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대폭락, 제2 IMF 위기감 고조 … 금융·기업 구조조정 시급, 증시 수급구조 개선책도 마련해야

주식시장이 IMF시절을 연상케 하는 붕괴국면을 맞고 있다. 올 연초 1059포인트를 고점으로 9월22일 553.25포인트까지 종합주가지수(KOSPI)로도 반토막이 났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두 번의 투매와 그로 인한 폭락이 벌어지면서 지수는 일주일 사이에 100포인트 가까이 가라앉았다.코스닥시장의 참담함은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지난 2월 300포인트 돌파를 앞두고 있던 코스닥 시장은 지난주 잇따라 최저치를 돌파하더니 76.46포인트로 가라앉았다. 지수로도 거의 네토막이 난 셈. IMF당시를 연상시키는 참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연일 신저가종목이 양산되고 있다.◆ 반도체 하락·대우차 쇼크에 맥못춘 주가올해초(1월4일)만 해도 거래소의 시가총액은 3백57조8천억원 가까이 됐다. 그러던 것이 지속적인 주가하락으로 8월말 2백48조원으로 줄었고, 9월18일 현재 2백11조6천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허공으로 1백46조원 가까이 날린 셈이다. 낙폭이 더 큰 코스닥 시장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은 말할 것도 없다.지난해말 1억원을 투자했는데 이제 8백만원만 남았다는 개인투자자의 처절한 스토리도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사상최대라는 상장기업의 실적이나 1천억달러의 외환보유고 같은 경제펀더멘탈도 고유가에 반도체 현물D램가격 하락, 포드자동차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라는 외부변수 앞에서는 아무 힘도 못쓴 채 무너지고 있다.정부가 빈사상태의 증시를 살리기 위해 뒤늦게 뮤추얼펀드 등 증시수급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것이 증시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금융기관의 뮤추얼펀드 가입한도 폐지, 주식형펀드의 종목당 투자한도 확대 등 “자산운용업계의 줄기찬 건의가 상반기에만 받아들여졌더라도 증시 수급구조가 지금과는 달랐을 것”(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이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98년과 99년 아직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경제를 수렁에서 건져올리는데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이 증시회복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부채와 고금리로 허덕이던 상장기업과 싹트기도 전에 쓰러지던 벤처기업을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증시로 들어온 투자자금이었다.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아직도 한국경제가 회복되려면 3, 4 년은 있어야 한다고 했던 98년 6월, 주가가 300포인트로 하향돌파해 280까지 내려갔을 때부터 애국심으로 주식 10주씩 사모으던 개인투자자와 ‘박현주펀드’로 대표되던 뮤추얼펀드, ‘BUY KOREA펀드’로 대표되던 투신사 수익증권은 한국증시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제 한국증시는 다시 붕괴국면을 맞고 있고 증시붕괴는 회복궤도로 들어서려던 한국경제의 뒷덜미를 다시 잡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그렇다면 증시는 다시 IMF시절의 300포인트 수준으로 돌아갈 것인가.일부 전문가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현재의 증시는 붕괴국면”이며 하락이면 바닥을 예측할 수 있지만 붕괴라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원기 리젠트 자산운용 대표는 “향후 1년간은 어려운 국면이 지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그렇다고 해서 해결의 돌파구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고유가나 반도체경기, 대우차 해외매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가능한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그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 구조조정 속도 따라 주가회복될 듯”증시 전문가들이 요구하는 증시회생방안은 한결같다. 바로 “정부의 과격한 구조조정”이다. 그것도 이제는 시간이 없으며 “신속히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박현주 미래에셋사장은 증시를 살리기 위해선 “특히 금융분야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자금이 투입되는 비우량금융기관이 여전히 금리경쟁을 하고 있어 우량은행의 금리가 낮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있어야 경제위기 상태를 벗어날 단서라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회사채시장의 활성화도 증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이 박사장의 시각이다. 회사채유통이 활성화되고 일단 채권금리가 떨어져야 주가가 다시 올라갈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과매도국면이기는 하지만 외국인투자자들도 한국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액션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매수로 돌아서지 않을 것 같다”고 크레디리요네증권 이진용 서울지점장은 지적한다.부실기업, 워크아웃기업 가운데 자력회생이 가능하지 않은데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으며 억지로 끌고나가다가는 모두다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많다.장인환 사장은 “국민의 혈세로 채무를 변제받은 워크아웃기업이 채무변제로 이익이 생겼다며 임직원이 성과급으로 나눠먹는 행위가 버젓이 자행된다”며 이런 기업까지 끌고 나간다면 구조조정은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금리가 그나마 아직은 안정적이고 대외여건이 더 악화되기 전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만 금융시스템이 다시 한 번 경제와 실물경제를 망가뜨리는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이같은 시장의 정서는 인터넷 투자정보사이트 등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부실기업에 공적자금 주지 말고 그대로 청산시켜라” “국회의원, 공무원, 금융기관 임직원부터 절반 이상 감원하는 구조조정 하라” 등 일반 투자자의 구조조정에 대한 주문은 ‘분노’에 가까운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부실기업 등 과감히 정리해야"조재민 마이다스에셋 대표는 “모든 기업을 살리는 것은 시장이 원치 않는다”고 강조한다. 대우차 인수대상으로 현대자동차가 거론되니 현대자동차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는데서 보여지는 시장의 정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이같은 이유로 관리대상기업이나 부실기업은 옥석을 가려서 상장이나 등록을 폐지시켜서 증시를 건전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붕괴국면에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것 이외에 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증시의 수급안정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특히 장기적으로 수급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뮤추얼펀드 등 간접투자시장이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완전개방형뮤추얼펀드 도입 등 장기적인 주식투자수요기반을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조재민 대표는 “기관마저도 단기투자를 하려고 하고 장기적 투자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외국처럼 국민연금이나 연기금만큼은 주식을 트레이딩대상이 아니라 자산으로 가져가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증시가 안정적 수급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상장기업들 역시 증시가 붕괴되면 기업의 운명도 다시 위태롭게 된다는 의식으로 투명경영과 주주중시경영에 나서야 한다.최근 세종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97년이후의 주가하락은 대우그룹 붕괴에서 현대그룹 위기, 삼성그룹의 경영투명성 문제 등 재벌문제로 야기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환경이 호전되더라도 주가는 (상승전환이 아닌) 반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투명경영과 함께 주주중시 경영풍토도 시급하다. 국내기업의 배당수익률(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비율)은 8월말 기준으로 1.7% 수준이다. 금리가 우리보다 낮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도 낮다. 더구나 대부분의 배당이 시가가 아닌 액면가배당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액면가 5천원인 삼성전자가 액면가로 50% 현금배당을 한다고 해봐야 주가가 30만원이라면 배당수익률은 1%도 안되는 셈이다.지난해 사상 최고의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냈던 증권사들은 올해 주주총회전까지만 해도 사상 최고수준의 현금배당가능성을 흘리다가 결국 대신증권 등 일부회사들은 무배당을 결정, 소액주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배당을 노리고 증권주에 관심을 뒀던 투자자들이 당분간 증권회사를 믿지 않을 것이며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따라서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들은 말로만 저평가니 초일류기업이니 변명할 필요가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전세계 주요기업을 상대로 지난 90년대에 행한 가치경영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총주주수익률(TSR)을 높이는 것이 기업가치 증대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증시에 대한 신뢰가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와 함께 기업들의 획기적인 발상전환도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