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3월6일. 경칩을 하루 넘기며 새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날은 우리나라 증권업계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LG증권을 시작으로 신영 교보 부국 메리츠증권이 주식현물 위탁수수료율을 이날부터 0.5%에서 0.45%로 인하했기 때문이다. 수수료율 인하는 아직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있지만 증권업계는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MF위기가 터진 지난 97년12월부터 98년 상반기에 걸쳐 고려 동서 산업 동방페레그린 등 증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것에 이어 ‘제2의 증권사 퇴출’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1976년5월1일. 노동절이기도 한 이날은 미국 증권역사의 큰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날 주식위탁수수료율이 자유화됐다. 그때까지 업계담합으로 유지되던 수수료율이 완전히 자유화됨으로써 미국 증권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24년만에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수수료율 인하가 아직은 일부 증권사에 그치고 있으나 멀지않아 대우 현대 삼성 대신 등 대형증권사는 물론 세종 동양 SK 등 중소형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다음에는 수수료율 인하폭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0.45%에서 0.4%로, 다시 0.35%, 0.3%로….현재 주식위탁 수수료율의 경우 거래소시장 현물은 0.45~0.5%이며 코스닥시장은 0.4%이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거래는 0.1%이다. 이 모든 것을 거래대금으로 가중평균한 수수료율은 0.26%인 것으로 분석된다. 수수료인하 전인 0.5%에 비해 49%나 낮은 수준이다. 수수료율 인하경쟁이 본격화되면 현물 수수료율이 일차적으로 코스닥시장과 비슷한 0.4 %로 떨어질 것이다. 또 사이버수수료율 수준을 향해 떨어질 것이며 한발 나아가선 사이버수수료율 인하경쟁도 시작될 것이다.◆ 사이버수수료율 인하경쟁도 본격화주식중개업무에 특화해서 설립된 E*트레이드증권이나 E*미래에셋투자증권 및 키움닷컴증권 등이 조기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이버수수료율을 획기적으로 내릴 가능성이 높다.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E*미래에셋투자증권은 수수료율을 0%로 한다는 각오로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기존 증권사와 ‘전쟁’을 한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수수료율 인하경쟁은 곧바로 증권사의 수익감소로 연결된다. 지난해 4/4분기중 증권사 세전순이익은 1조4백27억원을 기록했다. 절대규모로는 엄청나지만 감소추세에 들어갔다. 2/4분기에는 2조7천5백67억원, 3/4분기엔 1조4천4백64억원이었다. 작년 11월부터 정보통신 열기가 불어닥쳐 코스닥과 거래소 정보통신주의 대량거래로 거래대금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감소한 것은 바로 수수료율 인하 때문이었다. 작년 1/4분기까지만 해도 10% 미만에 머무르던 사이버거래 비중이 40% 수준을 넘었기 때문이었다.현재 주식위탁수수료는 증권사 수익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당장은 증권시장이 활황을 지속하고 있어 수수료율이 인하돼도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약세장으로 돌아서면 대체이익 부문을 개발하지 못한 증권사들은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거래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한번 내린 수수료율을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증권사들이 WRAP(종합자산관리계좌)업무를 서둘러 시작하려 하고 수익증권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한 수익원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다. 수수료 인하경쟁은 증권사간 부익부빈익빈의 차별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확실한 수익원을 개발하지 못한 증권사들은 수수료인하 경쟁에서 낙오돼 고려·동서증권처럼 쓸쓸하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운명에 빠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