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영국의 대학에서 연수를 하고 지난해말 귀국한 회사원 김모(35)씨는 한국에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대학친구들을 만나도, 회사동료들을 만나도 너도 나도 증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던 1998년 가을에는 누구도 주식에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IMF의 골이 깊던 시기이기도 했다.돌아온 김씨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사이버로 증권거래를 하는 동료들이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인터넷의 「인」자도 모르던 넷맹친구들이 PC모니터에 그래프와 차트를띄워놓고 클릭 한 번으로 주식거래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충격을 느낄 지경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던 노래방은 간데가없고 그 자리에는 「인터넷증권방」이라는 희한한 점포가 들어서 있었다. 대학가의 PC방은 흡사 증권사 객장같다는 후배들 이야기도 들었다.사이버거래. 온라인증권거래시대다. 온라인으로 주식투자를 하는모습은 더 이상 첨단적이지도 드물지도 않은 장면이 됐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거래소와코스닥시장을 포함한 주식시장의약정금액(2백67조9천3백72억원) 가운데 사이버로 오고간 금액이 1백7조7천6백32억원이다. 40.2%를 넘는비중이다.◆ 지난해 12월 사이버거래 비중 40.2%절대 규모의 증가도 엄청나다. 선물과 옵션을 포함한 연간 증권약정금액은 6백84조3천3백12억원이다.1년전(22조4천6백77억원)보다 2천9백46%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주식은 1년전 11조4천4백16억원에서 4백95조2천5백56억원으로 4천2백39%나 늘었다.사이버증권계좌수는 1백88만7천2백45계좌. 1년전(22만7천3백50계좌)보다 7백30%나 늘었다. 한 사람이여러 계좌를 가진 경우를 고려해도1백만명 이상이 인터넷으로 증권거래를 하고 있다. 올해도 증시활황이 지속되면 『대신 LG 삼성 현대대우 등 5대증권사의 사이버거래규모가 1천조원을 넘을 것』(김완규 대신증권 사이버마케팅팀장)으로 전망하고 있다.전체 주식거래의 40% 이상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온라인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온라인 증권거래의 시발지인 미국(30%)보다도 높다.사이버거래가 급증하면서 인터넷을기반으로 한 사이버증권사도 국내에 등장했다.박현주펀드로 유명한 미래에셋이설립한 E*미래에셋증권이 24일부터영업을 시작했다. 미국의 온라인증권사인 E*트레이드는 소프트뱅크 LG투자증권과 합작으로 E*트레이드코리아증권을 출범시킨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증권사 찰스 슈왑은 현대증권과 손잡고 합작사 설립을 추진중이다.온라인 증권거래가 붐을 이루게 된것은 무엇보다도 증권시장의 호황에 힘입은 것이다.최근 조정국면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1999년초 587.57포인트였던 종합주가지수는 연말에 1028.07포인트로 4백40포인트이상 올랐다. 코스닥시장의 활황으로 벤처기업들은모처럼 도약기를 맞았고 우리사주가 올라 즐거워하는 회사원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다.인터넷 인구와 인터넷통신망이 비약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초고속통신망의 보급으로 가정에서 인터넷을 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초고속통신망과 고성능컴퓨터로 무장한PC방 인터넷게임방 등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업태는 사이버거래의훌륭한 인프라스트럭처가 되고 있다.기존의 위탁수수료보다 싼 온라인거래수수료도 사이버거래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현재 대다수 국내 증권사의 사이버거래 수수료는 거래금액의 0.1%내외. 기존의 객장수수료 0.5%의 5분의1 수준이다. 사이버수수료를 1월말까지 한시적으로0.03%만 받는 곳(교보증권)도 있고현대증권은 3천만원이상 약정고객에게 0.09%의 사이버수수료를 받는다. E*미래에셋증권은 단순주식중개업무의 경우 수수료를 0%로 하는방안도 검토중이어서 사이버트레이더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E*트레이드는 지난해 3월 다우지수가 1만포인트를 돌파하자 한시적으로 0%의 온라인수수료를 받기도 했다.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온라인거래수수료를 받지 않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대형증권사들이 사이버거래에 앞다퉈 뛰어든 것도 저변을 넓혔다. 미국은 찰스 슈왑이나 E*트레이드 DLJ 다이렉트 같은 온라인거래 전문증권사 중심으로 사이버거래가 활성화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증권사가 사이버거래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사이버트레이더를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도 대단했다. 