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돌풍 출세방정식 지각변동 … 미 대학 프로그램 마련, 육성 앞장

미국 경제계에서 ‘젊은 피’ 바람이 거세다. 일류 대학의 학부 과정을 마치고 명문 경영대학원이나 로스쿨을 졸업, 월가나 실리콘 밸리의 초우량 기업에서 야심차게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전까지 미국 젊은 엘리트들의 ‘출세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인터넷 신경제 혁명은 이런 ‘질서’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고등학교 교실에 얌전하게 앉아 있어야 할 10대 청소년들이 어엿한 벤처 기업인으로 비즈니스 최전선을 뛰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대학은 미래의 산업 전사를 배출하는 도량이 아니라, 현직 벤처 기업인 지원 센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학생 벤처, 미 비즈니스 지도 바꿔미국 컴퓨터 업계에서 ‘제2의 빌 게이츠’로 주목받고 있는 제이슨 메이어는 ‘젊은 피’ 선풍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제적인 컴퓨터 사업가를 꿈꾸는 그의 나이는 올해 17세. 고등학교에 다니던 3년전 “어차피 시작할 사업의 기반을 하루라도 빨리 다지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신경제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창업 자금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푼푼이 모아둔 1천5백달러였다. 그 돈으로 벼룩시장의 한 구석에 부스를 설치하고는 ‘메이어 테크놀러지’라는 컴퓨터 수리점을 차렸다.창업 첫해인 97년에는 매출이 단 4천달러에 그쳤지만 작년에는 50만달러를 기록했다. 컴퓨터 부품을 매입한 후 고객의 구미에 맞게 조립하거나, 기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회계나 결제 시스템으로 응용해 공급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한 덕분이다. 재택사업가를 위한 통신 솔루션 제공을 새로운 아이템으로 추가하면서 많은 개인 사업자들을 단골 고객으로 확보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백50만달러로 잡았다.고등학교를 초반기에 때려치우고 비즈니스 일선에 나서 당당히 업계의 일각을 차지한 메이어에 비하면, 콜럼비아대학교 인문대학 1학년 학생이자 벤처 기업가인 브라이언 버켓은 노숙한 편에 속한다. 학업이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기는 올해 19세인 버켓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굳이 대학 입학을 선택한 것은 창업을 위한 각종 연줄을 모색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이라는 연결고리가 유용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미국의 상당수 대학들이 학내 벤처 인큐베이터를 앞다퉈 설립하는 등 비즈니스의 산실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젊은 벤처 기업가들에게 대학이 우수한 두뇌, 자본, 사업에 필요한 각종 연고, 행정적 편의 등을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당연한 시대적 추세가 됐다. 버켓이 입학한 콜럼비아대 역시 지난해 ‘콜럼비아 미디어 엔터프라이즈’라는 법인을 세워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학내 투자클럽에서는 2001년중 학내 비즈니스 경연대회를 개최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사업 기회를 찾아 콜럼비아대학교에 왔다”는 버켓에게 전공인 인문학은 아예 관심 밖이다. 입학한지 1년도 되지 않은 터에 벌써 몇차례나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강의시간 결석이 잦다. 대신 경영학 관련 수업에는 총력을 기울인다. 수업 이외 시간에는 학내 유력 인사들과의 대면에 부지런히 나서고 있다. 학내 창업보육센터 이사진을 만나기 위해 학생회장에 출마, 모임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를 이용해 자신의 사업 계획을 설명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방과후 사업 계획서를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e-메일을 보내는 등 구상중인 사업과 관련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버켓과 같은 ‘학생 벤처기업인’들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대학들은 앞다퉈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콜럼비아대의 경우 미디어 엔터프라이즈 외에도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CIE(Columbia Innovation Enterprise)가 있으며, 시티뱅크와의 제휴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랭 펀드(Lang Fund)도 학생 창업자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지난 98년에는 CORE(Columbia Organization of Rising Entrepreneurs)라는 기구를 설립해 학내 벤처 지원에 나서고 있다. 