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과정서 지나친 낙관주의 팽배 … 연초 투신권 구조조정 늑장대응 도화선

제2 경제위기설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우문에 대한 대답은 한 국가의 위기가 어떤 과정을 밟으면서 진행되는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위기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우선적으로 대외신용을 지킬 수 있는 외화유동성에 금이 가면서 생기는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일단 외환위기를 겪게 되면 우리처럼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때 담보관행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금융위기로 진전되는 것이 관례다.외환위기로 기업부도가 속출하면 담보가치가 급락하게 되고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을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금융위기로 실물부문에 필요한 기름(돈)을 공급해 주는 엔진장치에 해당하는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게 된다.물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적으로 외화유동성을 확보해 대외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바탕으로 위기를 낳게 한 부실을 털어내야 금융 혹은 경제시스템을 복원할 수 있고 경제도 안정될 수 있다.◆ 금융ㆍ경제시스템 복원 뒷전외화유동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과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경제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예가 중남미 국가들의 예다.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외환위기를 겪은지 무려 20여년이 지났지만 경제가 늘 불안한 것도 외환위기 극복과정이 이같은 수순을 제대로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98년에 3백90억달러, 지난해에는 2백60억달러에 해당하는 경상수지흑자로 여타 금융위기국가에 비해 외화유동성을 빨리 확보했다. 그 결과 우리 경제가 회복될 수 있었고 국가신용등급도 불과 1년만에 다시 투자적격 단계로 조정될 만큼 해외시각이 개선될 수 있었다.문제는 최근 들어 우리 경제내에서 위기에 대한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몰릴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책당국에서는 거시경제 지표의 양호함을 들어서 위기가 아니라는 점을 소위 ‘펀더멘탈론(fundamentals)’을 들어 강조하고 있다.반면 시장에서는 주식투자가들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의 위기감을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소한 시간이 갈수록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도 외평채 가산금리가 지난해말에 비해 1% 포인트가 높아지는 등 우리 경제를 보는 해외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우리 경제현안에 대한 인식도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정책당국자는 급한 불을 끄다 보면 꽃밭을 밟게 되는 소방관에 비유해 ‘꽃밭론’를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난 2년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한 결과 이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도 회복되고 있다는 얘기다.이 과정에서 저지른 사소한 일로 최근 들어 우리 경제의 불안감이 높아진다고 해서 현경제팀이 무능하다느니 교체해야 하느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은 해도 너무 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현경제팀의 공은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현재 금융시장 불안의 주범인 투신권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정책당국의 처리방식을 놓고 ‘바가지론’으로 반격하고 있다. 얼마전 강원도 일대에 난 산불도 초기단계에서 몇 바가지의 물만 있으면 충분히 진화할 수 있다. 그 시기를 놓치다 보면 백두대간을 다 태울 만큼 큰 불이 된다는 논리다.마찬가지로 연초에 투신권 구조조정에 대해 신속히 대응했으면 최소한 최근에 나돌고 있는 우리 경제의 위기설은 제기되지 않았다는 시각이다. 그 시기를 놓치다 보니 앞으로 5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우리 경제내에서 제2의 위기가 거론될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는 입장이다.이 부분은 중요한 지적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책당국의 대처가 잘못됐기 때문에 위기설이 나오는 근본원인이다. 과거 금융위기국들의 위기극복 과정을 보면 우리처럼 초기단계에 외화유동성 문제를 해결한 후 경제가 계속해서 안정될 수 있느냐 여부는 시스템 위험의 치유정도에 따라 좌우된다.문제는 대부분의 외환위기 국가들이 유동성 위험을 해결한 후 시스템 위험을 해결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현재 정책당국자처럼 꽃밭론에 취해 정책을 실기(失機)할 경우 ‘IMF 3년차 증후군’이 나타나면서 제2의 경제위기설이 대두된다.◆ 'IMF 3년차 증후군' 경고특히 우리는 위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너무 빨리 경제회복의 맛을 본 상태다. 시기적으로도 총선 이후 일종의 ‘레임덕 현상’으로 정책당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당국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정책당국자 역시 꽃밭론에 취해 공치사에 여념이 없다면 누가 나서서 남아있는 위기과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결국 정책당국에서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읽고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우리 경제의 위기설을 불식할 수 있다. 그럴려면 외환위기 극복 초기단계에 정책당국자가 보여준 마음가짐(初心)을 가지고 개혁과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합의(moral suasion)를 구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책임은 반드시 전제가 돼야 한다.정책수단도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여건을 감안할 때 금리를 시장여건에 맞게 현실화시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정책당국에서는 최근처럼 국제금리가 상승해 대내외 금리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저금리를 고집할 경우 어느 순간에 위기에 대한 우려감이 다시 증폭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