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업체 제휴·품질 고급화로 세계시장 석권 야심 … 올 수출 1천만달러 목표

지난 2월23일 도쿄시내 미야코호텔에서 한국의 중소벤처기업인 고리가라오케텍과 일본의 이치이(一井)공업간 업무제휴 조인식이 열렸다. 고리가라오케텍은 이치이측과 차세대 가라오케 ‘파소가라’의 수출총판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고리가라오케텍은 앞으로 3년 동안 2천4백만달러어치를 수출키로 계약을 맺었다. 독점판매 대리점 계약의 대가로 1억엔의 권리금도 받았다.이날 행사장은 축제분위기였다. 국내외 언론을 비롯, 관계자 1백여명이 몰려들었다. 공동대표인 최길호 사장은 이날 조인식에서 “이 자리는 성공의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성공이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열사장도 “휴대용 가라오케를 우리보다도 일본에서 더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며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제휴기업인 이치이(一井)공업의 이가와 도시오 사장은 “휴대전화가 통신혁명을 이룩한 것처럼 휴대용 가라오케가 가라오케문화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일 두 나라의 벤처기업간 제휴라는데 큰 의미를 갖고 있다”며 “힘을 합쳐 시장개척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리점 계약권 따기 위해 일 업체간 경쟁판매점쪽의 열기도 뜨겁다. “일본인들의 상식을 깨트렸다. 대당 가격이 5만5천엔으로 싸지 않다. 그러나 성능과 품질에 비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 “활짝 핀 사쿠라 모양으로 판매망을 확대해 나가겠다”는게 판매점측의 설명이다. 일본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휴대용 가라오케가 가라오케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겠다는 것이다.주일 한국대사관의 이현재 상무관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제휴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한일간 협력의 모델케이스”라며 “제2, 제3의 성공사례가 잇따라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고리가라오케텍은 지난 8년 동안 수차례에 걸친 부도위기를 극복하고 일본시장 공략에 성공한 대표적인 벤처비즈니스로 꼽힌다. 더욱이 본고장인 일본으로 가라오케를 역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최사장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휴대용 가라오케의 사업화를 위해 90년대 초 미국에서 돌아왔다. 음악이 너무 좋아 영주권을 갖고 있던 미국에서 탈출했다. “노래문화가 존재하는한 가라오케는 존속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미래학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다만 가라오케의 형태는 달라질 것으로 판단했다.” 최사장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가라오케문화를 창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착안해낸게 바로 휴대용가라오케였다.그러나 사업화가 만만치 않았다. 벤처캐피털 등 국내 업체들이 “가라오케는 사양산업”이라며 외면을 했다. 자금조달과 판로개척을 위해 94년에 김광열 사장을 공동대표로 영입했다. 김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가라오케의 본고장인 일본 공략에 나섰다. 전자기기와 가라오케메이커 등 40여곳을 돌아다녔다. FM에 연결, 간단히 가라오케를 부를 수 있는 휴대용 제품에 일본 업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3천만엔과 5천만엔짜리 등 일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회사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리자 김사장은 전재산을 처분했다. 부인이 경영하던 가게까지도 정리했다. 95년4월에는 5백만엔이 없어 부도위기에 빠지자 주일 한국대사관에 긴급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일본자본의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지금까지 6명의 일본인들로부터 무이자로 무려 8억엔을 빌렸다. 김사장은 업무제휴 조인식장에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아다치 고지씨를 소개했다. 아다치씨는 1억2천만엔을 고리가라오케텍에 빌려주고 있다. 그는 김사장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이같은 노력으로 김사장은 회사를 부도위기에서 구해냈다. 종업원 44명(여사원 제외)에게 최소급여인 월 1백30만원 이상을 지급해오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지금도 17평짜리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온몸으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경영자”라는게 사원들의 평가다.고리가라오케텍은 품질고급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특정용도 고집적회로인 ASIC를 개발, 화면이 깨지지 않으면서도 내용이 풍부한 고품질의 영상을 선보였다. 음질도 개선했다.지난해 8월 마침내 마이크형 휴대용 가라오케 ‘파소 가라오케(PASO-KARA)’를 선보였다. 마이크안에는 영상과 음성이 압축내장된 반도체칩이 들어 있다. 마이크선을 TV FM라디오전축 자동차항법장치등에 간단히 연결, 사용할 수 있다. 기본으로 4백곡이 들어 있다. 신곡을 추가시킬수 있는 카트리지도 부착돼 있다. 대리점에서 PC에 저장된 노래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신곡을 다운로드받도록 할 예정이다.휴대용 가라오케는 지난해 8월에 6백대가 일본에 수출됐다. 1월말까지 2만대가 팔렸다. 지난해 실적은 1백20만달러. 일본의 민방인 TV도쿄에서 신상품으로 3분 동안 소개되기도 했다. 이미 시장에서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총판대리점 계약권을 따내기 위해 10개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도 바로 그 시장성 때문이었다. 대리점 계약을 맺은 이치이공업은 미쓰비시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중소기업. 연간 매출이 20억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휴대용 가라오케사업을 위해 선뜻 1억엔의 권리금을 지불했다. 상품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다. “전국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장을 차지해 나가겠다”는게 이가와사장의 설명이다.휴대용 가라오케의 일본시장 진출에는 주일 한국대사관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 김옥채 1등서기관은 고리가라오케텍의 시장개척을 처음부터 지켜본 산증인이다. 이현재 상무관은 막판 일본진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일본업체들과의 상담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계약서작성때는 조문 등을 검토해주기도 했다. 고리가라오케텍이 부도위기를 맞자 국내은행 도쿄지점과 협조, 창구마감시간 이후에 송금을 할 수 있게 주선했다. 지난해 11월 대리점 모집용 상품을 수출하면서 일어난 일본 음악저작권협회와의 저작권료문제도 통산성에 도움을 요청, 해결해줬다.고리가라오케텍의 서울 사무실에는 청계천 등에서 몸으로 기술을 익힌 사람들뿐이다. 박사학위를 가진 기술자가 단 한명도 없다. 하지만 기술과 아이디어만큼은 어느 회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자금도 물론 충분하지 못하다. 전형적인 벤처기업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에다 일본자본을 결합, 가라오케의 본고장 일본시장을 뚫는데 성공했다. 일본시장도 틈새만 잘 노린다면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국내에서도 큰 반향 … 주문 쇄도휴대용 가라오케가 국내에서도 큰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을 방침이다. ‘본고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목표다. “가라오케는 일본문화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번졌다. 이번에는 다시 한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최사장은 “가라오케가 21세기 한일우호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고리가라오케텍은 올해 일본수출 8백만달러를 포함, 1천만달러를 수출한다는 목표다. 앞으로 세계 30여개국으로 수출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36개국에 특허를 신청할 예정이다. 3년안에 세계 가라오케 시장을 석권한다는 목표다.고리가라오케텍이 가라오케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