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귀재 웰치·글래스는 ‘화려한 은퇴’, 아이베스터는 ‘쓸쓸히퇴장’

요즘 월가에서는 전격 은퇴를 발표한 세명의 유력 기업 최고 경영자(CEO)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과 코카콜라의 더글러스 아이베스터 회장, 그리고 월마트의데이비드 글래스 사장이 그들이다.이들은 최근 한달여의 시차를 두고잇달아 은퇴를 선언했다. 웰치 회장은 자신의 GE 최고경영자 취임 20주년을 맞는 내년 4월, 아이베스터 회장은 올해 4월에 각각 퇴임키로 했고, 글래스 사장은 지난 14일은퇴 발표와 동시에 퇴진했다.GE와 코카콜라, 월마트는 각각 전자, 음료, 유통 등 해당 분야에서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따라서 총수의 교체에 대해 쏠리는 월가 분석가들의 관심도 그만큼 높다. 월가 사람들이 이들 세사람의 퇴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의 퇴진 배경이각각 소속된 기업의 업종과 성격만큼이나 판이하기 때문이다. 웰치회장과 글래스 사장은 많은 이들의축복과 갈채를 받으며 「화려한 은퇴」를 발표한 반면, 아이베스터회장은 주위의 싸늘한 시선 속에중도하차하게 된 경우다. 무엇이이들 세사람을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로 갈라 놓았을까. 월가에서는그 답을 찾아 이들의 「경영 이력서」를 비교하기에 한창이다.◆ 웰치 회장 ‘성공한 경영인’평가우선 웰치 회장의 스토리는 「성공한 경영인」의 전형을 보여준다는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웰치가 은퇴를 선언했을 당시 <뉴욕타임스 designtimesp=19437>는 그에게 「미국 최고의경영자(the Best Manager in America)」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은퇴발표를 보도했다. 웰치를 설명할때 따라붙는 별명은 이밖에도 많다. 「식스 시그마 운동의 대부」,「경영자의 롤 모델」, 「중성자탄잭」 등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표현이다. 완벽한 품질 관리를 모토로 하는 식스 시그마 운동은 그가 작년 초 GE 신년사에서 회사의캐치 프레이즈로 천명한 이후, 미국내는 물론 한국 등 세계 각국 기업들로 급속히 확산됐다.「경영자의 롤 모델」이란 별명은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크리스토퍼바틀렛 교수가 지었다. 『웰치가무슨 일을 하건 금세 다른 기업 CEO들의 벤치 마킹 대상이 돼버린다』는게 바틀렛 교수의 「작명 이유」다. 「중성자탄 잭」은 1980년대초 취임하기가 무섭게 과감한 인원정리를 통해 회사 내의 「인적 거품」을 일소한데서 유래됐다.중성자탄은 인명만 살상할 뿐 주변건조물 등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것처럼, 그 역시 대대적인 인원 정리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틀은 전혀흐트러뜨리지 않는 「묘기」를 발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경영자로서 그가 보여온 능력은 몇가지 수치로도 잘 설명된다. 지난1981년4월1일 그가 45세의 나이로CEO에 취임했을 당시 1백30억달러였던 GE의 시가총액은 현재 4천2백50억달러 선으로 32배 이상 불어났다. 같은 기간중 연간 외형은 2백50억달러에서 1천억달러대로 4배 이상 증가했다.그러나 경영인으로서 웰치의 탁월함은 현대 경영이론 가운데 상당부분이 그의 주창과 실험을 거쳐정립됐다는데 있다. 그는 「리엔지니어링」이나 「리스트럭처링」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인1980년대 초 『1등을 하지 못하는사업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과감하게 퇴출시켰다. 그 과정에서정리한 인원만도 10만여명에 달한다.그는 또한 시대의 흐름을 앞서 읽으며 경영 패러다임을 시대 환경에맞추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취임초기에 경영 화두로 던진 『기업은제품 생산이 아닌 서비스 판매에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경구는 오늘날 전세계 기업인들에게 경영 모토로 받아들여져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도 웰치다.최근에는 「인터넷」을 새로운 경영 화두로 제시하고는 GE의 전사업부를 e-비즈니스 체제로 개편했다.월가의 기업 분석가들 사이에서 『조만간 GE가 비(非)닷컴업체들 가운데 가장 인터넷 친화적인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보편화돼 있을 정도다.경영인으로서 이처럼 숱한 「치적」을 쌓은 그의 진가는 은퇴를 발표했을 당시 미국 언론들의 반응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뉴욕 타임스 designtimesp=19450>는 웰치가 은퇴한 이후 그를 대신해 「미국 대표 경영인」의 자리를 물려받을 후보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과 루이스 거스너 IBM 회장, 존 체임버스 시스코시스템즈 회장, 자크 낫세르 포드자동차 회장 등을 거명하면서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웰치만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고 촌평하기도 했다.웰치는 이런 온갖 찬사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65세가 되는 해에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공언해 왔다. 