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워크숍에서의 일이다. 2박3일 일정이 거의 끝나갈 때 진행자가 제안을 한다. “지난 3일간 상대방에 대해 여러 가지를 파악했을 것입니다. 포스트 잇을 몇장 드릴테니 다른 사람에 대한 장점들을 적어 그 사람 자리에 붙여 놓으십시오.” 처음에는 별 귀찮은 것을 다 시킨다는 생각을 했으나 휴식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써서 붙여 놓았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돌아오니 꽤 많은 포스트 잇이 내 책상에도 붙어 있었다.“웃음을 주어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코멘트가 인상적이었어요, 사려 깊은 사람인 것 같군요….” 물론 낯간지러운 것도 있었지만 나에 관한 여러 장점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으로부터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졌음은 당연하다.제대를 앞 둔 말년 병장에게 가장 큰 선물은 내무반 원 전원이 정성스레 작성한 비망록이다. 인심을 얼마나 얻었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지긴 하지만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좋은 말로 가득찬 비망록을 받게 된다. “너그러운 병장님 덕분에 군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행운이 가득하십시오. 제가 아플 때 대신 불침번을 서준 은혜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모래 사역을 나가 같이 먹은 동동주와 빈대떡 참 좋았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뻔한 얘기지만 쓰는 사람도 그것을 읽는 말년 병장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다시금 새록새록 전우애가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망록을 작성하고 그것을 읽으면서 그동안 감정이 나빴던 병사와도 화해를 하게 되고 멋진 이별을 하게 된다.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말들을 하게 되어 있다. 그 중에 덕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혹시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의례적인 얘기 외에는 온통 불만, 불평, 비방으로 섞인 얘기만을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 대한 축복의 말보다는 비방의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속된 말로 “가장 좋은 안주는 동료와 보스에 대한 비방”일 수도 있다. 또 특정인을 안주 삼음으로써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헐뜯은 후의 뒷맛은 늘 개운치 않다. 또 누군가를 뒤에서 비방하는 것은 언젠가 자신의 몫이 되어 돌아올 위험도 있는 것이다.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크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나타날 경우 이런 행사를 한단다. 온 동네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그에 대한 좋은 얘기만을 돌아가면서 한다. 절대 비방하는 말이나 나쁜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오랜 시간 그에 대한 덕담, 그가 행한 선한 일, 그의 장점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게 되면 비로소 행사가 끝나고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런 행사 탓인지 그 마을에는 범죄자가 거의 없단다. 아마 동네 사람들의 덕담을 들으면서 그는 맘속으로 결심했으리라.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믿고 좋아하는데 내가 나쁜 짓을 계속할 수는 없다.”좋은 얘기만을 하면서 지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또 자성예언의 효용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축복의 얘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상대방의 단점을 날카롭게 들추고 거기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 스마트하고 샤프한 사람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는 단호하고 엄정하되 남에게는 늘 좋은 말로 자성예언을 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길 나 스스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