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 흡입 청소기·독신 생활자용 가전 인기 … 기업 이미지 상승 효과

홋카이도의 삿포로하면 언뜻 떠오르는게 있다. 바로 눈축제(雪祭, 유키마쓰리)다. 2월 초에 1주일 동안 열리는 눈축제에는 일본 국내외로부터 2백만명 이상이 몰린다. 대형 눈 조각과 얼음 조각들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51번째를 맞은 올 축제도 마찬가지다. 눈축제가 열린 삿포로시 오도리 공원은 개막일인 2월7일부터 인파로 가득 찼다. 그 가운데서도 인파가 특히 붐비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의 LG전자재팬 행사장이 있는 오도리공원내 스포츠광장 2000이다. 축구경기를 위해 마련된 눈구장을 중심으로 라이브쇼 무대 2층짜리 가건물 주변에는 LG로고가 선명하게 나붙은 광고선전탑 등이 곳곳에 서 있다. 마치 한국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12일 밤 공원을 찾았던 수많은 관람객들이 우르르 스포츠광장 2000으로 몰려들었다. LG전자재팬의 후원으로 열리는 남성3인조 ‘스쿠프’그룹의 라이브쇼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하늘에는 때맞춰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스쿠프가 열창한 6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한 시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만들어진 공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폐막날인 13일 오전 11시께 눈이 내리는 가운데 LG는 선전용 대형 비행선을 행사장 위에 띄웠다. 회사 로고와 함께 ‘디지털리 유어즈(Digitally Yours)’ ‘플랫트론(평면TV)’이 선명하게 새겨진 비행선이 접근할 때마다 관객들이 박수를 쳐댔다.LG는 라이브쇼 행사장 바로 옆에 신제품 전시 부스도 마련했다. 홋카이도 지역에 많은 독신 생활자를 위해 개발한 전자레인지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TV 비디오 등 세트상품을 전시했다. 독신 생활자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을 감안, 고양이 소리를 연상하는 ‘냐고스’라는 상표를 고양이 그림과 함께 부스에 내걸었다. 눈구장에서는 LG후원으로 한·일초등학교 눈구장 축구대회가 열렸다. 홋카이도축구협회 부회장은 개회식 축사를 한글인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마무리지었다.초등학교 6학년 이하의 토너먼트우승팀과 삿포로 선발 한국A, B팀 등 4개팀이 리그전으로 승부를 가렸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1년에 다섯달 정도를 눈속에서 지내는 삿포로선발이 우승했다.LG전자재팬이 삿포로 눈축제에 이처럼 관심을 쏟고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 홍보를 통해 지역밀착형 시장전략을 펼치기 위한 것이었다.◆ 호마크와 손잡고 판매전 펼쳐LG는 지난해 가을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의 최대 홈센터인 호마크와 손잡고 현지밀착형 청소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다다미에서 기생하는 다니(진드기)를 빨아들이고 이불의 먼지도 털어내는 ‘클리마루(상품명)’는 대히트를 쳤다. 아사히TV로부터 99년도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대당 1만2천8백엔으로 일본의 경쟁제품에 비해 오히려 비싸게 팔았음에도 지난해 11월 현지발표회를 한지 3개월 만에 5만대나 팔렸다. “클리마루의 사례를 일본의 대형 전기메이커인 도시바가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는게 LG측의 설명이다.청소기의 대히트를 통해 LG는 일본시장공략의 키포인트를 찾아냈다. 현지특성에 맞는 상품으로 특정지역을 집중공략하는 고객밀착형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가전시장은 포화상태다. 일본은 기술도 뛰어나다. 유통 또한 막강하다. 그러나 빈 공간은 있다. 바로 그 틈새를 파고 들어야 한다”는게 김달웅 LG전자재팬 사장의 설명이다.이러한 고객밀착형 전략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놓은 제2탄이 독신 생활자용 세트 상품. 일본에는 현재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이 1천만 세대에 이른다. 홋카이도에는 특히 단신 부임자가 많다. LG는 청소기 판매를 위해 전략적으로 제휴한 호마크와 공동으로 독신 생활자용 가전제품 시리즈를 선보였다.‘싱글라이프 가전 냐고스’라는 상표의 이 상품은 냉장고 전자레인지 청소기 세탁기 비디오데크 TV 등 6가지의 세트로 돼 있다. 가격은 21인치 TV가 포함될 경우 11만4천8백엔. 14인치 TV가 포함될 때는 9만9천8백엔. 일본의 경쟁제품에 비해 20% 정도 값이 싸다. 이 세트상품은 은색 또는 회색에 컴팩트한 디자인이 특징. 고객이 원할 경우 단품으로도 판매된다. 이들 LG상품은 호마크 계열 1백22개 모든 점포를 통해 판매된다. 홈센터가 세트상품을 판매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LG전자는 이번 눈축제를 지역밀착형 제품인 냐고스에 대한 현지홍보를 위한 절호의 찬스로 활용한 것이다.삿포로지역에서의 기업 이미지 제고도 눈축제를 후원하게 된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홋카이도 고객들과 함께 하는 LG’라는 이미지를 심겠다는 전략은 주효했다. 니혼TV 계열의 현지 방송사인 STV는 LG의 행사를 중심으로 한 눈축제뉴스를 보도하기도 했다. 눈 속에서 라이브쇼를 즐긴 관람객들은 “LG가 한국기업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행사장에 마련된 2층짜리 가건물은 상담창구 역할도 했다. 12일 저녁에는 판매 제휴선인 호마크의 이시구로 야스노리 홋카이도 상품총괄부장이 눈을 흠뻑 맞은 채로 들렀다. 이시구로부장은 오너인 회장의 아들로 차기 사장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 그는 “덩치가 크면서도 유연성(플렉시빌리티)이 뛰어난게 LG의 최대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메이커들은 유통쪽에서 무언가를 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LG는 공동으로 무엇을 하고자 한다. 함께 일하기가 편하다”고 설명했다.그는 “LG에 대한 홋카이도 소비자들의 평판이 좋다”며 가전제품 분야의 협력관계를 확대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홋카이도 바람 일본 전역 확산 추진LG는 호마크와의 유대관계를 다지고 있다. 15일부터 18일까지 호마크 계열 판매점의 점장 10여명을 초청, 창원공장 등을 견학시켰다. 애프터서비스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LG는 냐고스상품 발표 때 ‘3년간 무상보증’을 내걸었다. 고장이 나면 상품을 아예 새 것으로 교체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유명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프터서비스가 관건”이라는게 김대표의 설명이다. 지난 한해 동안 10개를 추가로 개설, 애프터서비스센터를 모두 59개로 늘렸다.LG는 홋카이도에서 일고 있는 바람을 일본 전역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그 첫 공략 대상이 바로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 현지 대형 종합슈퍼인 가네히데와 3월에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 호마크에 이어 두번째 파트너를 확보하게 된다. 현재 판매중인 청소기 평면TV 냐고스 등을 오키나와에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대형 냉장고 ‘디오스(한국상표)’를 현지 사정에 맞춰 개량한 지역밀착형 제품도 개발, 판매할 예정이다.가네히데와의 제휴는 LG의 위상을 확인케 해준 사례. 클리마루가 화제를 몰고 오자 가네히데쪽에서 먼저 LG측에 제휴를 요청해 왔던 것이다.LG전자재팬은 올해 자체 브랜드만으로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1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전략이다. LG의 현지밀착형 전략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져온 일본시장의 벽을 뚫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