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품질 입소문 ‘돌풍’, 매출 정상 … ‘고어텍스 축구화’ 개발 해외시장 공략나서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 송정 등 부산에는 풍치가 뛰어난 바닷가가 여러곳 있지만 광안리는 젊은이들의 해안이다. 탁 트인 모래밭에서 싱싱한 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곳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간선도로변에 신발업체 학산이 있다. 브랜드는 ‘비트로’(Vitro). 1층에 전시장이 있고 2층에는 사무실과 사장실이 있다. 사무실은 냉방이 잘돼 시원하지만 사장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이원목(49) 사장의 와이셔츠는 늘 땀으로 젖어 있다. 직원들과 거래처 사람들이 에어컨 장만을 권하지만 그는 아직 에어컨을 달 때가 아니라고 답한다.학산은 자존심에 가득찬 기업이다. 이사장의 얼굴에는 오기가 충만하다. 나이키·리복 등 세계적인 브랜드에 내준 한국 신발산업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라며 말린다. 세계적 스타 타이거우즈와 호나우도가 신는 나이키에 틴에이저들은 열광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하다. 그런데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이 이들과 싸우겠다니.하지만 이 꿈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이사장은 느낀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상품기획부터 브랜드까지 치밀하게 관리지난 88년 창업한 학산이 초창기에 선보인 신발은 테니스와 배드민턴화. 이들 제품은 부산지역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품질이 세계적인 제품에 비해 오히려 나았기 때문. 지역제품에서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에서 입으로 전파돼 명성을 얻었다.러닝화 에어로빅화로 품목을 늘려갔다. 매출도 크게 늘었다. 97년 3백63억원에서 98년 5백22억원, 작년에는 7백9억원으로 뜀박질했다. 올 예상매출은 8백억원. 이미 매출면에서 국내 신발업계의 정상에 올라섰다.이런 성장은 과학적 관리에 따른 것. 이사장은 브랜드 세계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상품기획부터 생산 유통 브랜드관리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관리해왔다. 상품기획을 보자. 이 회사의 고유브랜드 비중은 아직 10%선. 나머지는 라코스테 엘레세 아디다스 오카모토 등 외국브랜드다.하지만 주문자상표로 공급한다고 해도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시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기획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한다. 이를 바이어에게 제시한뒤 평가받는다. 바이어를 선도하는 것이다. 전직원 1백50명중 40명을 연구개발 분야에 투입하는 것도 이 때문.미국 디자인업체와도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컨셉트21과 협력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수십종의 제품을 개발했다. 쿠션과 충격흡수 기능을 가진 ‘쇼카 시스템’을 비롯해 그라인딩슈즈 락스슈즈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라인딩 슈즈는 밑창에 특수플라스틱이 붙어있어 미끄럼을 탈 수 있고 락스슈즈는 스케이트보드를 끼울 수 있는 신발이다.그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규모가 큰 축구화 분야에서 도전장을 낸 것. 축구는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다. 클럽에 등록한 선수만해도 세계적으로 3천2백만명에 이른다. 아마추어로 즐기는 사람을 합치면 수억명에 달한다. 엄청난 시장이다.학산은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고어텍스와 손을 잡았다. 신발 제조에 관한 학산의 노하우와 고기능성 섬유의 정상급 기업인 고어텍스가 힘을 합쳐 최근에 축구화를 탄생시킨 것. 이 축구화는 사람피부같다. 비가 오거나 이슬이 맺힌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하면 신발안에 물이 스며 발이 붓는다. 발이 차가워지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 고어텍스와 전략적 제휴 세계시장 진출 박차그런데 이 축구화는 봉제선을 타고 물이 스며들지 않는데다 보온기능도 있다. 습도가 조절되며 뜨거운 공기는 밖으로 빠져나간다. 내피와 중간소재로 특수기능성 섬유를 사용해 이런 효과가 생기는 것. 고어텍스는 파트너 선정이 까다롭기로 이름난 기업이다. 그런 고어텍스가 아시아 지역에서의 최초의 축구화 파트너로 학산을 선택했다.고어텍스와의 파트너 수립은 제품가치를 높이는데도 큰 기여를 할 전망이다. 신발외부에 브랜드와는 별도로 고어텍스 레이블이 붙게 된다. 마치 컴퓨터 겉에 ‘인텔 인사이드’가 새겨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의 위력은 아웃도어 슈즈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반 신발이 켤레당 60달러에 팔리면 고어텍스 레이블이 붙은 신발은 2백달러에 판매된다. 이 축구화는 지난 6월 국내에서 선보였고 내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고려대 화학과를 나와 범표신발로 유명한 삼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사장은 “고유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하는게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는데 왜 안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일을 위해 누군가가 가시밭길을 가야 한다면 자신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노라고 밝힌다.그는 80년대 중반 미국계 바잉오피스의 극동담당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 직원 절반을 줄이라는 본사의 지시에 반발해 독립했고 이때 함께 나온 직원들과 학산을 창업했다. 회사와 자신을 믿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비트로피아(Vitropia) 건설을 추진중이다. 자녀교육 주거 노후를 회사가 책임지는 이상향을 만드는 것이다. (051)759-8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