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격차 확대, 가계·기업 부채 증가 등 부작용 만만찮아

미국 경제가 2월1일로 전인미답의 「최장기 경기 호황」 신천지를 밟았다. 1991년4월부터 시작된 현재의 경기 확장 국면이 1백7개월째에 접어든 것이다. 연속 호황 기간이 1백개월을 넘겼으면 한번쯤은 피로 증상을 보일 법도 한데 그런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 과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4/4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치(5.2%선)를 크게 웃돈 5.8%를 기록했다. 지난 주말까지 4/4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한 S&P 500 소속 2백95개 기업들의 분기 순익도 전문가들의 허를 찔렀다. 전년동기보다 21%나 높은 수준이었다. 개별 기업들 또한 탄탄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는 얘기다.일부 미국 언론은 이런 초장기 호황 레이스를 전설적 야구 스타인 고(故) 조 디마지오의 기록에 견주기도 한다.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던 디마지오가 지난 1941년 시즌에 세운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철옹성으로 남아 있다.하지만 한꺼풀을 벗겨보면 미국 경제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들이 만만치 않게 드러난다. 경기 활황과 비례해 늘어만 가고 있는 무역적자가 그렇고,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미국의 두통거리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와 예산 정책우선순위센터(CBPP)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1990년 이후 미국의 부유층 및 빈곤층간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추세에 대한 주별 분석(A State-by-State Analysis of Income Trends)」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90년대 후반 소득순위 상위 20% 가계의 평균 소득이 13만7천5백달러로, 하위 20% 가계 평균소득(1만3천달러)의 10배에 달했다.◆ 주(州)별 빈부 격차도 더욱 확대더욱 주목되는 것은 「인플레없는 장기 호황」이라는 이른바 「신경제 기적」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하이테크 주(州)」들에서 빈부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 의하면 뉴욕과 캘리포니아 외에 로드 아일랜드, 텍사스, 오리건, 켄터키 등 9개 주의 경우 소득 상위 20%의 평균소득이 하위 20%의 11배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주별로 빈부간 소득격차가 차이나는 이유에 대해 제조업 고용 감소, 이민 증가, 노조활동 위축 등으로 인해 저소득 노동계층의 입지가 불안해진 반면에 부유층들은 주식시장 호황으로 인해 부를 더욱 축적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 근로계층과 비숙련 노동계층간의 임금 격차도 주별 소득 불균형의 근본 이유로 지적하고 있다.보고서는 1996∼98년 동안 저소득 노동계층의 평균 임금도 노동시장 경색 및 경기 호황에 편승해 다소 증가했으나 금융 서비스, 하이테크, 엔터테인먼트 등 기타 전문가 계층의 임금 상승률에 비해서는 상승폭이 매우 미미하다고 밝혔다. 일례로 미국내에서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중 하나인 뉴욕주의 경우 시간당 최저 임금은 전국 평균인 5.15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이 지역 소득 수준 하위 20%의 평균 소득은 1980년대 후반 1만2천7백40달러에서 1990년대 후반에는 1만7백69달러로 오히려 크게 감소했다.미국의 「신경제 향연(饗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소득 격차 문제 뿐만이 아니다. 속속 불어나고 있는 기업과 가계의 금융 차입은 미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보다 큰 위험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상당수 차입 자금이 주식 투자와 같은 리스크 높은 부문으로 흘러드는 등 잠재적인 불안 요인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미국내 비금융 기업들은 작년 3/4분기 동안에만 4조2천억달러 빚을 끌어다 썼다. 전년 동기에 비해 12%나 늘어난 규모다. 지난 5년간 기업들의 차입금은 60%나 늘어났다. 미국 기업들의 빚을 모두 합치면 GDP(국내총생산)의 46%에 이른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가계의 빚 끌어쓰기도 이에 못지 않다. 작년 3/4분기 동안 가계의 평균 차입금이 연율로 9% 늘어났다. 9월말 현재 가계의 총 차입금은 6조3천억달러에 달한다. 최근 5년간 50% 증가했다.기업과 가계의 이런 차입 증가 추세는 소득 증가분을 훨씬 웃돌고 있다. 일례로 작년 3/4분기 중 기업들의 평균 이익은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임금 소득자들의 평균 수입 증가율도 6.7%로 차입금 증가분에 못미쳤다.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주식을 발행하기 보다는 사들이는 쪽에 더 혈안이 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 미국 GDP의 3.6%가 주식 매입에 투입됐을 정도이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빚을 내어서까지 자사주 등의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예컨대 EDS사는 자사의 주식 환매(buyback) 프로그램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15억달러를 채권시장에서 대출받았다. 공격적인 환매 프로그램은 시장 전반을 통해 유효성을 발휘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같은 환매가 둔화되거나 중단될 경우, 주가가 큰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미국 기업들은 또 인수 합병(M&A) 및 사업 확대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채권 발행도 늘려나가고 있다. 예컨대 뒤퐁사는 최근 파이오니아 하이 브레드 인터내셔널을 매입하기 위해 77억달러를 사용한 후 자금을 다시 비축하기 위해 20억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하이테크 기업들은 「과다 차입」을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 의욕적인 성장 전망을 내놓으면서 대출증가의 문제를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들의 차입 규모는 이미 「적정선」을 한참 넘어선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프트웨어업체인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인터내셔널사의 경우 1995년 5천만달러에 불과했던 장기 부채가 최근 약 50억달러로 불어났다. 그러나 매출은 같은 기간동안 26억달러에서 56억달러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신기록 행진, 부작용 치유 여부에 달려 있어미국 기업들의 이같은 과다 차입 현상은 기업 부도 다발(多發)을 야기하고 있다. S&P사에 따르면 1999년 상반기에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2백억달러 규모의 기업 부도 가운데 85%가 미국에서 일어났다. 소비자들의 경우도 씀씀이 수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만큼 부도 리스크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대출하는 신용거래가 급증하는 등 장기 호황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외채 문제도 미국 경제의 고질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다.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사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세계 순저축의 72%를 사용하고 있다.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증시를 비롯한 실물 분야 곳곳으로 세계 각지의 자금이 몰려들고 있는데 따른 결과다. 그러나 이는 미국 경제로 하여금 해외 자금에 대한 의존 체질을 만성화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장기 호황에 이끌려 미국행 러시를 이루고 있는 해외 자금이 주가 하락 또는 경기 둔화 등 부정적인 충격에 의해 다른 곳으로 물꼬를 바꿀 경우 미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미국의 가계와 기업들이 빚을 마구 끌어 쓰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와 증시 및 부동산 활황 등에 따른 「채무 불감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기업들이 차입한 자금으로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고, 개인들 역시 은행 빚을 얻어 집을 장만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게 유행이다.문제는 이런 「빚더미 살림」이 언제까지 유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에게 「부(富)의 효과」를 안겨줘 채무를 두려워하지않게 만든 증시 붐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게다가 경기가 삐끗해져서 기업과 가계의 벌이가 예전같지 못하게 될 경우 미국인들이 쌓아올린 채무는 경제 전반에 큰 짐으로 전락할게 뻔하다.이런 점에서 미 통화당국이 지난 2일 기준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한 것은 경기 과열을 사전에 예방해 보려는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장기 호황의 이면(裏面)에서 미국 경제에 부수되고 있는 부작용을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신기록 행진의 지속 여부가 달려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