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 유해사이트 제한 의지 … 시민단체, 검열제도 주장 ‘대립 첨예’

인터넷 내용 등급제 도입에 따른 논란이 한창이다.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해 정보를 구분하는 등급제를 도입키로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콘텐츠)을 일정 기준에 따라 등급을 표시해 청소년을 유해 사이트로부터 보호한다는 제도다. 영상물에서 보면 미성년자 관람가와 관람불가와 같은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정보통신부는 10월경 시범 실시를 하고 올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 내년 7월부터 영리 목적의 사이트에 대해 등급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진보네트워크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는 정부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통신망의 통제를 시도한다며 인터넷 내용 등급제 철회 성명을 발표하는 등 등급제 도입 거부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유해 사이트가 범람하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청소년들을 유해 사이트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유네스코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 사이트 중 약 10%가 음란 정보를 제공한다고 조사됐다. 그러나 유해 사이트를 규제하는 제도도입 방법에 있어 정통부와 시민단체의 시각차가 있어 의견 조율이 필요한 시점이다.◆ 등급제 의미와 도입 방법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인터넷 콘텐츠를 선정성이나 폭력성에 따라 일정 기준으로 구분해 등급 수준을 매기는 기술적 체계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유해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기를 당연히 바라고 있다.그동안 인터넷에서 불건전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 ‘블랙 리스팅(Black Listing)’과 ‘화이트 리스팅(White Listing)’ 방법이 주로 사용돼 왔다. 블랙 리스팅은 유해 사이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해당 사이트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이다. 원천 봉쇄는 차단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설치해 이용한다.차단 소프트웨어는 키워드 입력 방식과 URL 주소 입력 방식으로 활용한다. 키워드 입력 방식은 특정 단어를 입력했을 때 그 단어가 들어 있는 사이트는 무조건 차단을 하는 원리다. URL 주소 입력 방식은 수만개의 유해 사이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사용자가 유해 사이트 주소를 입력했을 때 데이터베이스에 해당 사이트가 검색되면 접속이 불가능하도록 한다.키워드 입력과 URL 방식이 사용자를 유해 사이트에 접근시키지 못하게 한다면 화이트 리스팅 방법은 오히려 청소년에게 권장할 만한 건전한 사이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그 사이트만 접속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그러나 블랙 리스팅과 화이트 리스팅으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은 인터넷 사용을 제한시킬 수 있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이런 방법은 사용자의 연령이나 연구, 교육 등 다양한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차단하게 된다.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차원의 차단 방법이 모든 사용자에게 적용되는 불합리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Adult’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불건전 사이트와는 상관없는 사이트가 유해 사이트로 분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차단 소프트웨어 사용이 민주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이 인터넷 내용 등급제다.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정보 제공자(인터넷 사이트 운영자)가 자신의 사이트 정도를 등급 수준에 맞춰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의 차단 소프트웨어처럼 유해 사이트 접근을 연령이나 목적을 고려치 않고 원천적으로 봉쇄하는게 아니라 등급에 맞춰 선별적으로 접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유해 사이트에 선별적으로 접속하기 위해서는 유해 사이트마다 등급이 매겨져야 하고 사용자 컴퓨터마다 선별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선별 소프트웨어는 등급이 정해진 유해 사이트에 차별적으로 접근하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사용자가 선별 소프트웨어를 자신이 필요한 수준에 맞춰 정해 놓으면 해당 등급에 맞는 사이트만 접근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정보 제공자는 자신의 사이트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등급을 매겨야 한다. 특히 영리 목적의 정보 제공자는 반드시 등급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한다는게 정통부 방침이다. 등급 표시는 사이트를 제작할 때 HTML 문서에 정해진 태그 형태로 등급 정도를 표시하면 된다. 자율적으로 등급을 정하지 않은 사이트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등급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이때 등급에 이의가 있을 경우 등급기준 심의기구에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보 제공자가 자신의 정보 내용에 대해 스스로 등급을 부여한다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정부부처 산하 민간 단체에서 강제로 등급을 부여한다는 것도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아무튼 유해 사이트마다 등급이 부여되고 선별 소프트웨어가 설치되면 청소년들의 인터넷 검색은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별 소프트웨어 설치 여부는 학부모들 자율에 달려 있다. 