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시간 1백분, 촬영시간 2백분. 아무래도 김기덕 감독의 신작 <실제상황 designtimesp=19898>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영화 안보다 바깥쪽에 더 풍성할 수밖에 없다.당초 김기덕 감독은 1백분 동안 찍어서 1백분 동안 상영하는 영화를 기획했다. 5월25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퍼포먼스처럼 진행된 실제촬영은 예정시간을 조금 넘겼지만, 2백분만에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은 평범한 제작 방식은 아니다. 때문에 제작 현장에는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김감독은 ‘과연 진짜 할 수 있겠느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뒤로 한 채 취재진을 몰고 다니며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켠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한식(주진모)은 항상 말이 없는 젊은이다. 깡패들이 자릿세를 뜯고, 애인은 다른 남자와 놀아나며, 악덕 사진사가 그의 돈과 노동력을 착취해도 잠자코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불타는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주변을 맴돌던 이상한 소녀는 그를 낯선 연극무대로 이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이 무대에서 감춰진 자신의 분노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이제 거리로 나온 그는 살인마로 돌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을 ‘날것’으로 표출한다는 김기덕 감독의 일관된 성향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데뷔작인 <악어 designtimesp=19905>부터 최근작 <섬 designtimesp=19906>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런 거친 스타일은 ‘지독한 악취미’라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한 평 속에서 외면돼 왔다. 그가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오랫동안 철저하게 자기 색깔을 고수하며 영화를 만들어 왔으나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감독이었다.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제작된 이번 영화에서는 그러나, 이같은 거친 개성이 감독의 다른 어느 영화보다 덜 두드러진다. 전작들이 ‘내지른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실제상황 designtimesp=19909>은 정돈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2백분만에 멀쩡한 영화를 뽑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조심스런 행보를 택하게 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