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L·SCE 제휴로 기술 결합·차세대 휴대전화서비스 등 시장지배력 가속도 붙어

“도코모의 기술을 필요없다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나와 봐라. 어떤 회사인지(내가) 한번 보고 싶다.”일본 최대의 이동통신회사인 NTT도코모가 영국시장 진출을 공식 발표한 지난달 12일.이 회사의 다치가와 게이지 사장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호언했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하다는 인상까지 줄 수 있는 말이었다. 공식석상에서 말을 아끼고 겸손으로 일관하는 일본 최고경영자들의 매너에 견주어 볼 때 다치가와 사장의 이날 코멘트는 분명 이색적인 것이었다.하지만 그의 이같은 태도는 매스컴으로부터 말꼬투리를 잡히거나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모바일(Mobile)인터넷 돌풍의 주역‘i-모드’ 때문이었다.◆ 시장 넓혀 가며 라이벌 따돌려NTT도코모가 99년2월부터 시작한 무선인터넷 접속서비스 i-모드의 위력은 일본시장에서 가히 메가톤급이다. 내로라하는 경쟁기업들이 저마다 유사한 콘텐츠의 무선인터넷 접속서비스를 들고 나왔지만 i-모드는 적들의 추격 속에서도 오히려 가입자 수를 우후죽순 격으로 늘려가며 도코모의 명성을 탄탄히 굳히고 있다.지난 7월 말을 기준으로 가입대수가 6천23만(PHS 5백85만여대 포함)에 달한 일본의 이동전화 시장에서 NTT도코모는 3천1백57만대로 절반 이상의 셰어를 차지했다. 교세라 계열인 DDI그룹의 8개사와 IDO(일본이동통신) 그리고 제이폰그룹의 수개 회사가 맹추격에 나선 상태에서 거둔 성적임을 감안한다면 NTT도코모의 고객흡인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점유율만이 아니다. 시장을 넓혀 가는 속도에서도 이 회사는 경쟁기업들의 기를 죽이고 있다. NTT도코모는 7월 한달 동안 일본 전역에서 새로 가입된 76만7천대의 이동전화 중 83. 8%인 64만3천대를 차지, 라이벌들을 점점 더 먼발치로 밀어내고 있다.i-모드의 신장 스피드는 서비스제공 주체인 NTT도코모의 이동전화 가입대수 증가율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NTT도코모의 가입자들중 i-모드 계약건수는 지난 8월6일 1천만을 넘어섰으며 지금도 하루 4만~5만의 신계약이 쏟아지고 있다.회사측은 올해 초만 해도 2000년 말까지 계약건수 1천만을 돌파하면 대성공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호조가 지속되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영업조직과 인력 그리고 지명도에서 이점을 갖고 있는 NTT도코모는 이를 발판으로 신규가입자를 불리고 i-모드는 자연스럽게 계약건수를 늘려 나가는 시너지효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NTT도코모는 도코모라는 이름과 관련,영문으로 ‘Do Communications Over the Mobile Network’라는 선전문구를 내세우고 있다. 별도 장치와 장비가 없어도 휴대전화 하나만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즐기자는 뜻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리드하고 일본이 꼼짝없이 끌려다니기만 했던 컴퓨터(유선)인터넷 시대를 끝내고 일본의 이동전화가 앞장서는 모바일 인터넷의 신세기를 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무선 인터넷으로 세계 통신시장을 제패하겠다는 NTT도코모의 속셈은 최근의 몇가지 행보만 더듬어 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 회사는 작년 말 이후 해외파트너와의 제휴에 부쩍 열을 올리면서 홍콩, 네덜란드기업과 잇달아 손을 잡았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아메리칸 온라인(AOL) 그리고 게임산업계의 공룡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양날개를 달아맸다.일본 통신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도깨비에게 금방망이를 쥐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NTT도코모의 세계화전략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제휴 업체만도 6백여사 달해AOL이 1천3백여만 회원들에게 i-모드의 각종 콘텐츠를 제공하고 NTT도코모는 i-모드 가입자들이 AOL의 이메일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때 이들의 시장지배력은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NTT도코모와 SCE의 연합에 대해서도 파괴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게임왕국 SCE가 공급할 게임소프트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i-모드의 장점은 그 결합만으로도 무궁무진한 매력을 제공한다는 것이 일치된 관측이다.전문가들은 SCE의 라이벌인 일본의 세가가 NTT도코모의 경쟁업체들과 손잡고 견제에 나설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지만 시장판도에 큰 변수가 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한편 올 3월 결산에 따르면 NTT도코모의 전체 매출에서 i-모드로 벌어 들이는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못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통신시장 최대의 빅히트 상품이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게 매출기여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셈이다.그러나 도쿄의 증권가에서는 텔레비전,전자게임기 등 첨단 멀티미디어와의 결합이 가능한 i-모드의 시장 급팽창이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모드는 이미 컴퓨터용 인터넷접속서비스에서 일본 1위업체인 니푸티를 가입자수(7월말 3백86만명)에서 월등히 앞질렀을 만큼 네티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같은 점을 의식해 i-모드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도코모와 손잡은 일본업체는 금융기관 여행사 레저업체 등을 중심으로 이미 6백여개를 헤아리고 있다. 또 일반 유저들이 i-모드 상에 개설해 놓은 홈페이지만도 약 1만9천개에 육박하고 있다.도코모는 내년 5월부터 고속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차세대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도코모는 세계 공통의 전화번호를 부여,해외 로밍을 통해 가입자들이 전세계 어디서나 i-모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을 밀어붙치고 있다. 말 그대로 휴대전화 서비스의 세계제패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NTT도코모와 i-모드 서비스는 이제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의미가 특정기업,특정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IT(정보기술)부문에서 일본의 자존심을 지탱해 주는 국민적 공통어로 뿌리내리고 있다. 제조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테크노 이코노미스트 마키노 노보루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첨단 정보통신 산업에서 일본을 세계 정상으로 밀어 올릴 견인차중 하나가 바로 i-모드라고 수차례나 강조했다.“NTT도코모는 이동통신회사이므로 움직이는 것,갖고 다니는 것이 모두 영업 대상이다. 일본 인구가 현재 1억2천만명이라 해도 비행기,자동차,배,개와 고양이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잠재고객은 3억6천만명에 이르지 않는가.”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동물도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다치가와 게이지 사장의 말은 세계 제패를 꿈꾸는 NTT도코모의 절제된 야심을 보여주는 증거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