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민정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에는 어김없이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다. 딱히 정보가 필요해서만은 아니다. ‘습관적’이다. 일단 신문사 사이트에 들러 뉴스를 본 후, 여러 사이트를 서핑하다가 채팅사이트에 들어간다. 주부들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키보드를 치는 솜씨가 늘면서 생긴 즐거움이다.같은 학년의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지방의 동갑내기 주부를 채팅친구로 사귀기도 했다. 이웃에게 말못할 고민도 간간이 주고받을 정도다.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다 보면 후련함마저 든다. 채팅을 마치고 다시 마우스를 클릭해서 옮겨간 곳은 영화예고편을 보여주는 곳. 시사회 참여가 걸린 이벤트에 응모도 한다.약간의 무료함을 느낄 때쯤이면 생각나는 것이 커피. 커피에 어울리는 찰떡궁합은 역시 음악이다. 인터넷방송국에 들어가 신청곡을 몇개 올린 후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린다. 결혼때 혼수로 장만해온 오디오가 낡아 리모컨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인터넷으로 듣는 방송은 언제나 ‘짱’이다. 음악과 커피에 취해 잠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점심을 먹을 시간. 친구나 이웃들과 먹는 외식이 아니면 혼자 먹는 점심이라 대충 때우는 것이 습관이 됐다. 식사후 밀린 빨래와 간단한 청소를 마치자 나른해진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난 늦은 시간에 들어가 남편이 즐기는 것을 보고 알게된 고스톱사이트를 들어간다. 가입시 받은 사이버머니가 제법 두둑해졌다. 잘 친다는 소리도 곧잘 듣는다. 명절 때마다 시댁식구들에게 돈을 잃었지만, 인터넷 고스톱처럼만 친다면 다시는 돈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초인종소리에 도어폰을 보니 학교를 마치고 귀가한 아이들. 간식거리를 챙긴 후 아이와 함께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이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높여주기 위해 미국 동요와 동화, 영어만화 등을 제공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한시간 정도 함께 즐긴다. 그후에 마우스는 아이몫. 퇴근할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기도 하다.’한 전업 주부의 일과다. 집안에서만 보내는 하루다. 따분하거나 단조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이러한 생각이 틈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즐길거리가 무궁무진한 인터넷이라는 창고의 문을 마우스로 가볍게 클릭하면 언제든지 꺼내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상의 엔터테인먼트들이 모두 디지털을 대표하는 인터넷에 웅지를 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덩달아 게임 음반 영화 방송 비디오 등 오프라인의 엔터테인먼트들도 빠르게 디지털 공간으로 진입하거나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다. <오락의 경제 designtimesp=19849>라는 책에서 마이클 울프가 ‘보이지 않는 손은 마우스 위에 있다’고 한 말을 증명하듯.◆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21C 경쟁력 ‘코드’이처럼 디지털공간(인터넷)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오락거리들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터넷콘테츠 가운데 오락과 관련된 것을 가리키는 ‘e엔터테인먼트’나 ‘인터넷오락’ ‘유락산업’ 등과 마찬가지의 의미다.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주목받는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가장 먼저 인터넷의 대중적인 보급을 들 수 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국내 인터넷이용자(7세 이상, 한달에 한번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는 지난 94년의 13만8천명에 비해 1백배 이상 늘어난 1천3백93만명에 이른다. 특이하다할 만한 것은 여성 인터넷 이용자가 늘고 있다는 점과 대부분 자료검색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게임 및 오락사이트 검색과 채팅 등 엔터테인먼트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인터넷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표가 e커머스 즉 전자상거래임을 감안하면 회원확보를 통해 인터넷의 클릭수를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방법의 선두에 ‘재미’를 담은 엔터테인먼트콘텐츠가 있는 것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교수는 “인터넷의 확산으로 일반인들이 문화의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됐다”며 “이를 겨냥한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중요한 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돈이 된다’는 것이다.인터넷 자체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공간이라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이는 물리적 거리를 극복한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나타난 일이다. 물론 ‘퓨전(융합)’ ‘컨버징(수렴)’ 등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도 힘을 얹었다. 게임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등이 장르를 넘나들며 융합·수렴하는 것이다. 디지털기술의 덕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휴종 연구원은 “무한반복이 가능하고 쌍방향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확산의 또 다른 배경은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래적인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문화사학자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라는 말을 예로 든다. 유희적 인간 즉 ‘놀이를 즐기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것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만큼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중요하다. ‘엔터테인먼트가 제공하는 재미가 현대 소비자에게 최우선적인 문화가치’(마이클 울프)라는 것이다. 인포테인먼트나 에듀테인먼트도 결국은 정보나 교육 등에 ‘재미’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국내 걸음마단계, 네트워크 구축 시급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덩치를 키우면서 중요성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바이오 등과 함께 21세기의 성장산업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미국 신경제호황이 오프라인산업에서 일본 등 경쟁국에 밀리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쉬지 않고 투자를 진행해온 엔터테인먼트산업이 결실을 맺으면서 나타난 일이라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실제로 지난 98년 미국의 엔터테인먼트시장은 모두 4천8백90억달러로 미국의 경제성장률보다 세배나 높은 10.44%의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그러나 눈을 우리나라로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세계시장에서의 엔터테인먼트산업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에 반해 국내 실정은 아직 ‘걸음마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규모도 턱없이 작다.(표 참조)게다가 인력 기술 사회적 분위기 등 열악한 인프라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나마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에서 문화산업진흥이라는 목표 아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대기업과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한국문화정책개발원의 최영섭 책임연구원은 “선진국과 비교해 인력이나 기술 등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기획 마케팅 등에서 많이 부족하다”며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한편 네트워킹을 통한 경쟁력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