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프로그램 인형·소품 상품화 … 방송 이미지 제고·시청자 확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일본이 갖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은 단연 세계 정상급이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에서 가전, 중화학, 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메이드 인 재팬’은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에서 후발개도국 제품들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지구촌 시장을 누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본이 제조업 못지 않게 비제조업에서도 세계 최고를 달리는 분야가 허다한데 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리스트에 애니메이션과 캐릭터산업을 올려 놓고 있다.만화영화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과 인형, 팬시제품의 이미지를 먼저 연상시키는 캐릭터는 비즈니스 속성상 어느 하나를 따로 떼놓고 생각하기 힘든 특징을 갖고 있다.인기캐릭터 치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이 히트를 치지 않고는 해당 캐릭터가 대박을 터뜨리기 어렵다는 연결고리를 봐도 그렇다.◆ 캐릭터산업 부흥 버팀목은 일본TV이같은 점에서 볼 때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은 캐릭터산업의 부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민영이건 아니건 방송에 등장한 캐릭터들을 상품화해 시장 저변을 넓히는데 저마다 앞장서고 있다. 캐릭터의 대상은 인기 애니메이션뿐이 아니다. 유명 앵커, 아나운서의 얼굴도 캐릭터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방송에 동원된 소품과 인형까지도 어김없이 캐릭터 상품이 되어 진열대에서 어린이와 여성, 주부고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공영인 NHK의 경우를 보자. 이 방송은 지난 3월 도쿄역 상점가의 지하에 전용 캐릭터숍을 오픈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매장이지만 점내에는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오쟈루마루’ ‘구-초코단’등의 캐릭터 상품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이 상점은 영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도쿄 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단골 쇼핑 장소로 자리를 굳혔다.“방송에서 본 캐릭터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참 많았습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캐릭터 상품을 사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전국을 연결하는 도쿄역에 매장을 냈는데 이 전략이 들어 맞은 것 같습니다.”NHK의 캐릭터사업부 부장 사토 스케씨는 공영방송의 특성상 영리를 위한 캐릭터 비즈니스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추억 속에 오래 간직될 캐릭터 상품은 계속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혀 캐릭터 상품이 방송의 이미지 관리에도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음을 인정했다.캐릭터 비즈니스에 관한 열기와 관심은 민영방송들이 NHK를 훨씬 능가한다.90년대 초반부터 캐릭터 비즈니스에 눈뜨기 시작한 일본의 민영TV들은 단순한 후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영리뿐 아니라 이미지 제고 및 시청자 확보의 수단으로 캐릭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사옥 정면 현관에 캐릭터상품의 안테나숍 ‘난다로오(무엇일까요)’를 95년 개설한 니혼TV는 개국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난다로오 마크를 사원의 명함과 서류봉투에도 인쇄해 넣는 등 아예 회사의 얼굴로 삼고 있다.이 TV는 평소 사옥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데도 멀리서 수학여행온 학생들이나 공개방송에 참가한 시청자들은 어김없이 난다로오 숍에 들르는 일이 관행처럼 돼 있다.난다로오 상점의 점내에는 방송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숙해진 캐릭터 상품이 가득 들어차 있다. 또 인형과 소품 외에도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얼굴을 넣어 만든 전화카드와 요리프로그램에서 실제 사용하는 소도구들도 상품으로 나와 있다.◆ 후지TV, 센스·아이디어 가장 돋보여니혼TV는 이 숍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섬세한 서비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매장 입구쪽 벽면 하나에는 시청자들의 인기가 높은 아나운서의 친필사인이 들어 있는 사진을 죽 걸어 놓아 친밀감과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캐릭터 비즈니스의 열의는 보도 프로그램에 특히 강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TBS도 뒤지지 않는다.이 방송국은 98년3월에 도쿄 도심 한복판의 아카사카 스퀘어내에 시청자 서비스 일환으로 TBS스토어를 오픈, 캐릭터상품의 판매거점중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점포가 취급하는 2천5백여 상품중 TBS의 오리지널은 절반이 넘고 있으며 TBS그룹의 전사적 심벌이 되다시피한 ‘지시’와 로크짱을 간판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TBS는 보도기능이 뛰어난 방송답게 ‘뉴스의 모리(숲)’관련 캐릭터 상품과 아나운서 얼굴을 박은 전화카드를 인기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최근 ‘TBS 캐릭터페스티벌 2000’이라는 행사를 통해 시청자들의 친밀감을 높이는데 성공한 이 방송은 TV와 라디오 관련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인터넷과 통신판매를 통해서도 캐릭터상품 판매를 늘리기로 하는 등 다각도의 방안을 구상 중이다.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캐릭터 비즈니스에 팔을 걷어 붙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센스와 아이디어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으로 후지TV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도쿄만을 메워 만든 부도심 ‘오다이바’에 자리잡은 이 방송국 본사는 건물외관에서부터 상업적 센스가 철철 넘쳐나 관람객의 시선을 붙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높다란 기둥 모양의 건물 사이로 공처럼 생긴 둥근 전망대를 안고 서 있는 본사 사옥은 건물도 유명하지만 토·일요일과 공휴일이면 각종 이벤트가 풍성하게 열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반겨 주는 것은 미모의 도우미도, 정복 차림의 남성안내원도 아니다. 후지 TV의 인기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청색 강아지 인형 ‘라후’군의 동물캐릭터로 분장한 선전요원이다. 강아지 인형 캐릭터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관람객들과 사진포즈를 취해 주거나 수시로 악수를 나눈다. 여기서 보듯 후지TV의 인기 캐릭터는 다른 어느 TV캐릭터들 보다도 일본 시청자들에게 한발 앞서 다가가 있다.견학 코스를 돌아본 후 7층의 캐릭터 숍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후지TV의 1천여 캐릭터 상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정신을 빼앗긴다. 이곳에는 평소 애니메이션과 인형극에서 보았던 캐릭터들이 약 85평의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주 과학관을 연상시키는 건물 외관에 이미 한 차례 매료됐던 관람객들은 캐릭터 상품 하나 하나를 고르는 과정에서 이 방송국의 열렬한 팬이 될 수 밖에 없다.이와 관련, 후지TV 권리개발부의 오가와 게이코씨는 “캐릭터 상품은 단순히 돈을 받고 건네 주는 물건 이상의 플러스 알파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방송 이미지를 높이는 유용한 수단임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해 비즈니스뿐 아니라 시청률 경쟁을 위해서도 캐릭터 비즈니스를 둘러싼 텔레비전 방송국들의 신경전은 더 뜨거워질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