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만5천여 고객에 경비서비스 …고정관념 파괴 경영으로 35년 연속매출증대

지난해 9월16일. 도쿄시내 다카나와프린스호텔에서 세콤과 캐나다의엔트러스트테크놀러지사가 전자서명으로 제휴계약을 맺었다. 세계최초의 전자서명이었다. 캐나다의크레티엔총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콤의 다오 정보사업총괄 임원과 엔트러스트의 오히긴즈 기술담당 부사장이 액정화면에 서명했다.이어 입회인으로 참석한 정부대표두사람도 서명했다. 이로써 세콤은「웹패스포트서비스」라는 웹사이트의 증명서 발급업무에 뛰어들었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미래형 계약조인식은 여러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앞으로 본격화될 사이버(가상)사회에서도 안전경비 분야의 「넘버 원」 기업이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세콤이 사이버 안전경비사업부를발족시킨 것은 지난해 5월. 이미그 2년전부터 엔트러스트를 포함해 트렌드마이크로 시스코 등과 제휴, 사이버 안전경비 기업화를 준비해왔다. 또한 안전경비진단서비스, 바이러스감시서비스, 부정침입감지서비스, 인증서비스 등 4가지부문을 설립, 지원해왔다.세콤은 「사이버사회에서도 세콤의안전경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단순히 기기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아니다. 계약자에게 3백65일, 24시간을 서비스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부터 서비스에 나선 바이러스감시서비스의 경우 계약자의 PC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감염된 순간 도쿄미타카에 있는 세콤SC센터에 통보된다. 필요한 경우 사람이 직접달려간다. 『1천대의 PC를 갖고 있는 기업에서도 월 20만엔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자체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5천대의 PC와워크스테이션에 대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바이러스 부정침입 유사홈페이지 등의 문제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이용 전자서명 제휴계약 ‘주목’세콤이 상정하고 있는 가정경비는어떤 것일까. 「세콤 홈안전플러스」가 설치돼 있다. 이 센서가 도둑화재 가스누출 등을 24시간, 3백65일 감시해준다. 만일의 사태에는세콤사원이 달려간다. 급한 환자발생시 「마이닥터」 버튼을 누르면 구급신호가 송신된다. 이 단말기는 인터넷 홈뱅킹 홈쇼핑에도 사용될 수 있다. 온라인재택의료시스템 「메디데이터」를 사용하면 혈압 등을 검사, 통신회선을 통해 주치의의 처방을 받는다. 방문간호와온라인재택학습서비스도 받는다.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세콤동양손해보험을 통해 혜택을 받을 수도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유익한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게 최종목표다.이러한 사회시스템산업화를 통해세콤그룹은 2000년3월 결산기에 4천3백20억엔의 매출(연결기준)에6백50억엔의 경상이익을 낼 전망이다. 35년 연속 매출 이익증대를 실현할게 확실하다.세콤은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사업을, 그것도 다른 회사가 하지않는 사업을 공격적으로 전개, 성공한 이상적인 벤처기업으로 꼽을 수있다. 그러나 성장과정이 순탄했던것만은 아니다. 세콤은 1962년 설립됐다. 창업주 이다 마코토 최고고문이 29세였을 때다. 그는 그전까지 가업인 술도가에서 일했다. 5형제 중 막내였던 이다고문은 형들에게 시달리는게 싫어 독립을 결심했다. 바로 그때 친구로부터 『유럽에는 경비회사라는게 있다』는얘기를 들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판단, 사업화를 결심했다.이다 마코토고문은 유럽회사를 시찰하지 않았다. 시찰을 하면 그쪽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판단했다.그후에도 자신이 철저하게 비즈니스 디자인을 해왔다. 디자인이 될때까지는 상담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미지가 깨질 것을 우려했기때문이다.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많은 화제를몰고 왔다. 창업 때부터 당시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비즈니스조건을 붙였다. 그것은 바로 요금을 3개월 전에 미리 내도록 하는것이었다. 이러한 파격은 『유익한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왜 후불로 받아야 하는가』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고객에게 아첨하는것은 자사의 상품과 서비스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창업 4년후인 1966년에 이다고문은35년 연속으로 매출이익 증대를실현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를만들었다. 그해 기계경비시스템을도입한 것.당시 그는 기기를 수요자에게 팔지아니면 렌털로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자금조달을 생각하면 파는 쪽이 유리했다. 그러나 기계는 고객의 물건이 돼버리기 때문에 관련경비서비스를 하거나 업그레이드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렌털방식은 성립할 수 없다』는 미국유럽경비회사의 조언을 무시하고전례가 없는 렌털방식을 채택했다.필요경비 경상이익 등의 수치를 면밀히 계산, 36개월만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렌털가격체계를 만들어냈다. 결국 3년후에 계산대로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렌털방식으로고객과의 연계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었다. 또한 계속적으로 들어오는 렌털료 수입으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히대체1971년에 이다고문은 창조적 파괴를 실행했다. 『지금부터 순회경비를 없애고 기계경비로 대체한다』고 선언했다. 기계경비 고객이 1천건, 사람에 의한 순회경비가 4천건이었을 때였다. 주력부문 폐지에모두가 반대했다. 그러나 이다고문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일을 하면 회사는 성장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현장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기계로할 수 있는 일을 사람에게 시킬 수는 없다』고 고집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계약건수가 늘어나면늘어날수록 경비회사의 메리트가크게 나왔다. 세콤이 종합경비보장등 경쟁업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이익을 내고 있는 것도 기계경비를 주력으로 했기 때문이다.이다고문은 1983년12월 회사이름을일본경비보장에서 세콤으로 바꿨다. 그때부터 가정대상 홈안전경비쪽으로 서비스를 확대해나갔다. 고령자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구급통보시스템도 개시했다. 이것이 정보통신사업과 미디어사업의 기초가됐다.세콤은 현재 58만5천건의 고객에안전경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현재는 일반회선도 사용하고 있다.그러나 당초에는 모든 것을 전용회선으로 연결시켰다. 전용선은 유사시 이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루 23시간59분59초동안 잠을 자고 있는 이 회선을 유효하게 활용하는게 최대의 과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네트워크를 사용한 의료 교육 통신판매분야로의 진출이었다.세콤이 추구하는 사회시스템산업의신경조직은 통신회선네트워크이다.전국 9백개소의 긴급발진기지가 기반이다. 이 기지에는 경비원을 비롯해 재택진단을 하는 의사, 방문간호서비스를 하는 간호사, 재택개호서비스를 하는 홈헬퍼, 재택학습서비스강사 등이 있다. 네트워크시스템은 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수단이다. 세콤의 경쟁력은 바로이같은 조직에서 나온다.1992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이다고문은 「세콤의 사업과 운영의 헌법」을 스스로 집필, 사원들에게제시했다. 1995년에는 제2의 창업을 기치로 내걸고 케이블TV회사,보험회사, 지리측량회사, 병원 등을 사들였다. 그는 1997년 회장직을 내놓고 최고고문으로 물러났다.그러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로 아직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사회시스템기업」이라는이다 마코토 창업주의 꿈이 실현될수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