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말하는 친구가 있다. “피곤하다, 바쁘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다. 하지만 주말에는 어디라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린다. 월요일 오전에는 지난 주말 일정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부지런함을 자랑한다. 휴가도 남들이 가장 많이 쉬는 때를 잡는다. “아무리 길이 막히고 불편해도 남들 놀 때 놀아야 휴가 맛이 난다”고 주장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직업이라 힘들어 죽겠다면서 “휴가 때 안 마시면 언제 마시느냐”며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면서 금쪽같은 시간을 죽인다. 자신이 힘든 삶을 선택했으면서도 마치 남이 그렇게 만든 것처럼 피곤하다고 늘 외친다.오랜만에 휴가가 생겨 경치 좋은 리조트에 갔다. 계획대로 우선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저녁이면 파김치가 돼 아무 것도 못하고 잠자기 바빴다. 강의안도 준비하고, 책도 읽고, 글도 써야 하는데…. 그래서 하루는 구경을 포기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책보고, 글도 쓰고…. 예정대로 구경을 다녀온 동료는 “아마 거기 안간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될걸요”하면서 자랑했지만 혼자서 조용히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화는 그 이상으로 나를 기쁘게 했다. 정말 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반면 단체관광을 따라 나선 적이 있다. 여러 명이 움직이는데다 무리한 스케줄 때문에 몸도 마음도 힘들다. 쉬려고 휴가를 낸 것인데 오히려 일하는 것보다 힘들다. 가이드를 따라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루가 끝난다. 조금 어영부영하면 집에 있지 뭐하러 여행을 왔느냐고 가이드는 야단을 치고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잠이야 집에 가서 자면 되는 것이고 놀러 왔으니 한 곳이라도 더 보고 가자는 것이다. 마치 하나라도 소홀히 보거나 빼먹으면 사는데 큰 지장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서도 경치를 즐기기 보다는 증명사진 찍느라 바쁘다. 구경을 온 것인지 구경거리 앞에서 모델하려고 온 것인지 구분이 안간다. 일상에 찌든 몸이 재충전되기 보다는 더 스트레스가 쌓인 채로 돌아오게 된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휴식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쉬느냐는 휴식 후 일의 생산성을 좌우한다. 휴식이란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하고 싶었지만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무엇보다 맘 편히 있어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교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친구가 <진학 designtimesp=19753>이라는 잡지에 글을 실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잘 하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휴식은 어떻게 취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휴식이란 맘이 편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고3 학생에게 제일 맘 편한 시간은 공부할 때입니다. 따라서 제게는 공부하는 것이 곧 쉬는 것입니다.” 당시 그 얘길 듣고 잘난척한다고 냉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 남들이 으레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또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디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하루종일 비디오를 보는 것이 휴식이고, 집안 정리하고 책보고 가족과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휴식일 것이다. 지식노동자에겐 농사일을 거들어 보는 것이 휴식이고, 육체노동자에겐 책을 읽는 것이 휴식일 것이다. 일만큼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제대로 쉬는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