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를 보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으니 영화는 돈이요, 돈은 영화라는 강령이다. 올 여름 할리우드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고대 로마를 재현해 냈고, 공룡 시대를 부활시켰고, 그 황당무계한 즐거움은 우리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는 주된 세력이다. 한국 영화계의 사정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40억 원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는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주부터 엄청난 흥행성적을 과시하며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하지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esigntimesp=19991>는 자본의 마력에 빠져 현란한 비주얼에 열을 내는 영화제작자나 관객들 모두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내리친다. 첫째, 이 영화는 절대 큰 돈을 들인 영화가 아니라는 점, 둘째는 독립 자본으로 제작된 4편의 단편을 릴레이식으로 이어 붙인 독특한 형태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스타는 한명도 등장하지 않고 그 흔한 컴퓨터 그래픽도 없다.하지만 돈 냄새가 빠진 이 영화에는 감독이 살아 있다. 말 그대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esigntimesp=19994>는 독립영화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그렇다고 다른 많은 독립영화처럼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주인공이나 영화가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부피가 큰 주제의식을 이 영화 역시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버린다면 절대 오산이다.오히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esigntimesp=19997>는 전형적인 상업영화, 그 중에서도 고농도의 폭력을 무기로 한 액션영화로 타란티노나 왕가위를 떠올리게 한다.<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esigntimesp=20000>를 구성하고 있는 4편의 에피소드는 뜻하지 않게 사람을 죽인 성빈과 그의 친구 석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들은 후에 깡패와 경찰로 맞닥뜨리게 된다. 캐릭터 설정이나 ‘하드보일드 액션 릴레이’라는 헤드카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압권은 다양하면서도 지극히 사실적인 액션 장면들이다.또한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액션 호러 다큐멘터리 갱스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어떤 블록버스터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 새로움을 보여준다.이 속시원한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올해 27세의 류승완 감독이다. 그는 이 영화의 감독 각본 무술감독 주연 등 1인 4역을 해내면서, “충무로 전대미문의 신화가 탄생했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어린 감독의 영화인생은 가히 거장의 이름만큼이나 무게감을 준다. 촬영은 충무로의 짜투리 필름을 받아 가능했고 제작비는 막노동으로 충당했다. 이런 점에서 엔딩 크레딧에 소박하게 떠오르는 ‘외유내강’은 그가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 온 자세이자, 한국 독립영화의 투지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건 극장에 붙여진 이후 관객이 새로운 시도를 선택해 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죽거나, 혹은 뜨거나 둘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