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이 딸을 둘 가진 사람은 심심찮게 애정이 듬뿍실린 진심어린 충고를 받는다. “하나 더 낳으셔야 겠네요, 아들 낳는 요령을 알려 드릴까요,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옆에서 괜찮냐고 확인을 한다.괜찮다고 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 얘기를 하며 정말 동요하는 기미가 안 보이면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들면 아들이 그리운 법”이라며 은근히 공갈 협박까지 한다. 원래 딸을 좋아해서 딸을 낳고 무지 좋아했던 나다. 본인은 딸이 훨씬 좋다는데 왜 주위에서 그렇게 걱정을 해주는지.내가 자가용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얘기를 하면 여러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소요된 돈만큼 가치가 없다는 것과 길눈이 어두워 차가 있어봤자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으로 안 사는 것인데 하나같이 그런 얘기를 한다.“그 먼 곳까지 어떻게 다니십니까,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하나 장만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이는 “그 나이 되도록 어떻게 차 하나 장만을 못했냐”며 안됐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왜 주위에서 더 걱정을 많이 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살면서 남의 눈치를 안 본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때때로 누굴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다. 또 남이 내게 기대하는 일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막상 나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하지만 남의 기대는 남의 기대일 뿐이다. 그리고 남이란 존재는 대체로 무책임하다. 사사건건 참견은 하지만 잘못됐을 때는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주지는 않는다. 차를 사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돈을 지불하진 않을 것이고 아들을 하나 더 낳으라고 또 그러면 좋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들이 양육비를 책임지진 않는다.결국 우리 인생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잊고 산다. 평생을 지지고 볶고 미워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많은 부부를 알고 있다. 겉으로는 자식 때문에, 사회통념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헤어지는 것을 결정하는 대신 불평하면서 지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이 회사라면 신물이 나고 지긋지긋하다고 입만 열면 얘기하지만 그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싫어하면서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버티어 왔을까. 신기하기까지 하지만 그들은 회사를 떠나는 대신 남아 불평하기를 택했다. 아니, 아직 떠나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부모에 대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가족에 대해 불평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행복을 남의 손에 위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자신은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모두 그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다. 언제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바꾸는데 드는 비용이 두려워 현상유지를 하면서 불평하며 살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것인지, 타인을 의식해 그의 관점에서 결정할 것인지가 지금 우리들이 선택해야 하는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