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세·화폐환상이 부채 증가 불러 … 국내 경제 정책도 부채 개선후 ‘안정’으로 선회
최근 들어 국제금융시장은 외형상으로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금융변수의 변동폭은 유난히 커지고 있다. 특히 주가의 움직임이 환율, 금리를 좌우하는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이 대목은 향후 국제금융시장을 읽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민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말 미국만 하더라도 민간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1백32%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사상최고수준이다.민간부채가 이처럼 늘어나는데에는 지난해 이후 세계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세계 주가가 회복됨에 따라 민간부문의 자금차입이 크게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늘어난 가계 부채가 최근 5년간 약 3배나 증가했다.미국기업들도 스폭옵션 행사에 따른 자사주 매입을 위해 필요한 돈을 주로 차입에 의존했다. 최근 2년간 미국기업의 부채증가액 9천억달러중 절반이 넘는 4천6백억달러가 자사주 매입에 사용됐다. 그 결과 지난해말 민간부문이 증권사로부터 차입한 신용잔액이 2천2백 85억달러로 98년말에 비해 62%나 증가했다.◆ 헤지펀드 기승 … 투기막을 대책 시급세계경제의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심리도 민간부채가 늘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은 하이테크 산업에 투자를 위해, 가계는 자산소득을 기대한 소비를 위해 차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고위험 차입자에게도 신용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특히 신(新)경제 국면이 미국 이외에 여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세계 인플레가 안정됨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일종의 화폐환상(money illusion)에 빠지고 있는 것도 민간부채가 늘어나는 요인이다. 가계와 기업들은 화폐환상으로 인해 실질이자율이 낮은 것으로 착각해 주식매입용 차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그 결과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줄어들었던 부실채권이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이후 무디스사, S&P사를 비롯한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기업수가 상향 조정한 기업수보다 약 2배나 많은 점이 이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다.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기업 혹은 금융부실이 많고 무역적자국일수록 자본유출에 따른 위험에 빠르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투자자들은 무역적자국 표시자산에 대한 투자를 회피함으로써 외국자본이 유출될 소지가 높아진다. 신용등급도 외화유동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하향 조정하는 것이 관례다.문제는 이럴 때일수록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후 한때 2천개 내외로 감소됐던 헤지펀드수가 최근에는 3천개 내외로 늘어나고 있다. 같은 기간중 헤지펀드들의 자산운용 규모도 5천억달러에서 최대 2조달러로 급증하고 있다.특징적인 것은 최근 들어 주가의 움직임이 환율, 금리를 좌우함에 따라 헤지펀드들의 투자대상도 바뀌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헤지펀드들은 환율, 금리에 연계된 상품에 주로 투자하는 매크로 펀드의 성격이 강했다. 최근 들어서는 주식투자에 집중하는 스톡 펀드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외환시장보다는 주식시장을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정책당국자나 투자자들이 경제변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일한 금리인상폭이라도 과거에 비해 체감적으로 느끼는 부담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기관들의 자금운용이 단기화되고 금융시장은 투기화된다. 최근 들어 금융변수의 변동폭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결국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이제는 미국, 유럽과 같은 경제대국이 금리인상을 통해 민간부채를 줄여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지난해 6월말 이후 소폭의 금리인상으로 민간차입을 억제할 수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금리인상폭은 좀 더 넓게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물론 최근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동조화 추세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있어서는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여타 국가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전세계적으로 민간부채가 줄어들면서 세계경제는 다시 안정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다소 높아졌던 민간저축률이 다시 떨어지고 있다. 동시에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고 물가가 안정됨에 따라 국민들은 차입을 통해 주식을 매입하는 사태가 늘고 있다. 일종의 화폐환상에 젖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관들은 자금운용이 단기화되면서 부동자금이 늘고 있다.이달 들어서는 외국인 주식자금이 마치 봇물처럼 들어오면서 헤지펀드들의 한국행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소로스 펀드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투자한 자금규모가 최대 7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 우리 경제의 전망이 좋다기 보다는 단기적인 금융수익을 노리는 투기적인 성격이 강하다.반면 무역수지는 금년 들어 악화되고 있다. 이미 1월에는 무역수지가 IMF 사태 이후 26개월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2월에는 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긴 했어도 구조적으로는 적자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 환율과 교역상대국의 수입규제 움직임을 감안하면 수출전망도 그렇게 밝지 못한 상태다.◆ 국제수지 특별 관리해야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책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우선 이제부터는 경제운영 기조를 ‘경기부양’보다는 ‘안정’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금리도 시장여건을 반영해 현실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무역수지를 최소한 균형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처럼 IMF사태를 경험한 국가로서는 최근과 같은 국제금융시장 여건하에서는 4대 거시경제목표중 국제수지가 악화되면 불안감이 갑자기 증폭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어느 분야보다도 국제수지는 특별히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동시에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해 남아있는 부실을 털어내고 민간의 자산부채(cash-flow)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돼야 최근처럼 급변하는 대외환경의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될 수 있고 우리 경제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자본유출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조기경보체제(early warning system)를 이용해 자금의 성격부터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 유입되는 자금의 성격을 건전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가변예치제(VDR)를 도입 활용할 필요가 있다. 외화전산망 확충과 같은 제도적 기반도 시급히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투자자들은 이제부터는 위험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금융기관을 통해 차입한 자금으로 주식을 투자하는 행위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금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투자메리트가 증가하는 채권투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