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비즈니스 한길 승부 … 경쟁력 확보 위한 R&D·자기개발 등 적극 나서

객가(客家). 중국의 화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화교들은 중국 민족 가운데서도 결집력이 강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갖고 있기로 유명하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객가들의 기본정신은 ‘튀지마라’이다. 화교들은 이 정신을 소개할 때 곧잘 드는 예가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화교들은 돼지를 키우는 공동우리가 있다. 잔치 때마다 돼지를 잡는데, 잔치 상에 올라가는 돼지는 항상 살찐 돼지다.’ 즉, 살찐 돼지는 다른 돼지에 비해 ‘튄다’는 것이다.수십년간 한 분야에서 꾸준히 사업을 일궈온 굴뚝기업 CEO들의 공통된 특징은 이런 ‘객가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같은 굴뚝업체 CEO들의 마인드는 통하지 않는다. e-비즈 태풍이 불면서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모임에 가든 “인터넷이다, e-비즈니스다”하면서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지 않으면 곧 망할 것처럼 얘기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런 외압(?)속에서 굴뚝산업에 종사하는 CEO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공통적인 특징은 서둘지 않으면서 조용히 변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TFT LCD 256MD램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화학약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는 테크노세미켐의 정지완사장(42)은 요즘 6개월째 접어든 비즈니스 영어 수업에 솔솔한 재미를 맛보고 있다. 정사장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굴뚝산업을 보다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다.그는 “해외 업체와 기술협력, 제휴가 많다보니 말을 이해 못해 협상테이블에서 불리한 경우가 있어 시작했다”고 말했다.정사장이 굴뚝업체 CEO로 살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기개발보다 연구개발(R&D)이다. 테크노세미켐은 첨단산업에 필요한 소재산업이라는 점에서 고객의 욕구에 맞는 제품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R&D의 핵심은 차별화라고 강조하는 정사장은 “반도체 재료시장에는 고객을 확보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라며,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백20억원 매출에 3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남긴 테크노세미켐은 매출액의 1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전통산업 CEO 공통점 ‘서둘지 않는다’올해 매출 목표는 5백억원. 무차입경영을 원칙으로 운영해온 정사장의 또하나의 생존 전략은 위기를 기회로 이용한다는 것. IMF때 전략적 제휴 등 투자를 늘려 우수 고객과 기술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정사장은 최근의 위기 극복 방법으로 인수합병(M&A)을 선택했다. 이미 지난 9월15일 LG산전의 TFT LCD사업부와 희토류(Rare Earth) 자석 사업부를 인수 합병했고, 세계 희토류 자석 생산 2위 업체인 중국의 삼환공사와 합작법인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한 상태다.손목시계만을 만들어온 아동산업의 김종수(47) 사장도 대표적인 굴뚝맨이다. 김사장은 요즘 “굴뚝산업이 있어야 인터넷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며 손목시계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한 디지인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63년에 설립돼 그동안 손목시계 하나로 성장해온 아동산업의 지난해 매출은 1백80억원. 2세 경영인인 김사장도 변화의 시대에 있지만 굴뚝 비즈니스를 고집한다. 그는 “시계를 단순한 기능 제품에서 디자인을 강조한 액세서리 제품으로 브랜드를 높이겠다”고 의지를 불태운다.“인터넷이 발전하더라도 굴뚝 산업은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온라인에서 물품을 팔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에서 누군가 계속 제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란게 김사장의 굴뚝 산업 옹호론이다.