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98 한국판 공급권 따내면서 두각 … 2백억 투자 DVD·DSR 생산체제 갖추고 수출 추진

봄바람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던 93년 3월 초. 김포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던 정광훈 정문정보 사장은 아찔한 상황에 직면했다. 영어에 능통하고 유능한 동료 S박사의 출국이 금지된 것. 일생일대의 중요한 프로젝트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운영체계의 한국내 제작 계약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MS의 실무책임자와 만나 최종 협상을 벌이기로 하고 수속을 밟던 참이었다.S박사의 출국금지는 유학비자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사장은 영어를 잘 못했다. 계약에 관한 실무작업을 S박사에게 위임한 상태여서 내용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MS와 계약을 추진하던 국내 업체는 8개사나 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약속했는데 만남이 무산되면 이는 곧 다른 업체로 넘어가는 것을 뜻했다. 식은땀이 흘렀다.정사장은 일단 비행기를 탔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자 택시를 타고 달려간 곳은 코리아타운. 음식점에서 영어통역을 소개받고 본사에 연락해 자세한 내용을 다시 파악했다. 통역을 맡은 사람은 영어는 잘했지만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비즈니스에 관한 내용은 전혀 몰랐다. 통역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이튿날 디즈니랜드 부근의 매리엇호텔. 당초 2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협상이 8시간이 걸려서야 끝났다. 해질 무렵이 돼서야 겨우 사인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MS사와 계약 성사경부고속도로 기흥인터체인지 바로 옆에 있는 정문정보. 윈도98과 같은 MS의 소프트웨어를 한글판으로 만들어 컴퓨터 업체에 공급하는 업체다. 국내 소비분의 절대량을 공급하고 있다.정문정보의 사업은 크게 두가지. MS 비즈니스와 디지털 비즈니스다.MS 비즈니스는 AR(Authorized Replicator)와 MOC(Microsoft Official Curriculum) 비즈니스로 나뉜다. AR 비즈니스는 MS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미디어화해 생산하는 것. 윈도시리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CD롬에 담아 판다.MOC 비즈니스는 MS가 만든 전산교재 사업이다. 교재를 제작해 전산 교육기관과 학교에 공급한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10개국에 독점 판매한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싱가포르에 현지법인도 설립했다.정문정보는 MS 비즈니스로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사업의 대대적인 육성이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인재를 모으고 있다. 디지털 사업중 대표적인 것은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와 디지털위성방송수신기(DSR). 최근 화성공장에 2백억원을 투자해 DVD와 DSR를 대량 생산하는 시설을 갖췄다.DVD는 컴팩트디스크에 비해 저장용량이 3∼5배에 이르고 화질과 음향이 뛰어난 제품. 연간 6백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으며 원판상태로 팔거나 영화 등의 내용을 담아 판매한다. 주로 해외수출을 겨냥하고 있다. 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DSR는 1대로 여러 방송국의 위성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공통접속방식의 제품. 방송수신카드를 동시에 2개 꽂을 수 있으며 카드를 교환하면 더욱 다양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일본의 기술개발 전문업체인 시스텍과 기술제휴로 지난 1월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시스텍을 통해 3백만달러 어치를 수출키로 계약도 맺었다. 올해 유럽 미주 중동 지역으로 1천만달러 어치를 수출할 계획이다. 연 10만대의 DSR생산능력을 갖고 있는데 올해 생산목표는 5만대로 잡고 있다. 기술제휴선인 시스텍은 일본의 NEC 소니 마쓰시타 등의 기술을 개발해주는 업체로 일본내 3대 연구개발 전문업체로 꼽힌다고 정문정보측은 밝히고 있다. 이밖에 PBA-SMT 사업도 하고 있다. 일반 PC와 노트북에 들어가는 핵심보드 제작을 비롯해 휴대폰용 배터리팩 등을 생산하는 것. 이 사업은 PC 및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 및 팽창으로 고속성장이 이뤄지고 있다.정문정보는 신제품 출시로 올 매출을 작년보다 61. 3% 늘어난 1천억원으로 책정해 놓고 있다. 2년뒤엔 1천6백억원으로 잡는 등 급신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나주 출신의 정광훈(52)사장은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의 행정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식관련 일을 보다가 출판인쇄 분야에 눈을 떠 독립한게 76년. 서울 을지로 2가 인쇄골목에 여직원 1명을 데리고 정문사를 만들었다. 남의 사무실 한켠에 마련한 책상 한개와 전화 한대가 전재산이었다. 기업체의 교재를 수주해 인쇄,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하이테크 사업 확대 주력현대건설의 교재를 주로 취급했다. 해외사업관련 인쇄물도 제작, 사우디아라비아 응찰서류 및 도면작업도 했다. 현대전자가 설립되면서 이 회사 일도 다뤘고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산업의 변화를 파악하게 됐다. MS와 손을 잡기로 하고 사전에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정문사를 정문출판으로 바꾸고 정문정보를 설립한 것은 MS와 계약을 마친 뒤인 93년 3월 중순.정사장은 “올해까지는 MS 관련 매출이 많지만 내년부터는 균형을 이루고 2002년부터는 디지털관련 사업비중이 훨씬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명실상부한 디지털 업체로 재도약하는 것이다.그는 경상이익률 10% 달성, 부채율 50% 이하를 유지하는 하이테크 사업 확대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이미 수입이자가 지출이자를 웃돌 정도로 재무구조도 건실하다. 사장실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난한 자를 위해 베푸는 삶을 실천하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0339)376-9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