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부분보장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내년부터 예금을 1인당 2천만원까지만 보호해주는 부분보장제를 강행한다는 방침이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 금융계 학계 등에선 보장한도를 확대하거나 아예 연기하자는 주장도 거세다.예금 전액보장에서 부분보장으로 전환되면 개인 법인들의 거액 예금이 부실금융기관에서 우량금융기관으로 대거 이동할 것이란 점은 불보듯 뻔하다. 이는 지지부진한 금융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자금이동 폭이 과연 금융시장에서 견딜 만하냐는 데 문제가 있다.정부의 포지션은 장관들의 발언에서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예금 부분보장제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런던에서 가진 기자간담회(28일)에서 “귀국하면 찬반의견을 잘 들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확정된 시행방침을 밝히지 않은채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서강대 경영연구원은 금융감독원이 의뢰한 ‘예금보호제도의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금융불안이 증폭될 경우 몇가지 보완책을 제안했다. 첫째, 기업 기관 등의 거액 결제성계좌(요구불예금)를 2~3년간 전액보장, 둘째, 2천만원 이상 원금의 80~90%를 보장, 셋째, 경색이 심각할 경우 보장한도 5천만원 이상으로 확대 등이다. 그러나 요구불예금 비중이 7.4%에 불과하고 보장한도나 보장비율 확대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완책으론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예금보험공사는 보장한도를 5천만원으로 올려봐야 별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은행은 전체 예금액의 60.7%, 종금은 88.1%, 금고는 50.1%가 5천만원 이상인 계좌라는 것이다. 국찬표 서강대 교수도 “보장한도를 올려도 일정 수준의 자금이동과 시장충격이 불가피하다”면서 “오히려 정책신뢰와 대외신인도를 감안할 때 그대로 가는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충격 최소화 묘안짜기 고심금융기관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완전히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량은행들은 예정대로 시행을 강하게 주장하는 반면 지방은행 종금사 상호신용금고 등 상대적으로 열세인 금융기관들은 한도확대나 연기를 주장한다.정치권에서도 아예 시행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역 금융기관을 대변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태세다. 일본도 논란끝에 1년 연기한 마당에 상황이 훨씬 어려운 우리나라가 강행할 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연말까지 남은 3개월 동안 벌어질 상황을 지금으로선 예상하기 어렵다는데 정부 당국자들의 고민이 있다. 시행연기론이 거세고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예금구조에 비춰 보장한도를 올리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며 “시행을 강행하느냐 연기하느냐의 논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정부는 이같은 논란을 충분히 검토해왔다. 잠정 결론은 일단 ‘내년 시행, 필요시 보완책 강구’로 요약된다. 연기 불가 입장이 현재로선 단호하다. IMF와의 약속이고 정책 신뢰성, 대외신인도, 구조조정 의지 등이 훼손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헌재 전경제팀이 ‘당초 예정대로’인 반면 진념 경제팀은 유지보다는 ‘상향조정의 신중 검토’쪽에 더 무게를 두는 점이 다르다.정부는 대비책을 충분히 점검할 계획이지만 시행원칙을 서둘러 밝힐 경우 운신할 틈이 좁아지므로 최대한 발표 시기를 늦출 공산이 크다. 현재로선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보장한도 상향조정 뿐이다. 그나마 재경부 금감위의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회의적인 입장이다. 정부가 시장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묘안을 짜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