그 시기를 자신의 CEO 취임 20주년이 되는 「2001년 4월에 열릴 이사회 직후」로 밝힘으로써 끝까지 주도면밀한 경영자의면모를 보여 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후계자로 누구를 정할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중반께 「회사내의 인재들 중에서」 지명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누가 그의 뒤를 잇건, 「세계 최고의 우량 기업」을 물려받는 행운을누리는 셈이라고 월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월마트의 글래스 사장도 유통업계에서 「전설적인 경영 귀재」로 칭송을 받는 가운데 일선에서 퇴장하는 멋을 보여 주었다. 지난 1988년「미스터 월마트」로 불렸던 샘 월튼의 후계자로 CEO에 등극한 그는취임 이후 회사의 연간 매출을 10배나 늘려놓는 수완을 발휘했다.이달말로 끝나는 1999회계연도중월마트의 매출액은 1천6백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글래스 역시 웰치 못지 않게 절묘하게 타이밍을 짚어가며 공격적인 경영을 한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동네 잡화점 수준에 불과했던 점포들을 식품에서부터 의약품과 가전제품 등에 이르기까지 백화점형 진용을 갖춘 전국적 체인으로 면모를일신시킨 것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치적으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중국 등 해외로까지 점포망을 넓히는 등 유통업계에 글로벌경영을 정착시킨 장본인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웰치 회장과 마찬가지로 e-비즈니스 분야에 주목해 퇴임 직전 아마존 닷 컴과의 인터넷 판매 분야 제휴에 합의하는성과를 일궈냈다. 64세인 그가 전격 은퇴한 이유 역시 「회사가 순탄할 때 후배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아이베스터 ‘스트라이크 하나못던져’ 혹평코카콜라의 아이베스터 회장은 웰치나 글래스와는 정반대되는 사연속에서 쓸쓸히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아이베스터가 올 4월 은퇴한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해 12월6일. 1997년10월 전임자이자 그의 「경영대부」였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전회장의 사망으로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퇴임 이유로 『회사는 보다 신선한 지도력을 필요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고작 52세에 불과하다.아이베스터의 퇴진 배경에 복잡한사연이 얽혀 있음을 짐작케 하는대목이다.월가 분석가들이 말하는 아이베스터의 「진짜」 퇴진 이유는 한마디로 「최고 경영자로서의 함량 미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이주에타 전회장이 애지중지하는 후계자로 철저한 경영 수업을 받았고, 재무관리 분야의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으로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코카콜라의 경영 대권을 승계했었다.그러나 최근 유럽에서의 코카콜라오염 파문 등에 적절한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경솔한 문책 인사로 내부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 일련의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줄줄이「낙제점」만을 받았다는 지적이다.그는 또 회사 조직이 방대함에도자신을 대리해 실무를 조정할 2인자를 임명하지 않고, 모든 업무를일일이 챙기는 무모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임원들로부터 『회장은잡무에서 벗어나 큰 경영 사안을챙겨야 한다』는 건의를 받았지만귀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회사조직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국내외에서 빈발한 경영 사고에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미봉으로만 일관하게 됐다. 코카콜라의 경영 실적과 주가는 그의 취임 이후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이사회 멤버들은 『용도가 다른 사람을 잘못봤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게 조기 퇴진을 요구했다는 전언이다.37세의 나이에 코카콜라의 2인자자리인 최고 재무책임자(CFO)로 발탁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그였지만, 거대 조직을 통솔할만한지도력과 안목은 결여한 것으로 판명난 셈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 designtimesp=19469>은 그의 퇴진 발표를 보도하면서『구원 투수로 등장해 아웃 카운트를 잡기는커녕 스트라이크 하나도못 던지고 퇴장당한 꼴』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최고 경영자의길」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아이베스터의 퇴장 스토리는 웅변으로설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