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에 ‘사이버전쟁 2차전’돌풍이 불 전망이다. 증권사들이 ‘사이버증시의 도입’이라는 커다란 환경변화에 직면해 또다른 생존경쟁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홈트레이딩 시스템 등 사이버 주식거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치러졌던 1차전은 그나마 증권사간의 각개전투였다. 그러나 사이버증시 도입이 계기가 될 2차전에선 증권사간의 합종연횡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중소형 증권사는 설 땅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사이버전쟁 2차전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사람은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다. 이위원장은 3월23일 김대중 대통령에게 금감위 업무보고를 한 자리에서 “전자거래시장을 도입하기 위해 올 상반기중 세부방안을 검토한 뒤 하반기중 증권거래법 등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넷 보급 확대와 전자거래 기술의 발달에 부응, 증시도 ‘디지털화’돼야 한다는 정책의지를 담은 말이다.사이버증시는 전자거래시장(ATS·Alternative Trading System)이라고 불린다. ATS는 거래소 이외의 장소에서 운영되는 사설거래 시스템으로 ECN(전자증권거래 네트워크)으로도 통칭된다.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98년12월 ATS 규정을 두고 사이버증시의 설립을 허용했다. 사이버증시는 나스닥이나 뉴욕증시에 상장된 종목들을 중심으로 증시 폐장시간 이후에 주로 매매가 이뤄진다. 현재 미국에서는 인스티넷 아일랜드 등 9개 ECN이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돼 운영중이다.ECN의 위력은 미국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의 거래점유율은 나스닥 거래물량의 33%(98년말)까지 높아지는 등 기존 증시를 위협하고 있다. 나스닥과 뉴욕증시가 합병을 검토한 것도 ECN의 성장세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최근엔 ‘아키페라고’라는 ECN과 퍼시픽증권거래소(PSE)가 합작으로 새로운 사이버증시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일본에서도 올해 초 미쓰이물산과 인터넷증권사인 DLJ디렉트 SFG증권, 마넥스증권등 3사가 ECN을 창설키로 합의했다.이같은 세계적 추세는 한국에도 그대로 재연될 것이 뻔하다. 사이버전쟁 2차전이 증권사간 합종연횡의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사이버증시의 개장을 염두에 두고 갖가지 구상을 해왔다”며 “홈트레이딩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많이 늘려 사이버 주식거래 비중을 높인 것도 장기적으로 사이버시장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 주식거래 비중 1위(75%)인 대신증권 관계자도 “사이버증시의 설립이 허용되면 상품주식을 갖고 있는 증권사들이 시장설립자 겸 마켓메이커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대형증권사는 이미 사이버 주식거래 비중이 70% 안팎에 달하기 때문에 사이버증시를 만들어 사이버주식 투자자들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형 증권사는 갈 곳이 없다. 가뜩이나 지점을 통한 위탁매매가 줄어드는 상황이고 일임매매 분쟁에 휩싸이는 형국에 사이버증시로 손님을 뺏길 판이다. 몇몇 증권사는 고액거래고객 위주로 차별화된 영업을 한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자연스럽게 대형사와의 합병이 거론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형사가 돈을 들여 사이버증시를 만들어봤자 투자자들이 많이 모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4시간 거래체제 … 사이버강자가 우위 확보사이버전쟁 2차전이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운영방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거래소로 등록 또는 허가해주는 방안과 단순히 ‘증권업자’로 허가를 내줘 매매중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장간의 가격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래종목의 시세를 거래소 또는 코스닥시장의 시세와 연동하는 페깅시스템(Pegging System)도 도입할 예정이다. 투자자보호를 위해 불공정거래행위를 막거나 공시제도를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사이버증시 도입방안이 어떤 형태로 확정되든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을 양축으로 한 한국증시의 큰 틀이 바뀌게 된다. 인터넷 공간의 수많은 시장으로 다원화돼 거래소 시장의 경쟁체제가 도입된다.투자자들은 사이버증시를 통해 24시간 거래를 할 수 있다. 당연히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 대형증권사의 사이버증시로 몰릴 것이다. 24시간 주식거래 시대에는 사이버강자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