일정금액이상 약정하는 사이버고객에게 이동중에도 주식투자를할 수 있도록 PDA(개인정보단말기)나 휴대전화를 무료로 지급하는 것은 보통이다. 집에 초고속 통신망혹은 고속 PC설치를 지원해주거나동네 PC방이나 고객의 집을 방문,사이버거래 교육을 해주는 증권사도 있다.이 결과 대형증권사일수록 사이버거래 비중이 높아지는 결과도 빚어졌다. LG증권과 대신증권은 이미사이버거래비중이 60%를 넘어섰다.현대증권 삼성증권도 50%를 웃돈다. 올해 이 비율이 70∼80%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 업체의 전망이다.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거래가 가져다주는 파급효과는 대단히깊고도 넓다.우선 증권시장의 역학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증권감독위원회(SEC)는 지난해말 발표한보고서를 통해 『온라인증권거래는전화기의 발명이후 개인투자자와증권사브로커의 관계에 가장 큰 변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뉴욕주 법무장관인 엘리엇 스피처는 『월스트리트에서 웹스트리트로(From Wall Street To Web Street)』라고 표현한다. 증권거래의 중심이 거래소에서 인터넷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는 계기도 마련했다. 예전에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같은 전문가들만이 접할수 있던 고급스러운 정보를 이제는일반투자자들도 거의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의특성 때문이다. 미국 증권전문가들은 온라인증권거래가 「증권산업을 민주화했다」고까지 표현한다.사이버거래는 또 증권거래 비용을줄임으로써 증권투자의 기반을 넓히는 역할도 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로서는 거래수수료가 줄었고 증권사로서는 영업소설치나 브로커충원 등 고정투자가 불필요해졌다.일단 시스템을 구축해놓으면 그순간부터 추가투자비용이 필요없는제로코스트 사업이다.그렇다고 해서 증권회사의 역할이위축되는 것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금액이 크지 않고 거래를 자주하는 고객들은 사이버시스템의 고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거액의 자산가들은 여전히 일선 영업점에서 뮤추얼펀드나 랩 어카운트 등자산관리에 관해 보다 전문적인 증권사 직원의 조언을 구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증권회사 자체로서도 사이버거래를통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e비즈니스에 발을 들여놓을 절호의 기회가 마련됐다. LG투자증권의 표도순인터넷 영업팀장은 『사이버거래시스템은 증권사 인터넷관련 사업의일부이며 이를 토대로 한 e비즈니스가 전략의 중심에 있다 』고 말할 정도이다.◆ e비즈니스 참여할 절호의 기회그러나 사이버거래가 투자자와 증권업계에 새로운 기회만 주고 있는것은 아니다. 개인투자자는 물론증권사에도 심각한 도전이 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개인투자자로서는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시스템이 다운되는 경우 이로 인해 거래를 못해 손해보는 사례가 많아졌다. 온라인거래의발상지인 미국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투자자들의 고발이 SEC(미증권감독위원회)에 잇따라 접수되고있다. 또 증권거래가 간편해짐에따라 하루에도 몇번씩 주식을 사고파는 데이트레이딩등 초단기매매가늘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위험요소이다.NASAA(북미증권당국자협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온라인거래를 통해데이트레이딩을 하고 대부분은 손해를 보는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투자자들은 사이버거래가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 높아진 손해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사이버거래가 확대됨에 따라 증권사들은 증권사대로 재편의 계기를맞고 있다. 새로 늘어나는 고객의대다수가 사이버거래를 원하고 기존 고객들도 온라인거래로 이동하고 있다. 일대일 대면으로 고객을관리하던 객장영업시절에는 개별영업점의 친절한 영업맨 하나가 고객을 붙잡는 요인이었다. 그러나이제는 중앙에서 관리되는 시스템의 경쟁력이 증권사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국내 증권사의 사이버거래 시스템을 평가하는 웹사이트(www.stockpia.com)를 운영하고 있는 중앙대 장경천교수는 『이제는 고객과의 원활한 Communication & Community가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증권거래뿐 아니라 은행보험상품등원스톱 쇼핑의 금융포털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거래시스템의 안정성과 양질의 정보제공능력은 증권사별로 금방 우열이가려진다. 따라서 앞으로 사이버거래시스템이 빈번히 다운되는 증권사, 개별 고객의 수요에 맞는 고급정보를 온라인으로 신속히 제공해주지 못하는 증권사는 멀지않아 도태될 것으로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