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종금 경영권분쟁 '시끌벅적' 숱한 화제 남겨... '사보이호텔의 신성무역 인수' 성공사례 꼽혀

한화종금은 불법사모 전환사채발행으로 경영권은 지켰지만 결국 파산했다. 97년 경영권의 향방을 가늠했던 임시 주총.정서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적대적 M&A가 쉽지 않았던 국내에도 90년대 초 M&A 바람이 불기 시작, 지금까지 20여건의 드러난 적대적 M&A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집계된다. 국내에서 발생한 적대적 M&A 사례들은 경영권을 둘러싼 1대 주주와 2대 주주의 분쟁과 다른 기업 또는 제 3자의 경영권 인수시도 등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눠진다. 국내에는 특히 동업기업이 창업 2세대가 들어서면서 감정적인 분쟁이나 독점욕에서 비롯된 적대적 M&A시도가 많았고, 미도파 등 무리한 M&A 방어로 부도의 비운을 당한 기업이 많다는 점이 외국과 다른 ‘한국적인’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이들 사례 중엔 법적으로나 새로운 기법면에서 국내 M&A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사례들도 적지 않다. 94년 한솔그룹의 동해종금(현 한솔종금) 인수는 국내 최초로 ‘공개매수’를 이용한 M&A로, 또 95년 경남에너지 1대 주주(원진)의 경영권 독점시도는 2대 주주인 (주)가원이 국내 처음 ‘백기사(방어자측 우호세력. 대웅제약)’를 끌어들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무리한 M&A 방어로 부도 기업도 발생그러나 지금까지 국내 M&A사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남긴 사례로는 한화종금 경영권 분쟁을 들 수 있다. 사태의 발단은 2대 주주였던 우풍상호신용금고 박의송 회장측이 우학그룹 이학회장을 ‘흑기사’(공격자측 우호세력)로 끌어들여 40% 이상의 주식을 매집, 96년 임시주총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중요한 투자결정 과정에서 2대 주주를 따돌린 채 부적절하고 방만한 경영을 했다는게 박회장측이 밝힌 경영권 도전의 이유였다. 이 사례는 이름도 생소한 2대 주주가 10대 그룹에 속한 대기업 계열사의 경영권을 노렸다는 점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주로 대기업이 작은 기업을 집어 삼키던 당시 정황에 비추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이렇게 시작한 분쟁은 박회장측의 이사직무정지 가처분신청, 회계장부열람 가처분신청, 사모전환사채(CB) 효력무효 소송 등과 한화측의 반격소송(증권거래법 위반, 공정거래법 위반 등) 등 국내 M&A 사상 최다 소송 기록을 세웠다. 이 때의 소송은 적대적 M&A 추진기업의 교과서적 사례로 이용될 정도.무엇보다 한화종금 사례의 백미는 사모전환사채(CB)의 발행. 당시 우리사주를 포함해 22.3%의 공식지분으로 다소 불리한 입장이었던 한화측은 사모사채발행 및 이의 주식전환으로 지분율을 높이면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불법시비를 낳았던 이 사모전환사채 발행은 지난 99년 서울지법 민사합의 21부의 ‘위법’판결을 받았고 이 시점에 한화종금은 이미 재경원의 부실종금사 퇴출조치로 파산절차를 밟고 있었다. 결국 한화는 경영권은 방어했지만, 파산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적대적 M&A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이 사보이호텔의 신성무역 인수다. 당시 신성무역은 20여년 역사의 기모노제품 및 실크원단 수출업체로 자산가치가 높고 부채가 적으면서 대주주(김홍건사장) 지분이 낮은 알짜기업으로 통했다. 2대 주주였던 사보이호텔은 무역업 진출을 노리고 신성무역주식을 매집, 24.7%의 지분신고를 하고 공개매수를 선언했다(97년5월). 물론 우호세력의 지분을 미리 확보한 후였다. 이 과정에서 증권감독원이 같은 해 4월 개정된 증권거래법에 따라 우호세력의 지분을 공동보유지분(파킹)으로 파악, 사장 처음으로 파킹불법 판결을 내렸다. 사보이호텔은 결국 새 증권거래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개매수를 통해 50%+1주의 주식을 취득, 비교적 깨끗하게 적대적 M&A를 마무리하는 성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