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중심 신경제체제로 급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활로 모색 앞다퉈

지난 4월28일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 designtimesp=19803> 주최로 열린 경제단체장 초청 간담회.‘구경제’의 산물인 경제 5단체들은 최근 경제 패러다임이 정보통신 중심의 신경제체제로 급변함에 따라 진작부터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일부 변화시도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좀더 절박해졌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재벌관련 정책개혁 의지 및 경제단체관련 법규재정비도 한몫을 하고 있다.우선 현재 업계의 눈길이 집중돼 있는 대한상의의 변화바람은 그 역할론 및 위상론에서 비롯된다. 박용성회장이 취임식에 맞춰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상의가 경제계의 맏형”임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경제 5단체를 언급할 때 대한상의를 맨 먼저 불러 달라”고 강력히 주문했던 것이다.그는 또 “전경련에 가려진 대한상의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말로 대한상의의 ‘위상회복’을 부르짖기도 했다. 이는 곧 현재 전경련이 수행하고 있는 경제계의 대표자리를 대한상의가 대신하겠다는 것으로, 전경련 입장에선 경제계 대표성을 둘러싼 일종의 ‘도전장’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이에 대한 근거로 박회장은 대한상의가 ‘가장 오래되고(最古), 가장 큰(最大)’ 경제단체임을 내세운다. 대한상의는 1952년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설립된 국내 최초의 법정 경제단체. 상의의 시초가 1884년 설립된 한성상업회의소임을 감안한다면, 1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또 전국 62개 지방조직에다 경제단체중 가장 많은 6만여개의 업체를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다는 점도 대표성의 근거로 꼽히고 있다.◆ 전경련 문호개방 … 위상찾기 안간힘이와는 달리 전경련은 60년대 들어 군사독재 정권시절, 몇몇 재벌기업인들이 조직한 친목성격의 임의단체라는 것이 일반인의 인식. 이와 함께 업종별 단체 65개를 포함, 고작 4백60개의 기업을 회원으로 갖고 있는 것도 대한상의와 비교한 전경련의 상대적인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어쨌든 전경련은 고 이병철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정주영(현대), 고 최종현(SK)회장 등 5대 재벌그룹 회장들을 줄줄이 회장으로 영입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덕분에 재계를 대변하는 ‘입’이자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30년 넘게 지속해 왔다.그러나 전경련의 위상은 이미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및 김우중회장의 불명예 퇴진 등과 맞물려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대기업이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고, 전경련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김우중회장의 빈자리를 채울만한 ‘인물’이 재벌그룹중에서 쉽게 나서지 않았던 것이 그 좋은 예.이에따라 중견기업인 (주)경방의 김각중회장이 현재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하고는 있으나, 회장의 한마디가 예전과 같은 ‘무게’를 싣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경제계 주변의 시각이다. 한마디로 요즘 전경련을 두고 경제계에선 ‘바람빠진 풍선’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재벌기업 분담금이 줄어들면서 재원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그렇다면 전경련의 반응 및 살길은 무엇일까.전경련은 일단 최근 불거진 대한상의의 ‘맏형’논쟁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나 비판은 피하고 있지만, 내심 집안단속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김각중 전경련 회장이 지난 5월13일 20여개 업종별 경제단체장들을 초청해 골프회동을 갖고, ‘업종별 경제단체협의회’를 구성해 종합적인 대정부 건의창구로 육성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대한상의·경총 등 역할 확대 나서전경련의 활로모색은 또한 지난 2월 구성된 `발전특별위원회’를 비롯해 올들어 행해진 일련의 사업내용 개편에서 드러난다. 특별위원회가 채택한 핵심내용은 무엇보다 전경련의 문호개방. 대기업 회원 이탈로 빠진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회원가입 요건을 완화하고 올해 안에 60여개의 벤처기업과 40여 외국기업·교포기업을 회원으로 새로 가입시킬 계획이다. 또한 재벌기업 회장들만 참석해 오던 이사회에 업종별 단체장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할 방침. 이는 곧 전경련이 ‘재벌친목단체’란 비판에서 벗어나 종합경제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대한상의의 경제계 맏형논란 및 위상회복 움직임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상의의 법적인 지위변화와 무관치 않다. 기업의 강제가입을 조건으로 한 법정단체였던 상의가 오는 2003년부터 임의단체로 바뀌어 회원가입 의무가 없어지는 것이 그 배경. 가입의무가 없어지면 회원탈퇴가 줄을 잇고, 연간 예산의 30%를 회비로 충당해온 상의로선 그만큼 재원이 부족해질 것이 뻔한 일이다.따라서 박용성회장의 변화모색도 이같은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박회장은 실제로 “대한상의의 존재이유는 회원만족에 있다”면서 “모든 사업내용 및 조직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 철저하게 회원들을 위한 상의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활로를 찾기 위한 변화모색에는 경총도 예외가 아니다. 