교재를 구입(교재대 10만8천원)했다고 가정할 때, 총 4백억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어림잡을 수 있다. 게다가 완벽한 현금 거래이다.학원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학원 주변의 식당, 서점, 커피자동판매기 등은 수험생으로 특수를 누린다. 바야흐로 「공인중개사 시험 산업」이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