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계열 종합상사인 K사에 근무중인 김모과장(35)은 요즘 창업을 신중히 고려중이다. 지난해 입사 7년만에 과장으로 승진, 동기생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회사에 정년 때까지 남아있을 생각은 별로 없다. 특히 차장이나 부장직에 올라 있는 선배들을 볼 때면더욱 그렇다.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확실한 비전이 보이기보다는 뭔가 답답하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이미 김과장의 동기생 30명 가운데 1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IMF 사태 직후 회사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일부가 나갔고, 나머지는 최근들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용보장이 안되는데다성취감마저 별로 느낄 수 없는 대기업은 자신들이 머물 곳이 아닌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전직을 하거나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직장인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고, 아예 마이웨이를 선언하고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회사에서는 업무 진행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소속 사원들의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IMF 사태직후 회사가 사원들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식으로 잘라내던 상황과는 아주 딴판인 셈이다.더 큰 문제는 지금 당장은 직장에 머물러 있지만 「딴 생각」을 하는 사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지금다니는 직장을 미련없이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L전자의 이모과장(36)은 『한때는 대기업 사원이라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크게 달라졌다』며 『특히 최근 들어 벤처기업 직원들 가운데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벤처기업의 유혹 역시 대기업 직장인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상당수벤처기업들이 정보통신이나 인터넷 관련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대기업체 사원들에게 무차별적인 구애를 하는 실정이다. 직급을 2~3단계올려주는가 하면 파격적인 조건의 소톡옵션을 내걸면서 벤처기업 입사를 권유한다. 대기업에 다니며 승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별다른비전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장 거절하기 힘들다.이 대목에서 대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고급기술인력 유출에 비상이 걸리면서 최근 들어 파격적인 인센티브제를앞다투어 도입하는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삼성그룹은 올해부터스톡옵션제를 전계열사에 도입해 시행중이고, 현대그룹과 두산그룹역시 스톡옵션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은 상태다. 또 LG그룹은 올해부터 전계열사에서 성과급제를 실시키로 했다. 이밖에 정보통신 관련 몇몇 업체에서는 지난해 연말 일부 핵심인력들에게 파격적인 액수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했다.하지만 직장인들의 탈출러시는 새로운 밀레니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직장인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데다 벤처기업 열풍이 당분간 수그러들 것 같지 않은 까닭이다.여기에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의 인력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여 특정 업종 대기업체 직원들에 대한 「러브콜」은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양병무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앞으로 대기업 입장에서 획일적인사관리로는 우수한 인력을 뽑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힘들다』며 『보상체계를 선진화함으로써 우수인력에게는 능력에 합당한 대우를해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