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프레서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5년 연속 흑자 행진 … 탄탄한 기업 탈바꿈

서사장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한국의 주물산업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중국산 저가 주물제품의 수입이 늘고 있으나 이들의 품질 수준은 한국보다 20년 이상 뒤졌다는게 그의 판단이다.경북 영풍에 백산서원이 있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99칸짜리 사당이다. 을사보호조약 때 독립투사로 활동하다 순국한 충의공 서재승 의사를 기리는 곳이다. 서울과 의정부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거하다 일본 헌병에 체포돼 39세에 순절했다.낙동강변인 부산 사상공단에 있는 신일금속. 이 회사 사장인 서병문(56)씨는 서재승 의사의 친손자다. 키 1백80㎝, 몸무게 94㎏의 거구에 유도 4단. 경희대 체대에 다닐 때는 배구선수를 하며 좌측 공격수를 맡았었다. 별명은 레프트 킬러.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ROTC 대위로 예편한 뒤 1981년 주물업체인 신일금속에 입사했다.사상구 학장동에 자리잡은 신일금속은 부지 1만8백평, 건평 6천평규모. 이곳에는 전기로 6기가 있다. 섭씨 1천도에 이르는 고온에 녹은 붉은 쇳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온다. 이들을 틀속에 넣어 가공한게 주물제품이다.신일금속에 들어갔을 때는 회사가 부도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1962년에 설립된 신일금속은 부도 당시 종업원이 1천여명에 이르는 국내 굴지의 주물업체. 하지만 경기침체로 수주가 줄고 생산품목도 다양하지 않아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였다.서 씨는 회사측 추천을 받아 관리이사로 입사했다. 출근해보니 어려움이 피부에 와닿았다. 직원들의 동요부터 막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부도로 사원이 뿔뿔이 흩어지고 어수선했던 것.근로자들과 통근차를 함께 타며 출퇴근을 했다. 저녁에는 라면과 쌀을 사들고 직원집을 방문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해야 회사가 살아날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눴다. 근로자들의 애로를 파악하고 회생방안을 강구하니 방향이 잡혔다.◆ 직원 일치단결도 재도약 한몫가장 중요한게 일치단결. 그래야 강한 추진력이 나오고 재도약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몇달 동안 직원들의 불만을 듣고 근로조건을 파악한 뒤 개선을 약속하며 화합을 이끌어냈다.다음은 품목다각화. 컨테이너가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코너캐스팅제품 등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시장개척에 한계가 있었다. 개발팀을 발족시켜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제품을 만들어 제조업체와 상의한 뒤 완제품으로 납품하는 방식이었다.냉장고 중장비 자동차 항공기 선박 화학플랜트 군용품 등의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냉장고는 전망이 밝았다. 냉장고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컴프레서를 생산해 가전업체에 납품한게 기사회생의 전기가 된다. 지금은 이 제품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삼성전자의 냉장고에는 약 80%, 대우전자 제품에는 거의 대부분 들어간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이어 클러치 플라이휠 등 자동차부품을 생산하고 조깅머신용 플라이휠 등 헬스용품 분야로도 진출했다.국내에서 궤도에 진입하자 해외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 영국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 10여개국으로부터 항공기나 선박 가전 중장비 부품 주문이 들어온다. 지난해 매출 3백85억원중 수출은 1천2백만달러로 3분의 1을 차지했다.서씨는 1989년 신일금속 대표로 취임해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10여년간의 노력끝에 1990년대 들어서는 탄탄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해마다 매출이 10% 가량 늘고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3월에는 부채의 원금을 모두 갚았다.◆ 부채 원금 모두 갚고 정상화 이룩주물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한 서사장의 주물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주물은 기반산업입니다. 주물의 중요성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요. 만일 국내 주물업체가 전부 문을 닫으면 가전 자동차 철차 조선 주택건설 토목 등 거의 모든 산업이 마비됩니다. 이들 부품은 쇠이고 쇠를 가공하려면 주물산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국내에 있는 주물업체는 약 1천여개. 대부분 종업원 20~50명의 영세업체다. 전체 종사자는 3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가족을 포함하면 10만여명이 주물로 생계를 잇는 셈이다.“주물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입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 주물산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그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한국의 주물산업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중국산 저가 주물제품의 수입이 늘고 있으나 이들의 품질 수준은 한국보다 20년 이상 뒤졌다는게 그의 판단이다. 내부에 기포가 없고 강도와 경도 표면상태가 정밀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서사장은 회사를 정상화시키면서 업계를 위해 진해마천주물공단사업조합 이사장을 맡아 주물공단을 조성하기도 했다. 15만평 규모의 이 공단에는 45개업체가 입주해 있다. 신일금속도 몇년내 이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다.기협중앙회 부회장이기도 한 서사장은 “최근 인터넷 벤처열풍이 불고 있으나 이에 못지않게 기반산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단조 도금 공구 염색 표면처리 등 기반산업이 튼튼해야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그런 토대위에 인터넷산업이 자리잡아야 비로소 한국의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일궈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051)311-7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