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정상회담이 ‘역사적 사변(事變)’이란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사변’의 한 축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세계의 언론은 그의 남북정상회담 수용을 ‘북한의 큰 변화’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정상회담 테이블에 한번 앉았다고 해서 정말 북한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는 7월11일 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에서 김국방위원장의 신뢰성을 묻는 질문에 “믿되,검증하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와 북한에 대한 검증은 앞으로 역사와 민족 앞에 진지한 자세로 임해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성의를 보일 때 비로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검증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구석구석 조급증에 걸리지 않은 곳이 없다. “북한은 변했는데 우리가 변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며 발상을 바꾸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향해 열린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남북의 군사대치라는 긴장국면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국가안보를 냉전논리나 구시대적 발상으로 매도하고 주한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만이 통일의 관건인양 목청을 돋우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동서독 정상이 만난지 20년만에 통일을 이룬 독일의 예를 보더라도 분단 55년사의 깊은 골을 메워 나가는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북한은 우리에게 이중적 존재다. ‘현존하는 위협’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민족화합 및 남북통일을 위한 상호교류협력의 상대방이다. 이같은 이중성을 무시한 채 단 한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마치 평화시대가 열린 것처럼 착각하고 냉정을 잃는 것은 비이성적이란 지적을 면키 어렵다.북한 방송은 최근 6·25 관련 보도와 핵과 미사일에 대한 언급을 두고 우리의 한 신문과 한나라당 총재를 극렬하게 비난하고 나서 대남 비방중지를 포함한 그들의 긍적적 조치를 무색케 했다.언론의 자유는 북한과 우리 사회가 크게 다른 점 가운데 하나다. 야당 총재가 정부와 다른 견해를 표명할 수 있는 것 또한 북한과의 차이점이다. 북한 관영 평양방송의 한 신문과 야당총재에 대한 맹공은 다원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고 싶다.만일 그렇지 않고 남한내 북한 비판세력을 반통일로 몰아 이념적 혼란을 부추기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단언컨대 우리 나라에 통일을 반대하는 언론은 없다. 있다면 “이러 저러한 대목은 좀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일러주는 언론이 있을 뿐이다. 북한으로선 앞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될수록 이같은 보도가 더 늘어날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아울러 우리 언론의 북에 대한 비판을 반통일로 몰아붙일게 아니라 남북공존의 큰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두가지다. 냉정을 되찾는 것과 지나친 ‘북한 쏠림’에서 벗어나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우리 사회의 대북 시각이 한결같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다양성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 다양성을 외면한 채 북한과 관련한 비평적인 지적이나 언설을 ‘반통일, 반민족, 냉전적, 반시대적’으로 몰아가는 비민주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또한 ‘통일 전문가’인 김대중 대통령조차 “통일이 이뤄지려면 앞으로 20~30년은 걸릴 것”이라며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통일지상주의자로 가득 차 난리법석이다.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차가워야 하는데도.남북정상회담이 끝난지 한달이 훨씬 넘었다. 이쯤되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식힐 때도 됐다. 지금이야말로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대북 접근에 차분히 나서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의 감흥 속에서 마냥 헤엄만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