벤처붐으로 노사문제에 관심이 줄어들면서 노사관계 조정자로서의 경총의 역할이 위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총은 게다가 전경련과의 통합설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얼마전 일본에서 한국의 전경련·경총과 비슷한 관계인 경단련·일경련이 오는 2002년5월까지 하나로 합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국내에서도 전경련·경총의 통합설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경총 김영배상무는“일본의 경우 노조활동이 약화돼 노사문제를 맡은 일경련의 역할이 사실상 사라졌지만, 한국의 경우 2002년부터 복수노조 시스템이 도입되는 만큼 경총의 할 일이 오히려 많아질 것”이라며 존재이유를 강조했다. 3백50개 회원사를 가진 경총은 더 이상의 회원이탈을 막기 위해 종합적인 인력문제 종합컨설팅 및 해결센터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계획이다.무협은 99년 적극적인 추진력과 투명경영으로 유명한 김재철회장(동원산업 회장)의 취임과 동시에 조직슬림화, 인터넷 무역사이트 개설 등 변화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무협의 변신몸부림은 그러나 올해부터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대외무역법상 무역업 신고제가 올 1월부터 폐지돼 회원 가입이 의무에서 임의로 바뀜에 따라 이미 회원감소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 이에 따라 회원사와 비회원사간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회원가입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함으로써 기존 회원도 지키고 신규회원도 확보하겠다는 것이 무협의 전략이다.중기협 역시 회원사들의 의존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자금확보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다른 회원사들과 마찬가지. 이에따라 벤처기업협회를 특별회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회원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중소기업인을 위한 은행과 벤처캐피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뷰 /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감투만 즐기는 회장은 되지않겠다”박용성회장의 최근 발언을 두고, 대한상의가 과연 전경련을 제치고 경제계 ‘맏형’노릇을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경제계 주변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는 굳이 대한상의가 국내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경제단체라는 해묵은 사실보다는, 박용성회장 개인의 능력과 배경 및 리더십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청와대가 최근 이례적으로 대한상의 회장단을 불러 오찬을 함께 하는 등 대한상의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도 박회장에 대한 신뢰감의 표시라는 설도 있다.우선 박회장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 이는 박회장이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하는 것들이기도 하다.박회장은 95년 당시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던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선거에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출마, 치열한 선거전 끝에 회장직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박회장은 “이미 3~4년 전부터 공을 들여 온데다 유도 창시자의 친손자였던 일본인 회장을 꺾고 당선됐기 때문에 더욱 기뻤다”고 말한다. 당시 그는 ‘선거에서 지면 집(한국)에 돌아가는 것도 포기하겠다’는 각오로 선거에 매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다음은 두산의 구조조정.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을 살려내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박회장은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소위 ‘걸레론’으로 알짜배기 기업들을 처분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 박회장은 “지난해 12월 연말 결산보고서를 받아보고 또 한차례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비교적 낮은 부채비율과 여전히 30대 그룹중의 하나로 건재한 그룹의 모습을 ‘숫자’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박회장이 대한상의에 애착을 갖는 또 다른 사연도 있다. 박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회장의 3남이다. 박회장의 선친인 박두병회장은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걸쳐 6~8대 상의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상의는 갓 발족한 전경련을 제치고 경제계의 대표단체로 ‘군림’했었다.따라서 대한상의의 ‘잘나가던 시절’을 선친과 더불어 기억하는 박용성회장이 아들대에 다시 맡게된 상의를 ‘쭈그러진 늙은 말’모습으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분석. 여기에는 원칙을 세우면 꼭 지키고야 마는 그의 업무스타일까지 뒷받침되고 있다.따라서 그가 내뱉은 말, 즉 대한상의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말’은 어떤 식으로든 지켜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박회장은 “이왕 회장직을 맡은 이상 감투만 즐기는 회장은 되지 않겠다”며 “열심히 일하는 회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박회장은 노트북 컴퓨터를 ‘애인처럼’ 끼고 살다시피 하는 소문난 ‘컴퓨터광’. 상의회장 취임 후 “굴뚝산업에 정보통신의 날개를 달자”는 표현으로 상의조직 및 회원기업의 온라인화에 박차를 가하는가 하면, 첫새벽부터 E - 메일로 업무지시를 하는 바람에 상의 직원들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다만 격식없이 활짝 웃는 그의 모습에서 ‘소탈하고 낙천적인 자유인’을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