콜럼비아대는 작년 한해 동안 CIE를 통해 1억달러 상당의 특허관련 수입을 올렸으며, 약 3백건의 특허 계약을 성사시킨 바 있다.이처럼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은 성공한 학생 사업가들이 대학에 막대한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워싱턴대학교 1학년 재학중 학교로부터 ‘학생 벤처’ 제안을 거절당한 앤드류 펄만이라는 학생이 보스턴대학으로 전격 편입한 최근의 ‘사건’은 이같은 단면을 잘 보여준다. 시가총액 10억달러 상당의 인터넷 서비스 및 데이터 서비스 업체인 시그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CGC)사를 경영중인 펄만은 자신의 사업 계획에 호의를 보여준 보스턴대를 위해 막대한 기부금을 약속한 상태다. 인터넷 보안 관리업체인 인터넷 시큐리티 시스템즈(ISS)사를 창업한 크리스토퍼 클라우스라는 학생 벤처기업가도 모교인 조지아 공대를 위해 지난 3월 1천5백만달러를 기부,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최근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열린 경영대학원의 비공식 학생모임에서는 ‘구식’ 산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제기된 것과 함께 테크놀러지를 통한 산업의 이행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 중에는 이미 항공화물 운반 경매사이트인 에어프라이트센트럴닷컴(airFreightCentral.com)이나 파워 엔지니어링 계약의 아웃소싱을 대행하는 파워네트웍스닷넷(PowerNetwork.Net) 같은 벤처업체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뉴이코노미의 물결 앞에서 창업에 대한 장미빛 기대는 커지고 세상에 무슨 일인가를 터뜨릴 수 있다는 기쁨이 이들을 잡아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영웅은 더 이상 스포츠 선수나 정치가가 아니며, 아마존의 제프리 베조스나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등 단시간에 인터넷 시장을 평정하고 막대한 부를 얻은 젊은 사업가들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인기 있는 역할모델이 변하면서, 최근 학생 창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창업학생 겨냥 벤처 캐피털도 등장학생 벤처 기업가들이 만만치 않은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학생 벤처를 겨냥한 전문적인 벤처 캐피털도 나타나고 있다. 올초 설립된 유니버시티엔젤스닷컴(University Angels.com)이라는 벤처 캐피털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에는 젊은 사업가가 사업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은행 대출담당창구에서 여러번 굽신거려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테크놀러지 비즈니스에 대한 사업계획서만으로 얼마든지 투자자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조사 전문기관인 벤처원사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기업이 조성한 벤처 자금은 총 3백65억달러였으며, 민간 엔젤 투자자들의 벤처 자금도 5백50억달러에 달했다.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10년 호황’을 구가하면서도 ‘피로 증세’는 커녕 오히려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를 ‘젊은 피’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중간 단계를 생략한’ 젊은 벤처 기업가들이 속속 등장하는 등 탄탄한 휴먼 인프라가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미국 경제 최고의 자산이라는 지적이다.10년 전만 해도 촉망받는 MBA(경영학 석사) 출신들은 골드만 삭스, 매킨지, P&G 같은 금융, 컨설팅, 제조업 등 분야의 초우량 기업으로 진로를 잡았다. 창업에 나서기 전 대규모 조직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규범처럼 통용되던 때였다. 그러나 이제는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창업을 미룰 여유가 없다. 머뭇거리다가는 경쟁자에게 시장을 선점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 대학이 앞다퉈 학내 보육센터를 세우고 있고, 학생 창업이 증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규모 조직 문화에 대한 염증과 젊은 두뇌의 창조력에 대한 기대도 이런 경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최근 10여년간 미국에서 창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부쩍 증가한 것은 경제 호황과 넘쳐나는 자금, 테크놀러지의 발전 등 여러 가지 요인에 힘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이들 ‘젊은 피’들로 미국의 비즈니스 관행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