이와 별도로 ISP에 의한 원천 차단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한 사용자를 일일이 검색해야 하고 속도가 느려지거나 적용상의 어려움으로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정통부 입장정통부에서 도입하려는 등급제는 해외에서 사용되는 기준을 바탕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정통부는 이번 등급제가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채택하는 방식으로 학부모나 청소년이 자신에게 적합한 등급을 정해 정보를 취사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정통부에서 추진하는 등급제는 정보 제공자와 정보 이용자가 자율적으로 등급을 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등급제가 적용되는 주 대상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음란 폭력물 및 청소년 유해 사이트다. 이들은 등급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비영리 목적의 청소년 유해 정보는 의무 대상은 아니지만 인터넷 검색에서 유리하도록 제도화해 등급 표시를 유도할 계획이다.정통부 정보이용보호과 홍성완 사무관은 “등급 표시 의무자가 등급을 표시하지 않거나 허위로 표시한 경우 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면서 “등급제는 일부 시민단체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검열제도가 아니라 청소년들을 유해 사이트로부터 보호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 사이트 등급에 대해 “이미 등급이 매겨져 있어 어려움이 없다”며 “등급 전환 기준에 따라 국내 등급으로 표시하면 된다”고 덧붙였다.유해 사이트 등급을 구별하는 선별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다운로드하거나 CD-ROM으로 제작해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진보네트워크 등 시님사회단체 입장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정통부에서 추진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가 포함된 ‘통신질서 확립법’개정을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정통부가 연내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인정보 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 질서 확립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하면서 통신망에 대해 무모한 통제를 시도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정보보호, 불건전정보 유통방지 등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는 측면에서 법률적으로 개선된 점은 인정하지만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정부의 간섭이 강화된다는 것이다.시스템관리 운영 정보제공 정보이용 등 정보통신 서비스 전반에 걸쳐 정보 제공자와 정보 이용자에 대한 정부 통제가 확대되면 인터넷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 영리와 비영리 목적에 대한 판단 기준도 시민사회단체 및 관련 업계와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불법정보와 청소년 유해 정보에 대한 포괄적이고 추상적 규정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진보네트워크 김지희 사무국장은 “청소년 유해 정보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인터넷에서 새로운 통제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라면서 “사회적 합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번 개정안은 졸속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불법정보에 대한 심의 제재나 청소년과 관련된 유해 정보 문제 등을 정통부 산하 민간단체에서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고 덧붙였다.등급제 도입이 기존의 간행물 등 다른 분야 심의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어 등급제는 사실상의 검열 제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 도입은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는게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다. 또한 이번 개정 법률안을 저지하기 위해 여론조사 등 반대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뜻을 밝혔다.◆ 해외 사례미국은 가장 먼저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별 소프트웨어도 여러 가지 개발돼 있다. 미국의 오락용 소프트웨어 자문위원회(RSAC)가 개발한 인터넷 등급체계인 RSACi와 세이프서프(SafeSurf)사가 개발한 Safe-Surf가 있다. 정통부에서 기준으로 삼는 등급 기준은 RSAC의 RSACi다. RSACi는 신체노출(Nudity), 섹스(Sex), 폭력(Violence), 언어(Language)의 4가지 범주에 레벨0부터 레벨4까지 5단계의 등급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표 참조) RSACi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경우 최근 자체 인터넷 등급제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용 선별 소프트웨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인터넷은 자유로운 정보 공유라는 기본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 그와 함께 청소년을 유해 사이트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정보 공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다.정통부 관계자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가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장하는 검열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유해 사이트마다 자율적으로 등급을 매겨 놓고 등급을 판단하는 선별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것은 현재 시행되는 방법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얘기다.그러나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된 각종 심의나 각종 등급제가 확대 해석돼 이용된 경우가 많았던게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도 사회 각계 각층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