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성과급제 실시 등 ‘우수두뇌 지키기’ 안간힘

1999년말 우리나라 대기업들 사이에 가장 유행한 말은. 「성과급」과 「스톡옵션」 이다. 스톡옵션은 미리 정해진 가격(행사가격)에일정수량의 자기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일정 기간 뒤 주가가 오르면 그만큼 차액을 챙길 수 있어 월급장이로서는 엄청난 보상이다.지난해말 국내 대기업들은 너도 나도 미국기업과 국내외 벤처기업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스톡옵션제와 파격적인 성과급제도를 도입한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그것도 일반직원까지 대상에 포함시켜 놓았다. 다분히 대기업을 박차고 벤처기업으로 옮겨가는 젊고 유능한 인력을 겨냥한 것들이었다.삼성그룹은 올해부터 삼성전자 삼성SDI 등 전계열사에 스톡옵션제를실시한다고 지난해 12월 공식 발표했다. 대상은 최고경영자와 각사의 핵심인력으로 최고 연봉의 20배 이상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을 주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목표이상의 순익을 거뒀을 경우 초과이익의 20∼30%를 종업원들에게 분배하는 이익배분제도 시행하기로 했다. 이것도 기존의 연봉 및 성과급과는 별도로 운용한다는 것이다.현대그룹도 우수인재를 확보하고 성과를 토대로 한 인센티브체제의확립을 위해 올 1/4분기 중 전계열사에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하기로했다. 현대그룹안에서 가장 먼저 스톡옵션제도입을 발표한 현대전자는 이에 앞서 임직원의 7%에 해당하는 1천5백여명에게 8백만주의 스톡옵션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연구개발직은 대리급 이상, 사무직은 차장급 이상이 대상자이며 직급에 관계없이 우수인력 3백10명에게는 5천∼2만주를 추가로 배정할 방침이다.◆ LG·현대자동차 별도 성과급제 실시스톡옵션 이외에 파격적인 성과급제도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LG그룹은 올해부터 「사이닝 보너스 제도」 「디지털 인센티브제」「특별 연봉제」 등 각종 성과급제도를 새로 실시한다. 사이닝 보너스 제도는 회사에 필요한 우수인재가 입사하면 상한선없이 일시불로거액을 지급하는 것. 디지털 인센티브제는 회사에 큰 기여가 있을때 즉시 보상하는 제도이고, 수시로 능력을 평가해 가치를 반영하는것이 특별 연봉제이다. 우수인력에게는 별도의 휴가를 주는 「리프레시 휴가제」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리프레시를 위한 휴식을상당히 중요시한다는데 착안한 인센티브이다.현대자동차 역시 스톡옵션과 별도로 종업원 성과배분제도를 실시할계획이다. 이것은 경영성과와 관계없이 의례적으로 지급되는 현재의성과급제도 대신 결산시 이익이 나면 이 가운데 주주와 사내유보로각 30%씩을 돌리고 나머지 30%를 종업원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것이다. 코오롱은 일부 계열사에서 시행해온 성과급제도인 BOSS를전 계열사로 확산시키고 스톡옵션도 도입할 방침이다. 이 회사는 아예 직원과 기업이 모두 풍요로워지자는 뜻에서 『리치&페이머스』(RICH&FAMOUS)를 올해의 경영이념으로 삼았다.또다른 대그룹은 그룹중앙연구소에 근무하는 핵심연구원들에게 지난해말 비공식적으로 각종 보너스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지난해 7월 삼성전자가 학사 출신의 대리급 사원에게 반도체 소재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2억원을 지급했다해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기술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나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벤처기업에서 개발했을 때 기대되는 개인적 보상에 비하면 역시 큰 액수는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스톡옵션은 경영목표를 거두기 위해 최고경영자나 직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능력 발휘를 유도하고 이것을 보상해준다는 일차적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 대기업들이 서둘러 도입하고 있는 스톡옵션은 인재 뺏기지 않기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벤처기업에 우수두뇌를 뺏기지 않고 현재 확보한 우수인력의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과 인터넷 분야는 수요가 폭발하는데 비해 전문인력 공급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어서 대기업들의 우수인재 지키기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벤처기업으로 빠져 나가는 고급두뇌 가운데 상당수는 벤처기업이기에 가능한 창의적 분위기 이외에 스톡옵션이라는 매력에 끌리고 있다는 것이 대기업의 시각이다. 정몽헌 현대그룹회장은 아예 스톡옵션 실시 배경의 하나로 『유능한 직원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할 정도이다.◆ ‘창의성 발휘 어렵다’ 대기업 탈출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7백23개 상장기업중 스톡옵션을 시행중인 기업은 41개업체이다. 이 가운데 임원외에 직원까지스톡옵션을 받는 곳은 삼보컴퓨터 메디슨 등 극소수. 그러나 올해스톡옵션을 시행할 예정인 대기업들의 대부분은 일반 직원까지 대상에 넣고 있다.중장기적으로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제 도입은 대기업에서도 보상체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실리콘밸리식 경영」으로 불리는 미국 벤처기업의 경영모델이 한국 대기업에 확산되는 것이다.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농업적 근면성을 가진 수백명의 평범한 사람대신 한명의 천재가 수천 수만 명을 먹여 살릴수도 있다. 따라서 창의적 인재의 생산성을 자발적으로 끌어올리고이들을 지켜내는 것은 기업의 생존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기업도 우수인력이 없이는 미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할만한 1백대기업을 살펴보면 스톡옵션과 사내탁아소 여가제공 등 종업원 복지에공을 들이는 기업들이 생산성과 경상이익률이 높다. 창의적 인재들이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기회사를 신뢰하는 우수두뇌가 있는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생산성이 높고 기업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신뢰경영지수를 개발한 미국 GPWI연구소의 로버트 레버링 소장은 『글로벌 기업경쟁시대에 최고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분하는 가장 뚜렷한 기준은 우수두뇌의 자질에 있다』고 설명한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기업의 인재단속노력은 과연 성과를 거둘 수있을 것인가.삼성SDS의 이동희 홍보팀장은 『벤처기업열풍이 조만간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따라서 『우수두뇌의 벤처 대이동도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과감한 인센티브에도 불구,우수인력의 대기업 탈출러시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한 대기업 연구원은 『창의적인 연구도 어렵고 기술인력에 대한 보상도 적은데다 불황이면 연구인력과 연구개발비부터 자르는 대기업풍토에 환멸을 느껴온 동료들이 많다』고 말한다.스톡옵션만으로 벤처로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재계의 난제중 하나로 「벤처기업으로의 인력유출사태」를 꼽은 것도 이것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대기업의 고민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