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대통령이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FRB)의장을 조기에 연임시킨 것은 경기 및 증시를 연착륙시키자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정치적인 고려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최근 주가가 급등해 거품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는 증시의 열기를 가라앉히자는 것이 큰 배경으로 보인다.이같은 배경을 갖고 있는 연임결정은 즉각 시장에 반영됐다. 지난 4일 그린스펀의 연임이 발표되자 뉴욕증시의 전광판들은 온통 시뻘겋게 물들었다(미국은 우리와 달리 붉은색이 하락을 의미한다). 다우존스 공업지수를 비롯, 나스닥 S&P500 등 주요 3대 지수가 3∼5%씩 급락했다. 뉴욕증시의 폭락은 곧 세계증시로 파급돼 파리 런던 등 유럽주가와 도쿄 서울 홍콩 아시아주가까지 곤두박질치게 했다.금융계는 물론 일반투자자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그의 연임이 왜 시장에서 초대형 악재로 작용했을까. 금리인상 우려 때문이다. 주가와 금리는 상극이다. 국내의 경우 3년만기 국고채 수익률(금리)의 움직임에 따라 종합주가가 출렁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리로 경기 조절 … 주가에 악재그린스펀은 그동안 미국주가가 30% 이상 과대평가됐다며 금리조절을 통해 이를 완만히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 경제는 작년 3.8%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높은 경제성장이 유력시되며 사상 최장기 호황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그린스펀은 경기과열을 방치해 경제가 일시에 고꾸라질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인플레 예방을 위해 금리인상 등 공격적인 통화긴축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철저하게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조절한다. 경기에 과열조짐이 보이면 금리를 인상, 과열을 식힌다. 그의 지상목표는 안정성장으로 물가가 안정된 상황에서 성장률 2.5∼3%를 추구하고 있다.작년 경제성장률 속도가 둔화되지 않고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10,000포인트, 3,000포인트를 꿰뚫는 등 급등을 거듭하자 3차례나 금리를 인상한 것이 그의 캐릭터를 엿보게 하는 단면이다.그린스펀의 연임으로 금리인상은 기정 사실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얼마나 올릴 것이냐에 쏠려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이언 윈은 최근 「아웃룩 2000(Out Look 2000)」이라는 예측보고서를 통해 「1%포인트 이상의 금리인상」을 점쳤다. 이 경우 현행 연방금리는 5.5%에서 6.5%까지 올라간다는 얘기가 된다.일부 전문가들은 다음달 1, 2일 열리는 올 첫 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에서 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내놓는 실정이다. 최근 6.5%대에서 움직이는 미국의 30년물 장기국채 수익률(금리)은 작년 초 5.15%였다. 1년새 무려 1.3%포인트 이상 오른 셈이다.또 국제기준금리로 쓰이는 리보금리 3개월물도 작년 초 연 5.06%에서 최근에는 6.18∼6.20%대를 유지, 1%포인트 이상 상승돼 있다. 이같은 미국 국내외 주요 금리추이를 감안하면 올해 기준금리의 1%포인트 인상은 거의 확실시된다.최근처럼 동조화가 보편화된 상황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은 세계적인 금리인상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 세계경제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면서 각국이 성장중심에서 물가안정 위주로 정책을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지난 5일 금리인상을 유보한 유럽중앙은행(ECB)도 3월 통화정책이사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제로(0)금리정책」을 펼쳐온 일본은행도 늦어도 하반기에는 재할인금리를 0.25∼0.5% 가량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외환위기를 겪었던 아시아 개도국들도 올해에는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작년 성장주도의 정책으로 인플레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물가를 다독거려야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밖에 호주 홍콩 브라질 등도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다.세계적인 금리인상 도미노현상으로 올 하반기중 리보금리(3개월물 기준)는 연 7%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린스펀, 그는 누구인가 / 국제 금융시장 움켜쥔 ‘경제대통령’「그린스펀 장세」 「그린스펀 가방이론」 「그린스펀 경제」.모두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과 관련된 신조어들이다. 그린스펀 의장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갖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을 의미하고 있다.실제로 1987년8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에 의해 FRB의장에 임명된 이래 그가 의회에서 한 32차례 증언중 22차례 증언 직후 미국 및 세계증시가 급변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고도 일컫는다.그린스펀은 또한 역대 FRB의장중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지난 1987년 FRB의장에 임명된 후 취임 2개월만에 벌어진 「블랙 먼데이」 사태에 침착하게 대응함으로써 정계는 물론 금융계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시의적절한 금리정책으로 「저물가-고성장」으로 상징되는 「신경제」를 만들어냈다. 지난 1998년9월 러시아의 디폴트 사태 때도 연방금리를 3차례나 내림으로써 자칫 1997년에 이어 다시 격랑으로 빠져들 뻔했던 세계금융시장을 건져냈다. 지난 1997년 21세 연하의 안드리아 미첼(NBC 기자)과 재혼했다. 아침에 욕탕에 몸을 담근채 경제지표들을 분석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석사를 받고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력중에는 줄리아드음대 졸업이라는 이색적인 과정도 끼여 있어 눈길을 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라리넷 색소폰 등을 불기 시작해 40년대 중반 줄리아드음대에 입학했으며 한때는 밴드생활을 했다.다음은 지난해 그린스펀의 주가시장 관련 발언들.ㆍ파티흥이 고조될 때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게 나의 임무다.(작년초 의회연설에서)ㆍ지난 5년간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 주가의 과도한 급등으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시장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지난해 8월 FRB연례금융정책회의)ㆍ최근 주가상승은 투자자, 대출자 모두에게 위험하다.(1999년10월 미통화감독청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